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박경리 문학상 최종 후보자들]<2>獨 소설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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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죄과에 관심… 문학통해 독일의 어두운 과거 성찰

판사이자 법학교수 출신인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나치가 저지른 범죄를 파고들며 과거사를 반성하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시공사 제공
판사이자 법학교수 출신인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나치가 저지른 범죄를 파고들며 과거사를 반성하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시공사 제공
《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에는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70)도 포함됐다. 장편 ‘책 읽어주는 남자’의 작가로 유명한 소설가 슐링크는 나치 독일이 자행한 반인간적인 학살과 문명의 파괴에 대한 독일인의 무한책임을 중심 주제로 다뤄왔다. 문학평론가인 김승옥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이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

인간의 음흉한 범죄 심리를 다루는 판검사나 인간의 마음을 치료하려는 성직자만큼 문학적 소재를 풍부하게 지닌 직업이 있을까. 추리소설의 열렬한 독자로 판사이자 법학교수였던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하루아침에 독일 추리소설의 대가가 되었다. 독일 추리소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뒤 본격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책이 ‘책 읽어 주는 남자’(1995년)이다.

슐링크는 나치 독일의 죄과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과거사 반성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는 작가다. 이미 추리소설 첫 작품에서도 한 수사관이 나치 독일에 맞서는 내용을 다뤘으며, 이것이 그의 평생 화두가 돼 많은 작품에서 독일인의 과거사에 관한 반성, 전후 세대로서 전쟁세대가 행하고 감춘 범죄를 드러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병약하고 내향적인 사춘기 소년 ‘나’는 우연한 계기로 중년 여인 ‘한나’와 만나 결국 독일 과거와 조우하게 된다. 전후세대와 전쟁세대가 만나 전범들의 죄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과거에 지은 죄를 버릴 수도, 사랑을 할 수도 없는 연인에 대해―또한 독일의 과거에 대해―고뇌하는 주인공 ‘나’는 동정하지만 결국 냉정하게 거리를 두어 여주인공이 자살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소설의 구조는 크고 작은 사건의 연결고리가 필연적으로 이어져 독자가 책을 놓기 힘들게 한다. 이 소설은 독일 소설로는 처음으로 뉴욕타임스에서 장기간 베스트셀러 리스트 1위에 올랐다.

슐링크는 이 작품으로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이탈리아 문학상, 독일 일간지 ‘디 벨트’ 문학상, 하이네 문학상,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핀란드 문학상, 남아공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특별문화상도 수상했다. 그러나 그 뜻을 알고 주었을까. 일본에서 요즘 국수주의가 흐르는 것을 보면 이런 과거사 참회의 소설은 당분간 등장하기는 힘들 것 같다.

작품 ‘귀향’(2006년)에서 한 소년은 방학 때마다 스위스에 있는 외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연습장으로 얻은 통속소설 편집원고 파지를 읽고 호기심이 일어 그 작가를 찾아 나선다. 소년은 어머니가 침묵으로 일관했던 잃어버린 아버지가 그 작가임을 발견한다. 아버지는 열렬한 나치 추종자였으며 전후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다가 미국 컬럼비아 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아들은 뉴욕타임스에 아버지의 존재를 폭로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승승장구한다.

이 소설 역시 독일의 과거를 알리기 위해 평생을 헤매고 죄 많은 아버지를 발견하고 죄상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아버지가 러시아 포로수용소에서 귀국하는 도중 동료까지 배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미국으로 간 아버지를 찾아 미국과 독일을 오가는 자신과 아버지를 오디세이 귀향에 비유해 묘사하고 있다. 독일사의 흐름도 오디세이의 여정 같다는 비유이기도 하다.

슐링크 작품은 중편집 ‘사랑의 도피’(2000년), 독일 과거 문제를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해 토론까지 열게 한 에세이집 ‘과거의 죄’(2007년), 테러리스트 그룹을 다룬 장편소설 ‘주말’(2008년), 소시민의 일상생활을 다른 소설집 ‘여름 거짓말’(2012년) 등이 있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슐링크의 작품에 대해 “만일 소설의 르네상스가 있다면 바로 여기 있다”고 평했다. 그는 근래 주변으로 밀려난 독어권 문학을 세계문학 중심으로 다시 돌려놓은 멋진 소설가다.

○ 김승옥 심사위원은…


문학평론가. 독일 에를랑겐 뉘른베르크대 문학박사. 저서로 ‘한국문학과 작가 작품론’ ‘프리드리히 쉴러―그의 삶과 문학’ ‘서재 여적’ ‘독일문학사’ 등이 있다. 고려대 중앙도서관장, 고려대 교수협의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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