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차기정부에 바란다]<2>김주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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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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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길

지하철에서 노인네들끼리 경로석을 두고 승강이를 벌이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세대 간에 빚어지는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도 쉽지 않다고들 한다. 우리의 역사는 어차피 기존의 가치를 지키려는 세력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세력이 마주 부딪치는 구도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좌석 하나를 놓고 대판 시비를 벌이는 노인네들을 목격하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가 이념이나, 세대 간 혹은 정치적 지향점 같은 문제들 때문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잠깐의 불편함도 참지 못하는 심리와 서열화의 집착에까지 확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입에 회자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로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댓바람에 헐뜯거나 짓눌러버려야 한다는 오기가 우리 생활 깊숙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이처럼 병들게 된 것에는 정치인들이 저질러 놓은 겸허하지 못한 행동과 말, 그리고 편의에 따라 하는 약속, 신뢰를 쓰레기처럼 여기는 정치인들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로써 지금의 정치는 국민적인 불신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된 세상인지 세금도둑을 보고도 도둑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 도둑들을 잡을 생각도 않는다. 그래서 인제 와서는 국고를 거덜 내는 도둑들뿐만 아니라, 공짜를 바라는 세태를 나무랄 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지난해 부과된 세금을 은행에서 빚을 내어서 냈다. 이런 돈으로 낸 세금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도둑을 맞았다면 과연 국세청은 체납자들을 찾아가서 윽박지를 면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런 사회적 괴리는 물론 법이 엄연한데도 그 법을 집행하는 방법과 태도가 흐리멍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보다 더 지엄한 것은 양심이다. 이 양심을 버리는 자들이 정치 일선에 횡행하고 있는데, 가난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는 서민들에게 양심을 가지라고 종주먹을 들이댈 수 있겠는가.

러시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공짜는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쥐덫에 걸려 있는 치즈다’라는 속담이 있다. 특히 젊은이들의 공짜 심리에 불을 댕기게 되면 그 자신을 망치고 나아가서는 나라를 망치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공짜에 눈을 돌리고 싶은 그들에게 정치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 주는 것이다. 삶이 힘에 겨운 사람들은 많다. 세계적 부국(富國)으로 일컫는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쓰레기 더미 위에서 살아가는 극빈층이 존재한다. 빈곤층의 고단함을 헤아리려는 따뜻한 마음가짐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달래주려는 방법이 문제라는 것이다.

선거 기간에 거침없이 내쏟았던 배려와 관용, 소통과 화합을 지켜나가려는 고단할 여정은 우리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한다. 그런 것만 챙겨야 할까. 아니다. 승자는 패자의 고통과 분노가 어디서 어떻게 출발하였는지 꼼꼼하게 살펴서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주어야 한다. 이 순간 패자는 할 일이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승자는 해야 할 일이 몇 배로 늘어나고 말았다. 패자가 쏟아낸 폐부를 찔렀던 흑색선전도 이젠 바람에 날려 버려야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상대방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빌미로 보복의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나의 실패를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거나 나의 승리가 상대방을 무덤에 몰아넣었으므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또 다른 실패를 부를 뿐이다. 갈등을 해결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정은 가능하다. 그것이 상생과 화합을 지향하는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매사에 남을 헐뜯기 좋아하는 사람의 심장은 청명하지 못하다. 남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언어를 구사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사악함에 전염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은 그것을 징벌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모든 것은 용서되고 잠시 옷깃을 스쳐간 바람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빨리 소통과 화합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뢰와 약속 지킴의 정치는 더는 우리로 하여금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게 해줄 것이다.
#박근혜#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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