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환율… 당국 개입도 안먹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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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6년만에 1010원 붕괴

2일 원-달러 환율이 6년 2개월 만에 1010원 선 아래로 떨어진 1009.20원에 마감됐다. 이날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일 원-달러 환율이 6년 2개월 만에 1010원 선 아래로 떨어진 1009.20원에 마감됐다. 이날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원-달러 환율 1000원 선이 위협받고 있다. 국내 외환시장은 2008년 4월 29일(장중 998.0원) 이후 6년 2개월여 동안 한 번도 세 자릿수 환율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만큼 외환당국과 금융시장, 산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국은 경상수지가 기록적인 흑자행진을 하고 있고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도 다른 신흥국보다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화 강세를 감당할 ‘체력’이 어느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물경제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월호 참사로 내수경기가 큰 충격을 받은 와중에 환율 하락이 기업들의 수출마저 발목을 잡을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 일본 기업 등과 가격경쟁으로 승부하는 중소기업들은 시름이 더 깊어지고 있다.

○ “하반기에도 원화 강세 한동안 지속”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대내외 경제여건을 봤을 때 하반기에도 원화 강세 현상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이 1000원대 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우선 국내 요인으로는 대규모 무역흑자와 쌓여 가는 외환보유액, 외국인의 주식 매수세 등이 원화 수요를 부채질하고 있다. 국내 시중금리가 사실상 ‘제로금리’인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해외 자금의 유입을 초래해 원화 강세를 이끌고 있다. 시선을 외부로 돌리면 글로벌 달러화 약세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이 향후 상당 기간 초(超)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예고하면서 한국 등 신흥국의 고수익 자산에 대한 투자 매력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 하락세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요인은 당국의 시장 개입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그 효과가 아주 짧고 제한적이라는 게 문제다. 2일 오전에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기대가 한 방향으로 쏠리고 있다”며 공동으로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잠시 1010원을 회복했을 뿐 이내 다시 1009원 선으로 내려왔다. 외환시장의 한 딜러는 “당국 스스로도 원화 강세가 워낙 대세여서 개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최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의 고환율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밝히면서 정부가 이제 환율 하락을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퍼졌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지금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보면 환율이 안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잔액 기준으로 가입 금액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거주자외화예금마저 시중에 풀리면 환율 하락 압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기업들 기존 사업계획 수정 움직임

재계에서는 환율 하락을 하반기 경영의 최대 위험 요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격경쟁력을 보전하기 위해 원가절감에 나서거나 기존의 사업계획을 수정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현대·기아자동차 관계자는 “올해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기준 환율을 1050원으로 설정했다”며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매출이 2000억 원 정도 떨어지기 때문에 하반기 환율 하락 움직임에 따라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업계도 비상 관리 체제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1분기(1∼3월) 실적 발표 때부터 환율을 하반기의 최대 리스크 중 하나로 꼽았다. 최근 스마트폰 판매 부진으로 2분기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환율 리스크마저 덮치자 삼성전자는 하반기 원가절감과 물류 효율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연초 원-달러 환율을 1050원대로 사업계획을 짰던 LG디스플레이도 하반기 사업계획을 일부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환율 리스크에 취약한 중소기업들도 움직임이 빨라졌다. 지난해 6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중견기업 A사 대표는 “환율 때문에 이미 매출이 수백억 원 줄었다”며 “국내 생산을 모두 해외로 돌려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신민기·최예나 기자
#환율#원-달러 환율#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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