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깨우치는 죽음교육, 어릴 적 받아야 삶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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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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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교육’ 동화책 펴낸 고정욱 작가-오지섭 교수 대담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고정욱 작가(왼쪽)와 오지섭 교수. 두 사람은 “금붕어가 죽고, 화초가 시들고, 달이 기울고,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두 생활 속 죽음 체험”이라며 “경쟁적인 입시교육에 메말라가는 아이들에게 생명탄생과 죽음의 원리를 깨닫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고정욱 작가(왼쪽)와 오지섭 교수. 두 사람은 “금붕어가 죽고, 화초가 시들고, 달이 기울고,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두 생활 속 죽음 체험”이라며 “경쟁적인 입시교육에 메말라가는 아이들에게 생명탄생과 죽음의 원리를 깨닫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고3 수험생의 성적 비관 자살은 더이상 뉴스도 아니다. ‘왕따’와 학교 폭력에 중학생이 자살하고,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사는 게 힘들다’며 뛰어내린다. 한림대 의대 연구 결과 우리나라 초등학교 1학년 학생 100명 중 약 4명이 ‘죽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 이제 어린이 청소년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최근 출간된 ‘여름캠프에서 무슨 일이?’(주니어김영사)는 동화책으로는 생소했던 ‘죽음 교육’을 주제로 한 책이다. 방학 동안 리더십 캠프를 떠난 학생들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다 떠내려 온 청년의 시신을 발견한 뒤 교관 선생님과 함께 죽음을 주제로 한 체험 프로그램을 하면서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동화 ‘여름캠프에서 무슨 일이?’에 실린 삽화. [1] 여름방학을 맞아 리더십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 [2] 히말라야 등반 도중 조난당해 죽음을 체험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캠프 교관장. [3] 죽음에 대해 배우고 있는 아이. [4] 캠프 뒤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엄마 품에 안기는 우석이. 주니어김영사 제공
동화 ‘여름캠프에서 무슨 일이?’에 실린 삽화. [1] 여름방학을 맞아 리더십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 [2] 히말라야 등반 도중 조난당해 죽음을 체험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캠프 교관장. [3] 죽음에 대해 배우고 있는 아이. [4] 캠프 뒤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엄마 품에 안기는 우석이. 주니어김영사 제공
이 책을 쓴 고정욱 작가(52)와 감수를 맡은 오지섭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50)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고 작가=저는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어요. 고열에 시달리다 겨우 살아났죠. 그러나 장애인으로 살면서 인생의 고비마다 숱하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했어요. 결국 인간이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게 됐어요. 아이들이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썼습니다.

△오 교수=죽음 교육이란 또 다른 말로 하면 ‘삶의 교육’입니다. 제가 ‘죽음의 이해’ 같은 강좌를 많이 하는데, 대부분 나이 드신 분이 많이 와요. 그러나 ‘죽음 교육=삶의 교육’이라는 취지에서 본다면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볼 수 있죠.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이니까 어릴 적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미국 영국 스웨덴 호주 등에서는 1년에 10시간 이상 학교 정규과목으로 죽음 교육을 실시한다. 독일의 경우 초중고교의 죽음 관련 교재만 20종이 넘고, 일본 게이오고교는 죽음 교육을 통해 자살과 학교폭력, 왕따 문제를 해소했다고 한다. 고 작가는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이 있는 아이들은 남을 괴롭히거나 왕따시키지 않는다”며 “죽음 교육이야말로 어릴 적부터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작가=어린이들이 쉽게 죽음을 접할 기회는 애완동물의 죽음입니다. 집에서 키우던 병아리나 강아지가 죽었을 때 땅에 묻어주고 꽃을 꽂아준 아이들은 죽음에 대한 강렬한 ‘추억’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애완동물이 죽으면 직접 치우고, 아이들에게 “야, 가까이 오지 마” 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아이들을 친척집에 맡기고 장례식에 데려가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가까운 사람이나 동물을 떠나보내는 경험은 인격이 성숙되는 데 중요한 과정입니다.

△오 교수=요즘 TV, 영화에서는 죽음을 너무 가볍게 취급합니다. 게임에서는 ‘리셋’만 하면 다음 판에 주인공이 또 등장하죠. 이런 때문인지 현실에서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잘 체감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죽음과 관련해 판단력이나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 인터넷 자살사이트에 들어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자기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 작가=연예인의 자살은 인기, 명예, 부와 삶의 가치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비극입니다. 삶은 무엇을 이뤄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인데 말이지요. 요즘 JYP와 같은 아이돌 그룹 기획사에서는 연습생들에게 성교육과 외국어교육을 한다고 하는데, 삶의 소중한 가치에 대한 교육도 할 필요가 있어요. 아이돌 그룹은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오 교수=한국 사회에는 예로부터 죽음을 기피하고, 금기시하는 풍토가 있어요.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고, 될 수 있으면 죽음에서 멀리 떨어지려 하지요. 그런 현상들이 죽음에 대한 오해를 낳았습니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에서 대중들에게 시신을 공개한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삶과 죽음을 분리시키지 않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되어야 좀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동화책#죽음교육#고정욱#오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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