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은퇴준비 돈이 전부 아니다]<5·끝>아버지들을 위한 ‘요리교실’ 수강 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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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황태찜 내손으로 뚝딱… 식구들과 수다로 양념 듬뿍”

앞치마 두른 아버지들 “제 솜씨 어때요?”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던 아버지들이 앞치마를 둘렀다. 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문화원 ‘아버지 요리교실’에서 임승미 강사(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와 수강생들이 직접 만든 황태찜, 연어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자랑스레 들어보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앞치마 두른 아버지들 “제 솜씨 어때요?”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던 아버지들이 앞치마를 둘렀다. 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문화원 ‘아버지 요리교실’에서 임승미 강사(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와 수강생들이 직접 만든 황태찜, 연어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자랑스레 들어보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버지들이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한 명씩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재킷과 코트를 벗고 알록달록한 앞치마를 입은 뒤 커다란 양은 냄비 앞에 모여 그 안에 담긴 콩나물을 다듬기 시작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문화원의 ‘아버지 요리교실’에 참석한 수강생들이다.“눈처럼 게으른 게 없고 손처럼 부지런한 게 없단 말이 있어요. 콩나물 쌓인 거 보니 한심하든데 실제로 다듬기 시작하니 별거 아니네.”(박광수 씨·66) “아, 혹시 대가리만 잘라야 하는데 꼬리도 자르시나요?”(임승미 강사) “원래 ‘거두절미(去頭截尾)’라잖아?”(신강균 씨·60) “요샌 꼬리 안 잘라요. 숙취해소에 좋은 성분이 꼬리에서 나온다고요.”(임 강사) “아, 그래요?”(이구동성)》
오후 6시 30분 강의가 시작됐다. 이날 만드는 요리는 황태찜과 연어아보카도 샌드위치다.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황태찜은 수강생 연배들이, 연어 샌드위치는 자녀들이 좋아할 만한 요리다.

강의가 시작되자 수강생 12명이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강사의 말을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강사가 먼저 요리를 만들고 시식한 뒤 실습에 들어가는 순서다. 수강생들은 요리가 돼가는 중간 중간 휴대전화로 사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자력갱생(自力更生) 위해 요리 배워

서초문화원의 아버지 요리교실은 벌써 1년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임 강사는 “퇴직한 아버지들이 부인을 따라 요리교실에 왔다가 쑥스러워 계속 나오기 힘들게 되자 ‘우리끼리만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해 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윤용기 씨(67)는 “서른넷 된 딸이 외국에서 아이를 낳아 집사람이 산후조리 해주러 12월에 출국한다”며 “꼼짝없이 혼자 먹고 살 방법을 찾아야 해 요리를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8월 말 은퇴한 김성문 씨(64)는 “집사람에게만 밥 해 달라기 미안해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주위에 요리 배우고 싶은 친구들은 많은데 용기가 없어서 못 온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강생은 “(음식) 먹는 건 좋아하지만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면서도 “남녀의 할 일을 나누는 시대는 지났고 본인 건강이 허락하는 한 뭐든 배워서 직접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강생들이 요리 강의를 들은 뒤 실제로 집에서 만들어 본 음식은 김치찌개, 홍합죽 같은 쉬운 것 서너 가지에 불과하다. 음식을 처음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신 씨는 레시피에 ‘약간’ ‘적당히’라는 표현이 아직도 어색하다. 또 요리를 매일 하는 것이 아니어서 남은 재료를 버려야 하는 것이 아깝기만 하다.

그래도 직접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일은 새로운 기쁨이다. 2003년 육군에서 예편한 장희 씨(67)는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내가 직접 요리를 해보니 아내가 힘든 점도 알게 됐고 홍합죽 끓여 아침에 내놓았을 때 아내가 좋아하는 걸 보고는 다음에 또 한 번 끓여먹었다”고 자랑했다.

수강생 중 한 명은 음식을 다 만든 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으로 아들딸과 사위에게 보내기도 했다. 답변이 즉시 왔다. “맛있겠다∼(아들)” “언제 만들어줘요?(딸)” “먹으려면 5만 원(사위).” 답글을 보는 그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떠오른다.

○ 식탁 위 ‘수다쟁이’가 되자

음식을 만들어 가족과 나눠먹고 식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은퇴 뒤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 심리적, 정신적으로 변화를 겪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예민해져 싸움이 잦아지기 쉽다.

그런데도 하루 평균 대화시간은 늘그막의 부부들에게 매우 부족한 편이다. 삼성생명에 따르면 자녀독립 이후 오롯이 부부만 남아 있는 시기에 부부간 대화시간이 1∼2시간인 비율이 39.3%이고 30분 미만도 14.3%였다.

우리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갈등의 시작은 대개 대화 부족 때문”이라며 “‘몇 년을 함께 살았는데 눈빛만 봐도 알잖아’라고 생각하지 말고 ‘고맙다’ ‘미안하다’ ‘힘들다’ 등의 감정을 직접 얘기하는 수다쟁이가 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만약 은퇴한 남편이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다면 아내의 일손을 덜어주고 대화의 기회도 마련하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어 ‘삼식이(집에서 세 끼 먹는 남편)’로 불리며 구박받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은퇴 부부 대화의 밑바탕이 될 남성들만을 위한 요리교실은 서초문화원(매주 목요일 오후 6시 30분∼8시·02-2155-8607∼8) 외에도 서울 강남구 평생학습센터(매주 월, 수요일 오후 7∼10시·02-3423-5286), 서울 양천구청(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1시·02-2620-3385) 등에서도 진행한다. 다른 여러 지방자치단체들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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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기자 nuk@donga.com
#100세시대#은퇴준비#요리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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