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목자, 프란치스코]그들의 양심도 가치있는 것, 관용을 실천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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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프란치스코 교황, 스칼파리 외 지음·최수철, 윤병언 옮김 232쪽·1만2800원·바다출판사

지난해 여름 이탈리아 유력지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 에우제니오 스칼파리(90)는 날선 칼럼을 잇달아 썼다. 7월 7일에는 ‘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1-하나의 진리만이 존재하는가’, 8월 7일에는 ‘무신론자가 교황에게 묻는다2-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는가’. 교회 권력에 비판적인 무신론자 언론인이 교황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연속으로 던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교황에게 직접 답을 들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약 한 달 뒤인 9월 11일 ‘라 레푸블리카’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편지가 실렸다. 교황이 언론인에게 편지를 쓴 것은 처음이었다. 답장이 왔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 내용은 더 놀라웠다. “나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킬 마음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따릅니다.” “진리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품고 있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입니다!”

교황의 파격적인 편지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드디어 권위의 관을 벗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칭송과, 교황이 쓴 편지가 맞느냐는 의심이 교차했다. 그 무렵 스칼파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교황이었다. 순간 정지 상태가 된 스칼파리에게 교황은 말했다. “당신의 생각을 더 알고 싶으니 직접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9월 24일 두 사람은 교황의 소박한 거처 산타 마르타 관의 작은 방에서 만났다. 교황은 자기 배만 불리는 교회 지도자들을 서슴없이 비판했고, 신자와 무신론자라는 차이를 넘어 함께 발 맞춰 걸어야 할 길을 제시했다.

이 책에는 교황의 편지를 둘러싼 논의가 두루 담겨있다. 1부에는 스칼파리가 교황에게 던진 질문과 교황의 답장, 2부에는 ‘라 레푸블리카’ 지면 위에서 펼쳐진 세계 지성인들의 토론이 실려 있다. 에우로 다치오 ‘라 레푸블리카’ 발행인은 이렇게 말했다. “교황은 무신론자들의 양심의 가치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또 계율의 교회에서 복음의 교회로 돌아가려는 의지와, 단죄보다는 관용을 호소하는 교회 본연의 임무를 되새기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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