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숨은 ‘고리대금의 덫’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부 대부업체, 규제 피해 불법 사금융으로… 서민들 ‘눈물’
2014년 최고금리 34.9%로 제한… 소규모 대부업체 불법사채로 빠져
이자 최고 年1000%에 피해 속출
금융위 대형업체 200개만 관리… 지자체는 감독업무 사실상 손놓아

‘저신용자, 돈 급하신 분 누구에게라도 즉시 대출해 드립니다.’

지난해 7월 길거리에서 무료 신문을 집어든 40대 회사원 A 씨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위에 손을 벌렸지만 “빌려줄 돈이 어디 있느냐”는 대답만 들었던 터였다. 카드 값 연체로 전국적으로 영업하는 대형 대부업체마저 A 씨에게 대출하기를 꺼렸다. A 씨는 자신도 모르게 광고 속 대부업자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몇 시간 뒤 만난 대부업자는 선이자 30만 원, 수수료 5만 원을 제외한 65만 원을 A 씨에게 건네며 “10일 후 100만 원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수수료도 갚아야 할 원금에 포함되기 때문에 사실상 이자라고 보면 10일 동안의 금리는 무려 연 1965.3%. 말이 대부업자였지 사실상 사채업자였다. 10일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A 씨는 다른 사채업자에게 빚을 내 돈을 갚았다. 이런 식의 ‘돌려 막기’를 몇 번 반복하자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는 급속도로 불어났고 A 씨는 수백만 원의 빚을 지게 됐다. 매일같이 빚 독촉에 시달리던 A 씨는 한국대부금융협회에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지난해 국무회의를 통과한 대부업법 개정안이 이르면 상반기(1∼6월)에 시행될 예정이라 올해부터 2개 이상 시도에 영업소를 설치한 러시앤캐시 같은 대형 대부업체 약 200개는 금융위원회의 관리를 받게 된다. 하지만 각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소형 대부업체들은 금융당국의 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자체는 손을 놓아 불법 사채업자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등록하지도 않고 영업하는 불법 사채업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여전히 ‘초(超)고금리 대출’의 덫에 시달리고 있다.

○ 최고 금리 낮췄더니 불법 사채시장 팽창

2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에 등록된 대부업체 수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8794개였다. 서울에만 그 3분의 1 정도인 3087개가 등록돼 있다. 전국 대부업체의 80% 이상은 1인이 운영하는 개인대부업자로 운영자본이 10억 원 미만이다. 대부업체의 최고 금리는 2010년 7월 연 44%, 2011년 6월 연 39%에서 지난해 4월에는 연 34.9%로 낮아졌지만 영세한 다수의 대부업체가 100%를 넘는 이자율로 영업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문을 닫은 업자들이 감시의 눈을 피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숨는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문을 닫았다고 이들이 대부업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며 “대부분은 초고금리의 불법 사채업을 영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사금융 시장의 이자율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루만 빌려도 연 120∼140%, 조금 기간이 길다 싶으면 연 1000%를 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앤캐시 같은 주요 대부업체의 대출 승인율은 20% 수준이라 대출 승인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이들 중 상당수는 비싼 이자를 감당하고라도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심지홍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책성 서민금융(새희망 홀씨)이나 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 없는 저신용자들(신용등급 7∼9등급)의 자금 수요액을 추산해봤더니 2014년 기준 약 8조 원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구별 담당자 1명뿐 “현장 나가도 뭔지 잘몰라” ▼

‘고리대금의 덫’

○ 인력도 전문성도 부족한 지자체


소규모 업체들은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받도록 돼 있지만 지자체는 관리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서울 25개구의 평균 대부업체 수는 2014년 12월 말 기준 131개. 이를 관리하는 공무원은 2명인 강남구를 제외하고 모두 각 1명뿐이었다. 게다가 담당 공무원들 대부분이 대부업 관리 외에도 평균 3가지 이상의 업무를 겸하고 있다. 본보와 통화한 공무원들도 인력과 전문성 부족을 인정했다. 담당 공무원 B 씨는 “인력이 부족해 민원신고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며 “대부분의 공무원이 대부업체 담당을 꺼려 길게 해봤자 1∼2년, 짧게는 반년마다 바뀌는 경우가 많아 전문성도 떨어진다”고 밝혔다. 현장에 점검을 나가 서류를 확인해봤자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불법 사채업자를 단속해야 하는 경찰도 불법 사금융 시장의 대략적인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고리대금#불법사채#대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