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의 슬픔’이 아니죠… ‘베르터의 고뇌’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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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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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오역 정정한 세계문학시리즈 펴내

‘목련꽃 그늘 아래서/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박목월 시인의 시 ‘4월의 노래’의 도입부. 작곡가 김순애가 곡을 붙인 가곡으로도 익숙한 이 노래의 일부를 ‘베르터의 편질 읽노라’로 바꿔 부르면 어떨까.

출판사 창비가 ‘창비세계문학’ 시리즈(사진)를 펴냈다. 1차분으로 11권을 선보였고, 앞으로 매년 10여 권을 펴낼 계획이다. “원문과 일일이 대조해 엄격한 번역을 했다”는 이 전집의 1호는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익숙한 제목과는 차이가 있다. 이유가 뭘까.

이번 전집의 기획위원이자 직접 번역자로 참가한 임홍배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의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1774년 괴테가 펴낸 이 책의 원제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이다. 국내에는 1940년대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때문에 일본어 발음 ‘베루테루’에 영향받은 ‘베르테르’가 됐다는 것. 올바른 독일어 발음은 ‘베르터’란 설명이다.

또 ‘Leiden’은 영어권에서는 ‘Sorrow’로 번역됐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영향을 받아 ‘슬픔’으로 번역됐다는 것. 하지만 ‘Leiden’이 단순한 슬픔이 아닌 베르터의 고통과 괴로움을 복합적으로 그린 단어이기 때문에 우리말로 옮기면 ‘고뇌’로 번역하는 게 맥락에 맞다고 임 교수는 말했다. 또 ‘Leiden’이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인 것은 베르터의 고뇌가 그만큼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의 제목으로 소개됐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지하에서 쓴 수기’란 제목으로 나왔다. 기획위원인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영어식 제목(Notes from Underground)을 그대로 옮겨 ‘from’이 ‘으로부터’가 됐던 번역투 문장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자에게 익숙한 제목을 포기하는 점은 판매에 불리할 수도 있다. 임 교수는 “틀린 줄 알면서도 앞선 제목들을 그대로 따르기는 힘들었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도 있지만 유명 작가의 작품인 만큼 큰 혼동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창비#세계문학#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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