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 기자의 여기는 칸] ‘또 다시’ 임상수의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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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6일 21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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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도발적이었다.

임상수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거르지 않았다. 앞으로 공격할 대상은 “좁은 한국이 아니라 백인의 나라”라고 공개했다. 임 감독의 이 말에 기자회견장에 모인 외신 취재진들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제65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의 폐막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7시30분(이하 한국시간) 프레스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경쟁부문에 진출한 ‘돈의 맛’(제작 휠므빠말) 공식 기자회견에서 임상수 감독은 “한국이라는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온 감독이라고 나를 우습게보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제 백인들을 공격할 영화를 찍을 것이다. 한국은 너무 작다”고 말했다.

임 감독이 이 말을 꺼낸 이유는 ‘칸에서 공개된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을 묻자 나온 대답이다. 임 감독이 이 답변을 할 때는 불어 통역사가 네 차례로 나눠 말을 전달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기자회견 내내 임 감독은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으면서도 입에서는 ‘직설’이 쏟아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아주 우아하게 살고 있는 백인들에게 질문하고 싶다”고 말한 임상수 감독은 “그들 삶의 밑바탕에는 고통 받는 이주민이 있고 그 문제를 오랫동안 외면한 결과 테러리즘이 나온 거라고 생각하는데, 백인들의 생각은 어떤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돈의 맛’은 돈이 만든 권력으로 철옹성을 쌓고 사는 한국의 재벌가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 제작과정을 돌이키던 임 감독은 “나는 누구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내 식대로 한다. 그런 사람이 또 예술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회 리더 입장에서는 나의 비판적인 태도가 ‘왱왱’거리는 모기처럼 귀찮을 수도 있지만 넓은 포용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40여 분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임상수 감독을 비롯해 윤여정, 백윤식, 김강우, 김효진이 참석했다. 윤여정은 ‘임상수 영화 속 여주인공은 마녀 같다’는 질문에 “마녀 맞죠”라고 받아쳤다. 칸에 와서도 윤여정은 여전히 셌다.

‘돈의 맛’ 주인공들은 27일 오전 5시 공식 상영에 맞춰 칸 국제영화제 공식 상영장인 르미에르 대극장 레드카펫을 밟는다.

[다음은 ‘돈의 맛’ 공식 기자회견 일문일답]

-권력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다루는데 그런 소재를 선택하는 이유는?
임상수 “모든 영화가 내가 만든 영화 같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영화로 정치적·사회적인 코멘트를 하고 싶다. 지금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돈의 맛’이 다룬 그 소재이다.”

-‘하녀’와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데.
임상수 “영화에서 오버랩 되어 나오는 장면이 있으니 연관은 있다. 하지만 완벽히 새롭고 독립적인 작품으로 봐 달라. ‘하녀’는 리메이크였기에 어떤 한계를 느꼈다. ‘돈의 맛’이야말로 가장 임상수스러운 주제다.”

-영화 속 재벌 집안을 많은 예술품들로 채운 이유가 있나.
임상수 “집에 채운 미술품의 가격이 영화 제작비보다 더 비싸다. 전부 친구들을 동원해 제공받았다. 사실 한국의 수퍼리치(재벌)들은 그렇게 산다. 수퍼리치들은 내 영화를 싫어하지만 그 부인들은 내 영화를 보고 가서 자신들의 집을 영화처럼 꾸밀 것이다.”

-유럽 예술영화의 느낌도 난다.
임상수 “내가 만드는 작품의 기원이라고 할까…. 60년대에 유럽식 아트하우스 필름 아니다.
오히려 그 전 고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발자크, 세익스피어 라든지. ‘맥베스’ ‘햄릿’ 같은 10대 때 읽은 책을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다시 한 번 읽으며 ‘돈의 맛’ 시나리오를 썼다. 세익스피어의 기운을 느끼고 싶어서.”

-‘하녀’도 ‘돈의 맛’도 여주인공이 마치 마녀 같고, 판타지적인 설정이다.
윤여정 “마녀 맞다. 판타지로 봐주면 더 감사하다.”
임상수 “마녀일 수 있지만 대단히 귀엽게 그리고 싶었다. 윤여정과 백윤식의 관계도 그로테스크 하지만 페이소스가 있다. 프레스 스크르닝 때 윤여정·김강우의 섹스 신에서 웃음이 나왔는 지 궁금하다. 귀엽지 않은가.”

-돈과 성, 모두 세련된 느낌이다. 임상수는 표현주의자인가?
임상수 “표현주의자의 반대가 리얼리스트라면, 나는 아주 냉정한 리얼리스트다. 한 가지 주목해 봐야할 건 김강우가 재벌가에 들어가 집안을 본다. 김강우의 시선이 중요하다. 김강우와 반대 시선에서 집안을 보는 사람이 김효진이다.”

-이창동 감독이나 임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 모두 여주인공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부각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윤여정 “이창동의 여주인공과 임상수의 여주인공은 굉장히 다르다. 내가 영화에서 연기한 여자를 보자. 대한민국에서 돈 많고 권력가인 남자가 젊은 여자와 그런(불륜) 관계를 맺었다면 박수 받을 일은 아니지만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가 한다면? 그건 끔찍하다. 아, 이 사람(임상수)이 남녀를 같이 평등하게 그리고 있구나. 내가 맡은 역할도 대한민국에서는 진일보한 캐릭터이다. 이창동의 여성상과는 굉장히 다르다.”

임상수 “‘돈의 맛’의 주인공은 김강우가 연기한 주영작이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알지만 옳은 대로 행동할 수 없는, 질식하게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위로를 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돈의 맛’ 역할인 나미를 어떻게 그리려고 했나?
김효진 “착한 캐릭터는 아닌 것 같다. 김강우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사람이다. 자신의 환경, 부를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자린 캐릭터라서 정상적이다? 착하다? 나쁘다?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나미는 이 영화에 유일하게 희망을 불어넣는 역할이다.”

-미쟝센이 섬세하고 차가운 느낌이다. 그런데 평소 임상수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연기를 지도할 땐 어떤가.
백윤식 “보는 대로 그대로다. 재미있다. 개인의 성격이 굉장히 재미있게 구성된 감독인데 ‘쿨’이란 단어를 잘 쓴다. 우리는 ‘쿨 감독’이라고 부른다.”

김강우 “항상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 엄청난 독설을 갖고 있다. 가슴에 팍팍 꽂히는 직설이 있다. 그 직설이 마치 직구처럼 가슴에 꽂힌다.”

김효진 “연기 지도할 때 자꾸 시범을 보인다. 동작, 표정이 크다. 배우 입장에서 ‘똑같이 하라는 거야?’란 생각도 들고 부담스럽다. 나중엔 내 방식대로 했다. 시범을 보여주는 게 더 불편하다.”

윤여정 “겉으론 웃지만 뒤에 뭐가 있는 지 잘 모르겠다. 머리가 굉장히 좋다. 나는 언제든 머리 좋은 감독의 요구는 받아들인다. 몸소 시범을 보일 때도 있는 이번엔 섹스 신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려고 했다. 아, 정말 부담스럽다. ‘내가 한다, 해’ 하며 감독을 말렸다.”

-한국의 특정 재벌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영화다. 제작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임상수 “음. 네. 어…. 시나리오를 완성한 다음 투자받기가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투자 받아 영화를 찍었다. 나는 누구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내 식대로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또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사회 리더 입장에서는 나의 비판적인 태도가 ‘왱왱’ 대는 모기처럼 귀찮을 수도 있지만,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돈의 맛’이 완성된 건 포용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재벌은 그만의 특이성이 있다. 영화가 칸에서 공개된 뒤 한국 재벌을 바라보는 반응이 어떤가.
임상수 “프랑스 사회에 개인적으로 존경심을 갖고 있다. 한국 사회도 잘 발전하고 배워야 할 점도 있다. 최근 프랑스 사회학자 부부가 쓴 책을 읽었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친한 부자들의 관계, 정치적 관계를 다뤘다. 수준차이는 있겠지만 어쩌면 그렇게 한국과 똑같은지. 이탈리아도 같은 점이 있고 스페인, 그리스의 경제 위기도 뭔가 위장하고 있던 게 폭발하는 것 같다.

‘돈의 맛’은 단순히 한국 사회,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백인의 사회, 미국이나 유럽이 만든 식민지 시대가 끝났다고 하지만 그건 영토의 문제이지 경제적인 식민지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 속 로버트(백인 기업가 역)의 모습을 외국 관객은 어떻게 봤는지 궁감하다.

유럽, 미국에서 우아하게 폭력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그 삶의 바탕에는 고통 받는 아프리카 이주민이 있다. 오랫동안 외면한 결과가 테러리즘으로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한국이라는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온 감독이라고 나를 우습게보지 말아라. 나는 이제 백인들을 공격하는 영화를 찍을 거다. 한국은 너무 작다.“

-그렇게 한다면, 임상수 감독은 또 비판의 대상이 된다. 두려움은 없나?
임상수 “우아하게 사는 백인들은, 우리보다 더 포용력이 있기를 바란다.”

칸(프랑스) 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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