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6번째 인사 참사, 민정수석부터 물러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6일 03시 00분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어제 자진 사퇴했다. 김용준(국무총리), 김종훈(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황철주(중소기업청장), 김학의(법무부 차관), 김병관 후보자(국방부 장관)에 이어 박근혜 정부 들어 6번째다. 이 정도면 인사 실패가 아니라 인사 참사(慘事)라고 할 만하다.

인사 실패의 1차적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고 그 다음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다. 수첩에 의존해서 사실상 단수로 장관급 후보자를 지목하는 박 대통령의 톱다운 인사는 문제가 많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이 레이저 눈빛을 무서워하지 않고 검증과 여론 수렴 결과를 소상히 보고할 수 있도록 언로(言路)를 열어 줘야 한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누가 박 대통령에게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기 힘든 것이 대통령책임제의 모순이자 한계다. 정부 고위직 인사 검증과 민심 전달의 사령탑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라도 책임을 물어야 할 이유다. 본보는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인사가 만사다’ 특집을 통해 민정수석의 자격으로 ‘목을 내놓고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인물’을 꼽았다. 곽상도 민정수석은 목을 건 직언은커녕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연루 의혹과 관련된 경찰 보고조차 묵살했다는 말을 듣고 있다.

한만수 전 후보자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당연히 검증을 했으나 해외 계좌 추적은 짧은 (검증) 기간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은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자료를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이 발견해낸 의혹을 눈 번히 뜨고 놓쳤다. 만일 한 전 후보자의 해외 계좌 의혹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덮었다면 중대한 직무 태만이다.

대형 로펌에서 기업 입장을 대변했던 사람들을 잇달아 장관급으로 영입하는 데 대해서도 민심이 곱지 않다. 이를 박 대통령에게 확실히 전달하지 못한 것도 민정수석실의 책임이다. 오죽하면 집권당인 새누리당 서병수 사무총장마저 “제도 개선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관계자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민정수석실을 겨냥했겠는가. 곽 수석 등 민정라인을 즉각 사퇴시켜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조속히 민심 수습에 나서는 게 옳은 해법이다.

그런데도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새누리당의 문책 요구에 대해 청와대에서 논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인사위원장을 맡은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사람들은 아직도 민심의 무서움을 모르고 박 대통령의 치마폭 뒤에 숨어 있는 형국이다.

5년 전 이명박 정부 때 인사파동의 불똥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옮겨 붙어 촛불 시위까지 일어나자 당시 이 대통령은 2008년 5월 22일 첫 대국민 담화에서 “지금까지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고 사과했다. 박 대통령도 책임을 통감한다면 사과라도 해야 한다. 약속과 신뢰를 누누이 강조했던 박 대통령이 ‘대탕평 인사’ 약속은 지키지 않고, 인사 참사만 빚어지는 데 대해 국민의 실망은 크다.

어제 박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 경호실장 등 장관급 3명과 곽 민정수석 등 차관급인 수석비서관 9명에게도 임명장을 주었다. 곽 민정수석을 경질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늘 “이번에 국민행복시대를 우리가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사 참사는 국민의 행복을 빼앗는 일이라는 걸 대통령이 모른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한만수#자진 사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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