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진구 “영화 ‘26년’, 모든 게 몰래카메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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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7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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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진구는 “군인들도 쉬게 해준다는 폭염 속에서 촬영해 죽을 뻔 했다”며 영화 ‘26년’ 촬영 소감을 전했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배우 진구는 “군인들도 쉬게 해준다는 폭염 속에서 촬영해 죽을 뻔 했다”며 영화 ‘26년’ 촬영 소감을 전했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내 간절함이 무뎌지더라.”

배우 진구(32)에게 영화 ‘26년’은 그야말로 ‘내려놓음’이었다. 처음 ‘29년’이라는 제목으로 제작에 들어간 이 영화는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제작이 무산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이 계속 바뀌는 최악에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진구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배역도 김주안에서 곽진배로 바꼈지만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이 계속됨에 따라 영화를 향한 그의 간절함도 하나씩 사라졌다. 그렇게 하나 둘씩 마음을 비우고 내려놨을 무렵 다시 영화의 촬영이 시작됐고, 모든 걸 내려놓은 ‘비움’이 완벽한 곽진배를 만들었다. 진구의 마음을 알아서였을까. 영화도 빠르게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 ‘26년’ (감독 조근현, 제작 청어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아버지를 잃고 그 트라우마로 평생 시달리신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넣어야 했던 아들이자 조직폭력배 곽진배 역을 맡았던 진구를 만났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로 상당히 추워졌지만 뜨거운 땡볕에서 기절할 정도로 연기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추운 날씨가 감사하단다. 이날 진구는 메모장을 하나 들고 왔다. 그러고는 뭔가를 끼적끼적 적는다. 뭘 적느냐고 물었더니 “인터뷰를 하다 기억나는 말이나 들었던 말 중 좋은 말을 적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인터뷰 중 인상 깊었던 말 몇 가지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기자 이름을 개구지게 쓱 적더니 ‘인터뷰를 시작하자’고 출발 신호를 보냈다.

▶ “4년의 기다림, 간절함마저 무뎌지게 만들더라” , “지금의 모든 상황, 마치 몰래카메라 같다”


- ‘26’년이 드디어 영화로 탄생했다. 어떤 배우보다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잘 안 믿긴다.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극장에서 막을 내리면 실감이 날 것 같다. 촬영을 하고, 개봉을 하고, 흥행을 하고 있다는 게 꿈 같다. 워낙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다. 지금도 이 모든 상황이 ‘몰래카메라’ 같다. 누군가 나중에 ‘다 뻥이야~!’라고 할 것 같다. 나에게 곽진배라는 멋진 아이를 준 것부터 거짓말 같다.(웃음)”

- 그러게. 다 때가 있나보다. 마치 하늘의 뜻인 것처럼.

“그런 것 같다. 다들 진구가 ‘26년’을 기다렸다고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비겁한 일이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활동했다. 오히려 제작사와 영화가 날 기다려 준거다. 진구가 곽진배가 될 때까지….”

- 그래도, 결국 진구도 ‘26년’을 기다린 것 아닌가. 탄생을 간절히 바랬을 텐데.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4년을 기다리니까 감정이 메말랐다고 해야 되나? 간절함이 무뎌진 것 같다. 진구가 ‘26년’을 만나면서 처음 받았던 충격마저 무뎌지더라. 순간 ‘4년 만에도 이렇게 무뎌지는데 이 영화가 개봉도 안 되면 5.18의 충격이나 아픔은 많은 사람들에게 흐지부지되고 완전히 잊혀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잊혀지면 안 되고 내가 앞장서서 ‘우리 잊지 맙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 멈췄던 촬영이 시작되면서 현장이 즐거웠을 것 같다.

“그렇게 신나지 않았다. 그 때도 무뎌져 있었다. 촬영하면서 크랭크업이 걱정됐고 크랭크업이 돼도 개봉이 걱정됐고, 개봉을 해도 금방 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너무 오래 기다려서 그런걸까.

“그런 것도 있고 여러 가지 복합적이다. 영화에서 정혁(임슬옹 분)이 경찰이 되고 죽은 누나를 회상하며 ‘어른이 되고 경찰이 되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 더럽고 치사하다’라는 대사가 있는데 딱 그 마음이었다. 간절하다고 해도 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 일치감치 맘을 비웠다.”
배우 진구.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배우 진구.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 “‘5.18’에 무지했던 나에 대한 분노, 알려야겠다는 의무감 생겨”

- 오히려 그런 ‘비움’이 연기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연기를 더 편하게 했다. 만약 ‘나는 광주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마치 그들의 아픔을 똑같이 느낀다는 마음을 가졌다면 오버 연기를 했을 것 같다. 그건 관객들에게 반감을 줬을 테고. 그 아픔을 마음속으로 간직한 채 부담감을 갖지 않고 촬영을 했던 건 맞는 것 같다.”

- 전라도 사투리 연기, 점수를 준다면.

“부끄럽다. 촬영장에 계신 전라도 출신 선배님께 사투리를 배웠는데 뭐가 맞는 건지 느낌이 잘 안 왔다. 아마 광주 분들이 보시면…. (웃음)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점수 없음! 하하.”

- 촬영을 하며 울컥했던 순간도 있었나.

“없었던 것 같다. 아까도 말했지만 무뎌져서. 사실 촬영이 끝나고 그 아픔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나는 그 자리가 참 불편했다. 우리가 아무리 이야기한들 유가족의 아픔을 전혀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감히 어떻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 무섭고 두려운 시대 속 진짜 주인공이 아니다. 단지 그걸 연기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밝아지려고 했다. 촬영장 분위기를 띄우려고 많이 노력했다.”

- 메이킹 필름을 보니 진짜 즐겁게 촬영을 했더라.

“따뜻했다. 가족 같은 느낌? 조근현 감독님부터 개구지시다. 이경영 선배님도 장난도 많이 부리고, 장광선배님께서는 우리가 장난치면 반응이 정말 확실하다. 선후배가 아니라 동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할리우드 같다고 할까? (웃음)”

- 곽진배라는 인물의 캐릭터는 확실히 재밌더다.

“극의 재미를 위해서였다. 원작 웹툰을 보면 차갑고 냉철한 건달이지 않나. 그래서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진배 역시 아픔이 있는 아이인데…. 아버지가 처절하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그 트라우마로 정신병원에 가 있는데 어떻게 웃길 수 있겠나. 하지만 그게 진배의 아픔을 숨기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가벼움이 이해가 됐고 전체적인 극의 무게가 무거우니, 나라도 가벼워야 했다.”

- 원래 근대사에 관심이 있었나.

“4년 전까지는 잘 몰랐다. 초등 학교때 ‘5.18’이라 하면 광주에서 대학생 형,누나들과 군인끼리 최루탄과 화염병을 던지며 일어났던 큰 사건이라고만 생각했다. 총과 칼로 같은 민족을 학살했다는 건 전혀 몰랐다. 영화 캐스팅이 결정되고 관련 자료를 보고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 모르고 있었던 나에 대한 분노와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 그렇다면, 영화를 찍으며 달라진 점은.

“영화를 보고 나서 좀 달라진 것 같다. 먹먹함 같은 것? 솔직히 스크린 속 진배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26년’은 내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 유일한 작품이다. 그만큼 나 역시 관객의 입장으로서 본 것 같다. 아 달라진 점은 우리나라는 ‘5.18 민주화운동’말고도 많은 아픔을 갖고 있는 나라다. 그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재미있게 보러와 뜨거움 얻어갔으면…”

- 이번 영화를 통해 ‘진구’라는 배우를 대중들에게 확실히 알릴 것 같다.

“아무래도 나에게 가장 기회를 준 작품이라 그럴 거다. 진구라는 배우를 많이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가장 많았던 영화였다. 그동안 수컷, 남성미 같은 단적인 면만 보여드렸다면 수컷이지만 마음도 따뜻한 사람, 소소하지만 웃음을 준 사람, 눈물도 흘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 영화 ‘26년’을 통해 얻은 게 많을 것 같다.

“그렇다. 함께한 배우들도 얻었지만 영화 속 내 조직인 ‘수호파’ 식구들을 얻은 게 컸다. 고맙게도 본인들의 촬영이 없는 날까지 나를 위해 함께 있어줬다. 크랭크업이 되고 나서 다음날 그들이 너무 보고 싶어 수호파 막내에게 전화해서 암사동에 있는 족발집에서 모임을 갖기도 했다. 영화인으로서 얻는 것은 영화가 막이 내리고 다음에 생각하고 싶다.”

- 이 영화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으면 하는 사람도 있나.

“그것까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단지 몰랐던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사람이 권력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상관이 없다.”

- 사실, 민감한 주제라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것 같다.

“그 호불호가 정말 ‘아 그럴 수 있겠구나’였으면 인정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더 많이 봤다. 그래서 최대한 댓글은 안 보려고 노력한다.”

- 차기작은 들어가고 있나.

영화 ‘명량 회오리바다’를 들어간다. 이정현 씨 남편으로 잠깐 임팩트 있게 나온다. 다음 작품은 기다리고 있다. 10년간 활동하며 3개월 쉬었지만 계속 일하고 싶다. 현장이 나에겐 쉼터다. 살아 있고 사랑받는 느낌이다.“

-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담없이 봐줬으면 좋겠다. 아프고 먹먹하지만 또 재밌는 영화니까. 영화를 보면 분명히 뭔가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재미를 위해 쉽게 와서 뜨거운 걸 얻어갔으면 좋겠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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