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영화 ‘퍼펙트 게임’, 왜 하필 스토브리그에! 울컥하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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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4일 1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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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나타났다.

영화 '퍼펙트 게임'(감독 박희곤/21일 개봉)은 진짜 야구 영화다. 등장인물들이 러닝타임 128분 동안 야구만 생각하고, 야구만 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국가대표', '킹콩을 들다' 등 스포츠를 소재로, 소위 '루저'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준 영화는 많았다.

올해 개봉한 '투혼'이나 '머니 볼' 역시 오로지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퍼펙트 게임'은 최고의 자리에서 외롭게 공을 던졌던 두 남자, 또 그 시절 야구를 사랑했던 이들의 99% 야구 이야기다.

이 영화는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를 그린다.

정말 퍼펙트게임을 기록할 뻔한 1981년 대륙간컵 대회를 시작으로 '퍼펙트 게임'은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해태 선동열(양동근)과 롯데 최동원(조승우)의 완투 맞대결을 향해 줄곧 달려간다.


○프로야구 버전의 '써니',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는 법

프로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그만큼 냉정하다. 철저한 성적순이다. 수억 원의 연봉을 챙기는 선수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지 않은 선수가 훨씬 많다. 그래서 선수들은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며 한계에 도전한다. 선수들의 고충을 따지자면 끝도 없는, 비정한 프로의 세계다.

그러나 팬들에게 야구는 "이게 야구지"라며 가슴을 찌릿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퍼펙트 게임'는 그 뭉클함이 집약된 영화다.

올 초 영화 '써니'(감독 강현철)가 발랄한 여고생들을 통해 아련한 그 시절을 되새김질했다면, '퍼펙트 게임'는 좀 더 거칠게 향수를 말한다.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기억되는 1980년 대, 야구는 우리네 감정을 그대로 포효할 수 있던 출구였다. 경기 결과가 부진한 선수들에게 각종 오물을 던지고, 심지어 선수들이 타는 구단 차까지 불태워 버린다.

요즘은 이처럼 격렬하게 사랑을 표현하진 않지만, '까도 내가 까는' 팬들의 무조건적인 애정은 여전하다.

최동원을 지지하는 기자에게 "롯데에서 돈 받은 거 아니냐?"고 분노하고, 선동열의 우승을 점치는 해설가에게 "가만 두지 않겠다!"고 삿대질 한다.

승리를 눈앞에 둔 9회 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에서 상대 팀의 솔로 홈런이 터질 때, 뭉크의 '절규' 뺨치는 비탄이 절로 나온다. 펜스를 찢고 당장 주자에게 달려가고 싶은 그 심정이 비난 영화 속 1980년 대 이야기만은 아니다.

평소엔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그깟 공놀이'에 열광하는 팬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실화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인데…

최동원과 선동열.

경기 이전에 그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아끼는 선후배 사이였지만, 시대가 만든 라이벌이었다.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롯데와 해태로, 부산과 광주로, 연세대와 고려대로 맞붙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존심을 걸고, 또 자신을 위해 그토록 간절했던 것이다.

15회 연장 4시간 56분 동안 최동원은 209개의 공을,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졌다. 현재 프로야구 투수들의 투구수는 평균 100개 미만, 선동열의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이미 실화 자체가 '각본 없는 드라마'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영화 속에는 경기의 긴장감과 박진감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몇 가지 허구의 장치도 설정돼 있다. 경기 중 벌어지는 벤치 클리어링 장면이나 연장 이후 평소에는 한 경기에서 서너 번 볼 수 있는 '극적인 볼 캐치 장면'이 수차례 반복되는 일 등이 그렇다.

박만수라는 허구의 인물은, 보잘 것 없던 이가 기대 이상의 업적을 만들어 내는 '감동의 정점'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허구의 경계다. 예를 들면 들국화의 정서를 공유하는 이에게 말미에 흘러나오는 '그것만이 내 세상'은 울컥하게 만드는 무엇이다. 그렇지 않은 이에겐 '울어야 할 것 같은' 배경음악이다. (올해 개봉한 모 영화에서처럼 '설마 다같이 노래를 부르는 건 아니겠지'하는 공포가 잠시나마 엄습했다)

과연 가공의 인물들이 얼마만큼의 담백한 감동을 줬는지, 좀 더 건조하게 최동원과 선동열을 이야기했다면 어땠을지 고민해 볼만하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어쨌거나 '퍼펙트 게임'은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최동원과 선동열을 내세워, 야구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함께 끌어낸다. '찰진' 욕 세례를 퍼부으며 야구를 보는 팬들을 보면서 비실비실 웃게 되는 그 순간이 그렇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특히 공감하는 재미가 꽤 크다. 귀에 쏙쏙 꽂히는, 공 날아가는 소리도 경쾌하다. 게다가 넉살 좋게 사투리를 구사하는 두 남자 조승우와 양동근의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 모든 뿌리엔 야구와 최동원을 사랑한 감독에 대한 동질감이 있다.

지난 제작발표회에서 박희곤 감독은 "13살 때 잠깐 몸이 약해서 리틀 야구단 활동을 했다"면서 "최동원 선수가 선배였고, 아파트 옆 동에 살기도 했다"고 최동원과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최동원은 어린 박희곤 감독에게 "네가 투수냐? 한 번 던져봐라"며 박 감독의 공을 받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올해 타계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과 선동열 KIA 감독에 대한 깊이 있는 영화를 원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두 사람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영화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최동원과 선동열에 자신을 이입시키고 그 시대를 살았던, 또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 야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감싸 안는 드라마다.

박희곤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우리는 최동원으로, 선동열로, 박만수로 산다"고 말했다. 그는 "살다보면 어떤 날은 최동원이 되고, 어떤 날엔 선동열처럼 누굴 부러워하고, 박만수처럼 힘든 날도 있다"며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영화 속 인물들에 빗댔다. 야구에 웃고 울고, 또 위로받는 팬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퍼펙트 게임'은 진짜 순도 99% 야구 영화다.

아, 3월은 언제 오는가. 야구보고 싶다.

사진제공=동아수출공사, 밀리언 스토리, 다세포클럽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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