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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미술사조, 단·색·화

입력 2014-09-16 03:00업데이트 2014-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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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의 미학 강조… 시각 중심 서구 미니멀 회화와 차별화
서구 모더니즘의 한국화를 고심했던 단색화 작가들은 캔버스와 한지를 함께 사용해 전통과 혁신의 이분법을 넘어서기도 했다. 위쪽 김기린의 ‘보이는 보이지 않는’(1988년)은 캔버스 위에 한지를 여러 장 겹쳐 놓은 뒤 그 위에 스프레이 물감을 수차례 뿌려 완성한 작품이다. 정창섭의 ‘Return one-G’(1979년)는 캔버스에 한지를 바르고 먹을 스며들게 하는 선염 기법을 사용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 그리지 않은 그림, 표면이 도드라져 조각 같은 회화, 캔버스 위에 한지와 먹을 써서 수묵화처럼 보이는 서양화.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 ‘단색화의 예술’(다음 달 19일까지) 전시장에 들어서면 한두 가지 색만으로 그린 대형 회화 작품들이 차분하게 관람객을 맞는다. 하지만 단순한 그림은 뜯어볼수록 회화의 문법을 해체할만큼 전복적이다. 1960, 70년대 구상화 위주의 화단을 부정하며 등장해 하나의 미술 사조를 일군 단색화(單色畵)의 대표작들이다. 》

단색화의 출발이 된 서구 모더니즘은 퇴조했지만 그 모더니즘을 한국화한 단색화는 40년이 지난 지금 해외에서 주목하는 한국 미술 브랜드로 떠올랐다. 영어 표기도 ‘Korean monochrome(한국의 모노크롬)’이 아니라 ‘Dansaekhwa’ 또는 ‘Tansaekhwa’이다.

이우환의 1970년대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시리즈가 전시된 전시장. 국제갤러리 제공
미국 로스앤젤레스 블룸 앤드 포 갤러리는 13일∼11월 8일 ‘다방면에서: 추상에 관한 단색화’ 전시를 마련했다. 기획자인 조앤 기 미시간대 교수(미술사)는 지난해 단색화에 관한 최초의 영문서인 ‘한국의 현대미술: 단색화와 방법의 긴급성’(미네소타대 출판부)을 출간했다. 앞서 올 2월 뉴욕 알렉산더 그레이 어소시에이츠 갤러리는 ‘근대의 극복, 단색화: 한국의 모노크롬 운동’전을 열었다. ‘Dansaekhwa’란 단어를 사용한 첫 전시였다.

올해 5월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와 6월 세계 최대의 아트페어인 아트바젤에서도 이우환 정상화 하종현 등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이 높은 가격에 팔려 화제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미술 한류의 대표주자로 원로 작가들의 단색화를 꼽고 올 6월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독일 헝가리 폴란드 인도네시아에서 단색화 그룹 순회전을 개최한다.

윤형근의 ‘Burnt umber & ultramarine blue’(1978년).
40년 전에 형성된 한국의 미술 운동이 21세기 해외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속도의 디지털 시대에 물성(物性)을 강조한 느림의 미학이 주는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국제갤러리의 단색화전을 기획한 윤진섭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은 “단색화엔 시각 중심적인 서구 미니멀 회화와 차별화되는 한국 고유의 미학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주목하는 단색화의 특징은 반복과 촉각성이다. 박서보(83)는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연필로 반복해서 선을 긋고, 정상화(82)는 물감 뜯어내고 메우기를 반복한다. 이우환(78)은 반복해서 선과 점을 그리고, 윤형근(1928∼2007)은 반복해서 넓은 색역(色域)을 중첩시킨다. 반복을 통한 끝없는 자기 부정은 기술사회의 속도전에 대한 반발이며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단색화는 입체적이다. 김기린(78)은 캔버스 위에 한지를 여러 장 겹치고, 정창섭(1927∼2011)은 그림을 그리는 대신 물에 불린 닥종이를 주물러 작업한다. 하종현(79)은 물감 덩어리를 마대 뒷면에서 앞으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그린다. 물성을 강조한 단색화는 작품과 관객의 권력 관계를 파괴한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에만 작품의 의미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 먼로 구겐하임 미술관 아시아 미술부 큐레이터는 “최근 유럽과 미국에선 1950∼70년대 추상미술에 주목하는 전시가 늘고 있는데 이는 스펙터클과 차용이 난무하는 대중문화가 주지 못하는 깊이 있는 질서를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라며 “서구 미술계가 비서구 지역의 예술적 움직임을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단색화도 재조명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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