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29>부부싸움을 잘하는 세 가지 기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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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부부싸움을 피해 도서관에 갔다가 책에서 재미있는 대목을 발견했다.

고대 로마인들이 모시던 신 가운데 ‘비리프라카’라는 여신이 있었는데 특이하게 ‘부부싸움’ 담당이었다는 것. 신전을 찾는 부부들에게는 엄수해야 할 규칙이 있었다. 차례로 자신의 억울함을 여신에게 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신세를 한탄하는 동안에는 남편이, 반대로 남편이 자기주장을 펼 때에는 아내가 입을 다문 채 귀를 기울여야 했다.

남자는 ‘비리프라카의 규칙’에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집에 돌아와 여전히 삐쳐있는 아내에게 제안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싸움이 나면 내가 먼저 당신 불만을 들어줄 테니까 내 차례에는 당신도 아무 소리 말고 들어줘야 해.”

약속은 쉬웠지만 규칙을 핏대 올리는 싸움에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상대의 말을 잘랐다가 다른 싸움으로 불똥이 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사소한 말다툼이 극한의 대결로 이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는 자극적인 말투나 인격적인 모욕, 싸잡아 하는 비난 등이 그랬다. 이런 태도 때문에 애초 부부싸움을 통해 이루려 했던 목표를 상실한 채 오로지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죽기 살기 대결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남자는 아내에게 벌금제도를 제안했다. ‘됐어. 말을 말자’를 금기어로 정해 그 말을 내뱉을 때마다 5만 원을 TV 장식장의 ‘벌금의 신전’에 내놓기로 했다. 아내 역시 ‘당신네 집은…’을 금기어로 했다.

부부는 때로 벌금도 불사해가며 치열하게 다투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부부싸움을 잘하기 위한 세 가지 규칙’을 뽑아냈다. 첫 번째는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일단 유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상대의 말에 끼어들거나 비난하지 않고 인내심으로 들어주는 것, 세 번째는 공감할 부분이 있으면 바로 맞장구를 쳐준다는 것이었다.

비리프라카의 신전은 ‘배우자의 주장을 경청하며 그 입장을 헤아려보라’는 고대 로마인들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가 신의 이름을 빌려 전해지는 체험교육의 현장인지도 모른다.

남자는 ‘벌금의 신전’에 5만 원을 숱하게 넣으며 아내가 싸움을 통해 그간 자신에게 원했던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내는 이기고 싶어서 싸움을 걸어오는 게 아니었다. 아내가 그에게 바란 것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남편의 따뜻한 관심이었다.

어쨌든 ‘벌금의 신전’에 큰돈이 모였다. 자주 싸운 덕분에 여행을 가게 될 모양이다.

한상복 작가
#한상복#남자이야기#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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