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북한인권 문제 해결 돕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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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전 아웅산테러때 희생 故김재익 수석 아들 김한회 변호사

1983년 북한의 버마 아웅산 묘역 테러로 아버지 김재익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잃은 김한회 변호사(왼쪽)와 김 변호사의 아들 태완 군. 두 사람이 나란히 북한 인권 관련 행사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김한회 변호사 제공
1983년 북한의 버마 아웅산 묘역 테러로 아버지 김재익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잃은 김한회 변호사(왼쪽)와 김 변호사의 아들 태완 군. 두 사람이 나란히 북한 인권 관련 행사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김한회 변호사 제공
1983년 10월 북한의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역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의 장례식. 고 김재익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지인들은 당시 대학생이던 그의 큰아들 한회 씨가 한 손으로는 초등학생이던 남동생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묵묵히 서 있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30년이 지난 지금 김한회 씨(50)는 변호사가 되어 30년이 지난 지금 김한회 씨(50)는 변호사가 되어 북한 인권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아웅산 테러 사건 30주년이 되는 다음 달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가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제소하려는 사단법인 물망초 등 사회단체들의 막바지 준비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북한이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을 강제 억류하고 있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김 변호사는 최근 동아일보와 진행한 e메일 및 전화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어린 동생과 80세 넘으신 할머니가 제일 걱정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그의 할머니는 6·25전쟁 때 남편을 인민재판으로 잃고 아들 3명도 의용군으로 끌려간 뒤 실종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북한 때문에 피해를 본 가족들이 우리뿐이겠느냐”며 “국립묘지만 가 봐도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묻히지 못한 피해자는 실제로 훨씬 많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요즘 북한이 회원국이 아닌 ICC의 관할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며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인사들을 제소하기 위한 자료를 준비 중이다. 그는 “북한 내의 일반적 인권유린과 달리 국군포로의 경우 휴전 당시 포로 송환을 담당했던 중립국 송환위원회와도 연관이 있다. 그래서 ICC에도 관할권을 주장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에 직접 들어갈 수는 없지만 탈북자 증언이나 역사 자료들을 통해 여러 가지 사실 확인이 가능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예를 들어 소련의 옛 외교문서에 기록된 김일성과 마오쩌둥(毛澤東) 간 회담 내용 중 “국군포로들의 탈출을 막고 중립국 감시단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들을 북쪽 지역으로 보냈다”는 김일성의 발언이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떳떳하게 정식으로 제기하지 않아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김정일과 만났을 때 한국의 정치인들 중 유일하게 이 문제에 대해 북한으로부터 긍정적 약속을 받아낸 분인 만큼 앞으로 더 발전된 대안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국군포로의 수기를 영어로 번역해 화제를 모은 아들 태완 군(17)과 북한 문제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늘 마음을 열어두어라. 가능한 한 많은 각도에서 사실을 직시하라’고 강조하셨다”며 “그 가르침을 내 아이에게도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최근 한국에서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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