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동행기] 이승철, 교도소 소년들과 이룬 기적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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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0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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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소년교도소 수형자들과 ‘네버엔딩 스토리’를 부르는 이승철(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제공|진앤원 뮤직웍스
김천소년교도소 수형자들과 ‘네버엔딩 스토리’를 부르는 이승철(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제공|진앤원 뮤직웍스
말쑥한 정장에 나비 넥타이, 가슴에 장미꽃을 꽂은 소년들. 조용한 분위기 속에 인순이의 노래로 친숙한 ‘거위의 꿈’이 울려 퍼졌다.

진지한 표정으로 음 하나하나 또박또박 부르고, 노랫말 한 소절도 힘을 줘 부르는 소년들. 탁월한 실력은 아니었지만 목소리에선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28일 오후 ‘이승철과 함께 하는 드림스케치 사랑콘서트’가 열린 경북 김천시 김천문화예술회관 대극장.

가수 이승철은 마이크 대신 지휘봉을 들고 합창을 지휘했다. 이승철이 지휘를 맡은 소년들은 김천소년교도소 수형자 18명으로 이뤄진 ‘드림스케치’ 합창단이다.

● 악보도 못 읽는 소년들, 기적을 일구다

이승철은 소년들과 끊임없이 시선을 맞추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거위의 꿈’을 마친 이승철은 “처음에는 이렇게 잘 되리라 생각 못했다. 이게 영화 속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말 현실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인사하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말을 멈추고 눈물을 흘렸다.

이런 모습을 본 객석에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흘렀고, 이승철과 함께 무대에 선 소년들은 흐르는 눈물을 막으려 애써 천정을 올려다봤다.

눈물을 훔친 이승철은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 대단한 음치였다”며 이내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이승철의 말처럼 합창단원 18명은 6개월 전만 해도 악보를 읽을 줄 몰랐다. 음정을 못 맞추는 음치였고, 박자도 못 맞추는 박자치였다.

이들에게 합창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한여름 무더위는 지친 이들의 의욕을 꺾었다. 이때 희망을 준 사람이 이승철이었다.

이승철은 9월부터 드림스케치의 멘토로 참여했다. 그는 형처럼, 친구처럼 대하며 언뜻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격려했다.

김천소년교도소는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만 19세 미만의 소년범을 만 23세까지 수용하는 교정시설이다. 합창단에 참여한 소년들은 사연도 제각각이었다.

정신지체와 언어장애 1급인 부모와 대화를 한번도 나눠본 적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라온 강모(20) 군은 치매에 걸린 82세 할머니에게 잘 있다고 인사하고 싶어 지원을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부모를 본 적 없다는 문모(20) 군은 부모를 어쩌면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용기를 냈다.

● 음악, 사람을 바꿀 수 있는 멜로디

이승철은 멘토가 된 첫날 과제를 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사과하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고, 그 사연을 모아 ‘그대에게만 드립니다’라는 노래로 만들어 이날 공연에서 ‘드림스케치’ 합창단이 불렀다.

‘어두운 하늘/하루하루 힘들었던 날들/후회해도 소용없었고/용서도 빌어봤지만/지난날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기에/두려움이 나를 잡아도/한번 크게 웃자 친구야’(후략)

드림스케치 소년들은 미안한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고 역경을 딛고 꿈을 향해 일어서겠다고 다짐하는 노래를 눈물로 불렀고, 관객은 따뜻한 박수로 이들을 약속을 격려했다.

앙코르가 쏟아지자 이승철은 ‘네버엔딩 스토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승철의 뒤에서 노래하던 소년들은 하나둘 눈물을 흘렸고, 유난히 키가 큰 소년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이날 공연을 본 권재진 법무장관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무대에 올라 “오늘 내가 본 것은 공연이 아니라 기적이었고 감동이었고 순수함이었다. 가수 이승철이 부활이란 팀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 학생들이 부활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도와달라”고 했다.

이승철은 공연을 마친 뒤 “아이들을 처음 봤을 때의 눈빛과 오늘의 눈빛이 너무 달랐다. 음악이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소년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야 되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인생의 전환점이 되서, 이 세상엔 좋은 것도 많고, 자신들도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고 했다.

김천(경북)|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트위터@ziod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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