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기술 최강 한국, ‘아바타’ 만들려면 인문학적 소양 키워야”

  • Array
  • 입력 2011년 1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행복한 과학자들의 희망터치’ 대성황… 청소년 2200여명 귀 쫑긋

《 겨울을 알리는 칼바람이 불던 23일 오후. 추위 속에서도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의 돔아트홀은 ‘행복한 과학자들의 희망터치’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 2200여 명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과학자를 꿈꾸는 중고교생들은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등 명강사로 유명한 과학자 3인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이 행사는 연구개발 성과를 알리고 과학문화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2007년 시작한 ‘금요일에 과학터치’ 5주년을 기념한 것으로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고 동아일보, 동아사이언스, 서울특별시과학전시관이 후원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강의의 핵심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
▼ 우물 깊게 파려면 여럿이 넓게 파야… 학문간 통섭 필요 ▼

“우리는 주어진 과제는 잘 해결했지만 문제를 직접 내는 일에는 서툴렀어요.”

첫 연사로 나선 최 교수는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나라가 ‘스마트폰’에 있어서는 세계 시장을 주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아이폰에 인문학을 담았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소개하며 ‘융합’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최 교수는 “애니메이션을 그리는 기술은 우리나라가 최고지만 영화 ‘아바타’와 같은 명작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기술력 위에 인문학적, 예술적 소양이 덧붙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우물을 깊게 파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한 우물‘만’ 파서는 안 됩니다.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그리고 함께 파야 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세요.”

만약 한 사람이 여러 우물을 파기 힘들다면 여러 분야 전공자가 함께 파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가 지식의 융합을 뜻하는 ‘통섭’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때 소통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소통이란 원래 잘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내 전공 ‘RNA’를 한글키로 치면 ‘꿈’ … 내면의 소리 찾길 ▼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김 교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가과학자로 선정된 그는 어릴 때부터 세계에서 인정받는 과학자가 되기까지 겪은 인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매 순간 제겐 ‘여자가 얼마나 할 수 있겠냐’라는 편견과 가난이라는 외적 장벽이 있었어요. 자꾸 움츠러들며 자신감이 부족했던 내적 장벽도 있었죠. 하지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모든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어요.”

김 교수는 2000년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박사후연구원을 갈 때도, 2001년 막 알려지기 시작한 ‘마이크로RNA’라는 연구 주제를 정할 때도 스스로에게 ‘정말 하고 싶은가’ ‘정말 재밌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내면의 답을 들은 대로 실천에 옮겼다고 말했다. 그는 “실험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며 “수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꿈이 있는 한 포기할 수 없었고, 마침내 놀라운 결과가 나왔을 때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RNA를 키보드에서 한글로 치면 ‘꿈’이라고 나와요. 저는 마이크로RNA 즉 ‘작은 꿈’을 향한 내면의 소리에 지금도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 뇌과학 무한진보 생각이 기계 조종… 나의 미래 그려라 ▼

정재승 KAIST 교수
정재승 KAIST 교수
정 교수는 장차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기계’의 탄생을 예고했다. 생각만으로도 기계를 움직이는 뇌 과학의 미래를 점친 것이다. 그가 연구하는 뇌 과학은 의식은 있지만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1990년 초 뇌의 신호를 읽어 컴퓨터의 커서를 움직이게 하려는 미국 에모리대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현재 정 교수는 전극을 붙인 모자를 쓰고 생각만 하면 멀리 있는 로봇을 조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컴퓨터의 정보를 생물에게 넣어주는 연구도 소개했다. 컴퓨터에 연결된 전극으로 쥐의 뇌를 자극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쥐를 움직이게 하는 것도 가능해진 상태다.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말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정 교수는 “(자신도) 어릴 때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현실로 이뤄졌다”며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가르쳐주는 것만 수용하는 수준에 머물지 말라는 의미다.

“학교에서는 지도를 주고 읽는 법을 알려줘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방법을 가르쳐요.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지도를 그리는 방법이에요.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지도를 완성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