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시장, 시장 사람들]가족들이 말하는 ‘나의 아내’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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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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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신발장에 내 새 구두 사다 놓은 아내, 작별 준비했었구나”
둘째 “엄마, 중병 숨겨… 복싱 대표선발 1등 오른 직후 암수술 알아”

올해 4월 촬영한 성은숙 씨의 가족사진,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성 씨, 손녀 수진 양, 남편 이서규 씨, 맏며느리 노현희 씨, 큰 아들 진호 씨, 작은 아들 태경 씨.
올해 4월 촬영한 성은숙 씨의 가족사진, 왼쪽 아래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성 씨, 손녀 수진 양, 남편 이서규 씨, 맏며느리 노현희 씨, 큰 아들 진호 씨, 작은 아들 태경 씨.
2002년 성은숙 씨(58)가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았던 그때를 가족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남편 이서규 씨(62)는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며, 식구들 때문에 희생하는 바람에 이렇게 됐다며 서럽게 울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울었다는 얘기는 뭣하러 했느냐”며 아내를 타박(?)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집사람이 불쌍하기도 했죠. 다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싶어 더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암이 무서운 병인 건 알았지만 어떻게 생기는 건지는 몰랐습니다. 참 별의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두 아들 진호(34), 태경 씨(31)는 엄마가 암이라는 큰 병에 걸렸다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그저 자궁에 작은 혹이 생겨 떼어내는 거라고 해 그런 줄로만 알았다. 진호 씨는 수술이 끝난 후에야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종사촌 누나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별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저 제 손만 꽉 잡으셨죠. 정말 가슴 아팠던 게 환자복이 조금 헐렁하니까 단추들 사이로 배가 조금 보이잖습니까. 꿰매고도 모자랐는지 커다란 집게를 달아두었더라고요. 얼마나 아프셨을까, 지금도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하니 그냥 눈물이 나는 겁니다.”

태경 씨는 엄마가 수술을 받던 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한 뒤 병원으로 달려왔다. 엄마는 태경 씨가 경기하는 데 지장을 줄까봐 병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100kg이 넘는 슈퍼헤비급 선수인 태경 씨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평소 애교가 많아 마치 딸 같다 하던 작은아들이었다. 전국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10개나 따고, 국제대회인 태국 킹스컵에 나가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온 성 씨의 자랑이었다.

“엄마한테 ‘큰일이라도 났으면 아들 얼굴도 안 보고 갈 생각이었냐’며 오히려 화를 냈어요. 그런데도 엄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죠. 아버지랑 형이랑 얼마나 울었는지….”

어쨌든 수술은 잘 끝났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누구보다도 남편 이 씨였다. 그런데 집에 짐을 챙기러 왔다가 신발장을 열어본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새 구두 한 켤레가 고이 놓여 있었던 것.

“아, 이 사람이 갈 준비를 하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외려 절 위로하더니 속으로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이 씨는 조심스레 아내에게 구두 얘기를 꺼냈다. 아내는 자신이 없더라도 남편이 남들에게 추레해 보이는 건 싫어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성 씨가 두 번째 수술을 받은 2008년에는 가족이 하나 더 많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둘이 늘어나 있었다. 며느리 노현희 씨(30)는 시어머니를 돌보던 중 딸 수진이(2)를 가진 사실을 알게 됐다.

“몸이 사실 좀 좋진 않았어요. 어머니가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처음엔 그냥 감기약만 먹고 말았는데 어머니 수술 후에 그게 임신이었던 걸 알았던 거죠. 어머니가 방사선 치료할 때 임신한 애를 데리고 갔다며 얼마나 미안해하시는지. 모르고 그러셨던 건데, 또 본인이 그 큰 병에 걸린 상황이었는데도 제 걱정만 하시더라고요.”

집안의 복덩이가 된 수진이는 올 6월로 두 돌이 지났다. 그리고 어쩌면 빠른 시일 내에 사촌동생을 볼 수도 있겠다. 태경 씨도 내년 봄 결혼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 모진 풍파를 견뎌온 이 가족에게도 어느덧 기분 좋은 햇살이 가득 비치고 있다.

수원=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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