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상처받은 삶에 파고드는 뒷골목 루저들의 사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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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만화원작 뮤지컬 ‘심야식당’ ★★★★

일본 만화가 아베 야로의 동명 만화를 한국에서 뮤지컬로 옮긴 ‘심야식당’은 추억의 음식을 통한 힐링의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다엔터테인먼트 제공
일본 만화가 아베 야로의 동명 만화를 한국에서 뮤지컬로 옮긴 ‘심야식당’은 추억의 음식을 통한 힐링의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다엔터테인먼트 제공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살아오면서 별 마음의 상처 없이 자랐고, 주변엔 속마음을 나눌 진실된 친구들이 적어도 몇 명은 있으며,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한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고, 외모 콤플렉스 하나 없고, 현재는 풍요롭고 미래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면, 이 뮤지컬은 당신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할 것이다. 뮤지컬은 우리 주변의 온갖 ‘루저(열패자)’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하지만 당신이 완벽한 ‘위너’가 아니라면 감정이입은 다른 어떤 공연에서보다 쉽다. 심야식당 주인인 마스터의 작은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모락모락, 누군가의 추억의 음식이 익어갈 때 당신 안의 작은 치유도 시작될지 모르겠다.

일본인 만화가 아베 야로의 인기 동명 만화를 한국에서 뮤지컬로 옮긴 ‘심야식당’(정영 작·김혜성 작곡·김동연 연출)은 화려함과 거리가 먼 소박한 세트지만 디테일이 살아있고, 캐릭터들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진정성이 넘친다.

막이 열리면 왼쪽 눈두덩을 가로지르는 선명한 칼자국이 있는 사내가 일본 도쿄 신주쿠 뒷골목의 식당 문을 연다. 불을 밝힌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며 나지막이 노래한다. “해가 저물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내 하루는 시작되지. (중략)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사람들은 간판도 없는 이 가게를 심야식당이라고 부르지.”

심야식당 단골은 이런 사람들이다. 게이 바를 운영하는 40대 후반의 게이 고스즈, 34년간 스트립쇼를 보아 온 노총각 다다시, 폭력단 간부 겐자키 류, 30대 후반의 노처녀 3인방, 신주쿠의 간판 스트리퍼 마릴린, 무명의 엔카 가수 미유키, 연기자로 변신을 시도하는 왕년의 아이돌 가수 가자미 린코, 성인 에로영화의 전설 일렉트 오키.

달콤한 계란말이, 비엔나소시지 볶음, 오차즈케(녹차밥), 모시조개술찜…. 이들이 주문하는 메뉴엔 저마다 사연이 담겼고, 마스터가 재현한 추억의 음식은 단단히 걸린 마음의 빗장을 벗긴다. 극 중 과묵한 마스터의 지당하신 말씀 하나.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보는 것만큼 서로를 잘 알게 되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뮤지컬 넘버는 쓸쓸함과 유쾌함을 오가며 관객의 마음 안쪽을 파고든다. “우리의 인생은 그저 어둠에 스며들 웃음 같은 거지, 달빛처럼. 어느 날 왔다가 가버릴 여인 같은 거야. 바람처럼.” 이런 노래도 있다. “착한 척 잘난 척 고귀한 척, 그런 척척박사 난 싫어. 내 심장 갉아먹는 바퀴벌레야 사라져라, 내 영혼 빨아먹는 기생충아 꺼져버려. 배운 척, 있는 척, 명품인 척, 그런 척척박사 난 노노. 내 살충제를 받아라. 칙칙 칙칙칙칙, 멸종해라 방해꾼 칙칙 칙칙칙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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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역에 박지일 송영창씨가 번갈아 선다. 2월 17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3만∼7만 원. 1544-1555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심야식당#일본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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