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의뭉 화법’

허만섭 기자 | 입력 2015-09-25 10:16수정 2015-09-25 10:19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신동아 10월호/심층분석]
도덕성 검증엔 ‘어물쩍’ 냉·온탕 오가는 극단 언사

● ‘마약 복용’ 사위 관련 말 바꾸기 논란
● 의혹 제기되면 말끝 흐려
●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반말
● 감성적 어휘로 안정감 만들기도

정치행위의 90%는 말로 이뤄진다. 집권여당의 수장이자 차기 대선주자 1, 2위를 다투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화법과 언술을 취재했다. 그는 요즘 사위의 마약 복용 및 봐주기 수사·판결 의혹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는 가끔 이런 자신의 도덕성 검증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선 불명확하게 말하거나 침묵하는 경향을 보인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충북지역 재력가의 아들이자 김 대표의 둘째 사위인 이모(38·S사 대표) 씨는 2011년 12월부터 2014년 6월 25일쯤까지 지인으로부터 코카인, 필로폰, 엑스터시, 대마초 등을 받아 15차례 직접 흡입하거나 주사기로 투약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검찰에 구속됐다가 올 2월 7일 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이씨와 김 대표의 차녀 김모(31) S대 교수는 8월 26일 결혼했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동아일보’는 수사와 판결에 특혜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법원은 징역 4년~9년 6개월인 양형 기준 하한선을 벗어나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카인 1회, 대마초 2회 복용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은 사례’에 비하면 이씨에 대한 판결은 지나치게 관대한 것으로 비쳤다. 배우 김부선은 페이스북에 “난 대마초 한 번 흡연했다는 지인의 진술로 8개월 구속. 강성마약 필로폰 코카인 엑스터시 상습 복용자들은? 법은 만인에게 공평한가”라고 반문했다.

“아직 신랑감 안 데려온 둘째딸”


김 대표는 ‘미디어오늘’이 실명을 보도하자 9월 10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렇게 해명했다.

주요기사
“내 딸이 사위하고 만나서 교제했는데 오래 교제한 것은 아니지만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약혼식은 안 했지만 양가 부모를 만나서 혼인을 언약하는 과정을 다 거쳤다. 그렇게 해서 결혼 날짜가 정해졌다. 그때까지 우리는 전혀 몰랐다. (사위가) 일이 있어서 몇 달간 외국에 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재판이 끝나고 출소한 지 한 달 정도 지나서 이 내용을 알게 됐다. 그래서 ‘절대 안 된다, 파혼이다’ 이야기하고 설득했다. 부모가 자식 못 이긴다. ‘사랑한다’고 울면서 ‘결혼 꼭 하겠다’고 하는데 방법이 없더라.”

이어 김 대표는 “동아일보에서 마치 정치인의 인척이기 때문에 양형을 약하게 했다,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 요새 세상에 정치인 가족이라면 더 중형을 때리지 도와주는 판사 본 적 있나?”라며 자신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김 대표가 차녀-사위와 관련해 말 바꾸기로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을 했다는 논란이 제기된다. 김 대표는 3월 24일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구 한국해양대 토크콘서트에서 “나는 중매결혼을 했다. 선을 보고 네 번 만나 결혼했다. 억울해 죽겠다. 결혼은 연애결혼이 제일 행복하다. 집에 갈 때 아직 신랑감도 데려오지 않은 둘째딸을 보면 머리가 아프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청중은 이 말에 폭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김 대표가 9월 10일 해명한 내용을 상식선에서 풀어보면, 그의 해양대 토크콘서트 때 둘째딸과 사위는 이미 양가 부모의 승낙하에 혼인을 언약하고 결혼식 날짜까지 잡은 사이였다. 또한 3월 7일 경 김 대표가 사위의 마약 복용을 알고 (2월 7일 사위가 출소한지 한 달 정도 지나 알게 됐다는 게 김 대표의 해명) 결혼을 만류했지만 둘째딸의 요구로 결혼이 그대로 추진되던 상황이었다. 실제로 둘째딸과 사위는 6개월 뒤 결혼했다.

“딸 혼사로 집안 뒤집혔는데…”


이런 정황상 김 대표가 3월 24일 “아직 신랑감도 데려오지 않은 둘째딸을 보면 머리가 아프다”라고 한 것은 사실과 다르게 말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여권 관계자는 “강연 시점엔 둘째딸의 혼사 문제로 김 대표의 집안이 뒤집힌 것 같은데 김 대표가 강연회에서 왜 굳이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해명 내용에도 불투명한 구석이 많다. 그는 “그때까지 우리는 전혀 몰랐다. (사위가) 일이 있어서 몇 달간 외국에 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여기서 ‘우리’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불명확하다. 그의 해명 전후 맥락을 봐도 ‘우리’에 그의 둘째딸이 포함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의 둘째딸이 사위의 구속을 언제 알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사위는 2014년 11월 구속됐다가 올 2월 7일 1심 선고와 함께 석방됐다. 두 달 넘게 수감된 셈이다. 김 대표의 해명을 상식선에서 해석하자면, 그의 둘째딸은 구속 이전부터 사위와 혼인을 언약한 사이였고 출소 이후에도 사위를 변함없이 사랑해 결혼을 강행했다.

말하자면 둘째딸과 사위는 결혼을 앞둔 연인관계를 지속해온 것인데, 보통 이런 긴밀한 관계에서 남자가 장기간 외국에 나가게 되면 남녀는 대면을 못하는 대신 통화나 문자메시지, e메일 등을 자주 교환하기 마련이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79개국에서 데이터 로밍 서비스를 실시한다. 해외전화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위가 교도소에서 통화하면 해외 로밍으로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적어도 사위는 수감되면서 연인 사이인 김 대표의 둘째딸에게 ‘몇 달 간 외국에 나가 있을 것’이라고 둘러대긴 어려워 보인다. 통화가 잘 안 되면 금방 들통 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상 김 대표의 둘째딸은 사위가 구속된 직후부터 사위의 구속 사실을 알았을 개연성이 있다.

둘째딸은 언제 알았나?


만약 둘째딸이 알았다면, ‘아버지인 김 대표는 과연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불거질 수 있다. 둘째딸은 ‘30대 성인’이고 ‘대학교수’며 김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아주 모범적인 똑똑한 딸’이므로 상식적으로 볼 때 남편 될 사람의 변고를 아버지에게 알리는 게 딸 된 도리이고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해볼 수도 있다.

일부 언론은 둘째딸과 사위가 미국 유학 시절 자기들끼리 알게 돼 연애한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해명 과정에서 “오래 교제한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말했다.

‘채널A’는 자체 취재를 토대로 “2014년 8월 둘째딸과 사위가 맞선으로 알게 됐다”고 보도했다.

만약 둘째딸이 선으로 사위를 만나 사귀다 사위의 구속 직후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라면, 선 자리로 자신을 이끈 부모에게도 알려주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법원은 사위에게 선처를 해준 사유로 가족관계, 수사에 협조한 점 등을 들었다. 사위는 재판받을 당시 30대 미혼남이어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는데 어떤 가족관계가 형의 감경에 적용됐는지 의문이다. 수사에 협조한 점과 관련해, 검찰은 사위의 집에서 제3자의 DNA가 검출된 주사기가 나왔음에도 이 주사기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사위가 검찰에서 진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법조계 인사는 “사실이라면 사위가 수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해명에서 “요새 세상에 정치인 가족이라면 더 중형을 때리지 도와주는 판사 본 적 있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이 말을 입증하는 객관적 사례나 통계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법조계에선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가 통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2014년 5월 대법관 출신 안대희 총리후보자가 고액 수임료 수수 논란으로 낙마한 사실은 이런 믿음을 뒷받침한다.

침묵 혹은 불분명

김 대표의 친인척과 관련된 ‘봐주기 수사’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초 검찰은 수억 원대 교비를 횡령한 혐의로 김 대표의 누나인 김용문 용문학원 이사장을 벌금 20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정식 재판에 회부하지 않은 까닭에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법원은 약식 기소된 이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했고 검찰 구형량보다 무거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대표는 9월 10일 당 공식회의 직후 매번 실시하는 백그라운드 브리핑(비공식 브리핑)에 응하지 않겠다고 당직자를 통해 밝혔다. 사위의 마약 전과가 보도된 날이어서 그가 이를 의식해 중단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왔다.

김 대표로선 자신의 해명에도 의혹이 가시지 않는 점이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정황에 비춰보면 봐주기 수사·재판 의혹이 제기될 만도 하다. 김 대표의 대학 강연 내용이 말 바꾸기 논란을 자초한 면도 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언론의 질문에 적극 답해야 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공익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김 대표는 자신에게 제기된 도덕성 검증에 대해 불투명하게 대답하거나 침묵하는 경향성도 보였다. 총선시민연대는 2004년 김무성 당시 의원을 낙선운동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문서를 돌렸다.

‘김무성: 96. 5. (주) 서울 T사 이○○ 회장으로부터 수도권지역사업자로 선정되게 이석채 정통부 장관에게 청탁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같은 해 7월 말 현금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벌금 1000만 원, 추징 2000만 원.’

2014년 10월 기자는 이러한 알선수재 혐의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으나 김 대표 측은 분명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2013년 8월 29일 새누리당 연찬회 자리에서의 여기자 성추행 논란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지만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사석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가시나’라고 말했다는 설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지만 답하지 않았다.

김 대표의 둘째딸이 S대 교수에 채용된 것을 두고 특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 대표 측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진 않은 듯하다. 그러나 ‘김 대표의 둘째딸이 2013년 교수에 채용될 무렵 김 대표가 이 대학 이모 총장이 국회 증인에서 빠지도록 노력했다’는 논란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4년 한 방송에서 “그분의 요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당시 기자에게도 “김 대표가 국감 전 교문위원장실에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이 여럿”이라고 말했다.

당시 기자가 여러 차례 답변을 촉구하자 김 대표 측 관계자는 “(김 대표는) ‘이 총장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것 같은데, 사생활 문제로 부르려는 것 같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이런 식으로 교문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듣는 사람 처지에선 빼달라는 쪽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이어지는 질문에 “그렇게 해석하면, 뭐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증인에서 빼달라고 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다소 고압적으로 비치는 점도 김 대표의 화법 특성이다. 김 대표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주 반말로 대답해왔다. 이 때문에 그는 2014년 8월 20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기자들에게 왜 반말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반말, 제가 잘 알고 있고 고치려고 노력한다. 경상도 말투고, 청년 시절 포항에서 굉장히 거친 철강회사에서 공장장 생활 5년 해서 말이 거칠어졌다. (정치 입문 후) 기자들과 생활을 거의 같이 했고 친동생 같은 생각에 나온 것인데 듣기 싫다면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거만, 그 자체”


그러나 그는 관훈클럽 토론회 이후에도 기자들에게 반말을 계속 했다. 사석에서 반말하는 것이야 별문제 될 일이 없지만, 그는 TV카메라가 촬영하는 가운데 걸어가면서 기자와 묻고 답하는 상황에서 반말을 한다. 그의 반말이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잦다.

7월 10일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후 한 여기자가 “지금 당이 좀 어수선하니까…”라고 묻자 그는 “뭐가 어수선하노. 다 정리됐는데”라고 답했다. 이 영상에 대해 네티즌들은 “웃으면서 반말하는 게 아니네” “거만 그 자체, 반말도 기분 나쁜 반말” “문화충격입니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그와 다른 한 기자가 걸으면서 나눈 또 다른 대화 영상내용이다.

▼ 부산 서면 유세에서 남북정상회담 이야기를 울분에 차서 하셨잖습니까.

“응. 했지.”

▼ 그 내용이 국정원 발췌록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거죠.

“뭐, 흡사할 수도 있지.”

▼ 네네. 그럼 국정원 발췌록 보셨단 말씀입니까.

“아니, 발췌록을…왜 자꾸 그렇게 유도질문을 하나?”

김 대표의 처지에서 불편할 수 있는 질문이긴 하지만, 그는 이 질문에 반말로 대답하면서 거기에다 위압적 분위기까지 얹는다.

네티즌들은 김 대표의 반말 응대를 이렇게도 평가한다.

“사회에서도 혼자 친한 척하면서 상대에게 말 놓는 사람들 보기 안 좋다. 엄연히 공적으로 취재 나온 기자들이고 카메라까지 돌아가는데 말 놓는다는 건 그만큼 인간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알 수 있다.”

“카메라 돌아가는데 자연스럽게 반말하던데. 그거 좀 거슬림. 가뜩이나 운동선수처럼 크시고 목소리도 중저음에 약간 고압적으로 보이심. 기자 떠나서 그 사람들도 다 똑똑하고 국민이면서 유권자 아닙니까?”

보수 + 중도 + 진보


김 대표는 의원이나 고위공직자에게도 가끔 반말을 했다.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파동 때인 7월 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표는 김태호 최고위원이 말을 계속 이어가려 하자 “그만해. 그만해”라며 말을 끊었고, 김 최고위원이 항의하자 “회의 끝내겠습니다”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김 대표는 2013년 8월 29일 새누리당 연찬회 자리에서 다른 의원들에게 “꼬붕”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포격 사건 때인 8월 20일 김 대표는 국방부 국회연락관 박문식 준장에게 “지금 연천 인근 주민들은 방공호로 대피한 상황이냐”라고 물었고 박 준장은 “거기까지는 아직 파악을 못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그런 것도 모르고 무슨 보고를 하러 와! 내가 아는 걸 당신이 왜 몰라?”라고 반말로 호통쳤다.

한 여권 인사는 김 대표의 이런 말 습관에 대해 “문제가 많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국회 출입기자가 1000명 안팎에 이르고 언론사마다 6개월~1년 단위로 출입처 이동이 발생한다. 여당 대표가 어떻게 그 많은 기자와 친동생 같은 친분을 유지하나. 대다수 기자는 실제론 잘 모른다고 봐야지. 친동생 같은 생각에서 반말한다는 해명은 말이 안 된다. 뉴스, 예능, 교양 등 TV 프로그램에서 대부분의 출연자는 반말을 하지 않는다. 김 대표가 기자에게 반말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는 시청자는 김 대표가 마치 자신에게 반말하는 것 같은 불쾌감을 갖기 쉽다. 2000년대 이후 매스컴에다 반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대선주자는 김 대표 외엔 거의 못 봤다. ‘재력가 출신의 오만함’ ‘소양 부족’으로 오해받기 쉽다.”

김 대표의 언술은 ‘진보와 화해하는 중도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을 오간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는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노 전 대통령을 많이 비판했지만, 과(過)는 그만 따지고 공(功)을 높이 평가해 국민통합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5월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전야제에서 물세례를 받자 “국민통합을 위해서라면 물세례를 당할 각오가 돼 있다”고 했다. 그는 통진당 오병윤 전 의원 선처 탄원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그의 발언은 보수로 ‘튜닝’된다. 그는 노동개혁과 관련해 “대기업 강성 노조가 쇠파이프로 공권력을 두들겨 팼다” “그런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3만 달러 수준을 넘었을 것” “디트로이트의 비극이 재현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진보좌파의 준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우리는 중국보다 미국이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 같은 우파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감성적 표현과 ‘유연성’


다른 한편으로 김 대표는 감성적 표현도 잘 구사한다. 그의 반말이나 버럭 화를 내는 습관을 이런 차원에서 좋게 보는 사람도 많다. 김 대표는 사위의 마약 전과와 봐주기 수사·판결 논란을 ‘딸 바보’ ‘딸 고집 못 꺾는 부정’을 연상시키는 감성적 어휘로 잘 타 넘었다는 평을 듣는다.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유승민 의원에겐 “사퇴 못 말려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듣는 사람으로선 진심이 전달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는 가끔 “대등한 당·청 관계”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말하며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다. 동시에 정부가 노·사·정 합의를 이루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타협”이라고 치켜세운다. 이런 ‘유연함’ 덕에 그는 유승민 의원처럼 박 대통령과 파국으로 치닫지 않으면서 ‘미래권력’으로서의 안정감을 만들어낸다는 평가도 있다.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5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