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완득이’ 특별한 사람들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1일 1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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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도가니'로 아픈 가슴 '완득이'로 치유하자
●우리 주위의 소시민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수작

완득이는 가난합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장애인입니다. 삼촌은 약간 모자랍니다. 어머니는 어릴 때 집을 나갔습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필리핀 사람이랍니다. 학교 성적은 꼴찌입니다. 집은 늘 비어있습니다.

'가출합니다'라는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가도 그 메모를 제일 먼저 발견할 사람은 다시 자기 자신일 확률이 99% 입니다.

10대 후반. 흔히들 질풍노도의 시기라 합니다. 불우환경 종합선물 세트 같은 이런 현실 속에 제가 처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아마도 좌절했을 겁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제일 우울하고, 제일 못났고,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

하지만 완득이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비뚤어지지도 않습니다. 한번쯤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덤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고 오토바이를 타고 밤거리를 폭주해도 그러려니 할 겁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담임 '똥주'를 죽여 달라는 깜찍한 기도를 드릴 뿐, 완득이가 세상에 품은 분노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불행한 '완득이' 그러나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면…

이에 대한 해답은 바로 담임 '똥주'선생이 말해줍니다.

"제가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들의 집에 많이 가 보았는데, 몸이 아니라 마음이 장애인 부모들을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가난.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이런 단어들을 우리는 부끄러워합니다. 입으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심정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 불편함은 곧 부끄러움과 동의어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이들을 피하거나 외면합니다. 내 이야기가 아님을 다행스러워 합니다. 바로 이 것이 영화 '완득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완득이의 아버지는 장애인이지만 아들의 앞날을 걱정합니다. 삼촌은 모자라지만 완득이를 아낍니다. 필리핀 어머니는 집을 나갔지만 아들에게 미안해합니다. 완득이의 학교 성적은 꼴찌이지만 싸움만큼은 소질이 있습니다. 집은 비어있지만 덕분에 조용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입니다.

때로 불편하긴 합니다. 하지만 불우하지는 않습니다. 불우하지 않으니 좌절할 일도 없고 비뚤어질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완득이는 문제 청소년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드라마의 주인공도 되지 않습니다. 인간드라마의 주인공이란 '불우'한 환경을 '극복'했을 때 붙여지는 호칭이 아니던가요?

한번쯤 큰 사고 칠거라 넘겨짚었던 제 자신이야 말로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어느새 완득이의 환경을 불우하다고 정의해 버렸으니까요.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운합니다. 영화는 이렇게 사회적 편견에 대한 일침을 유쾌하게 가합니다.

■"얌마, 도완득!"…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오히려 완득이의 고민은 다른 데 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처럼 '담탱이 똥주' 때문에 미칠 지경입니다. 보통 선생님들 같으면 꼴등 학생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텐데 '똥주'는 간섭을 멈추지 않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완득이의 가정사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수급품으로 받은 햇반을 갈취하기도 합니다. 물론 체벌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완득이가 싫어하건 말건 늘 이렇게 불러댑니다.

"얌마, 도완득!"

그런데 이 똥주 선생님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입니다. 서울대 애들은 대가리는 좋은데 싸가지는 없다고 스스럼없이 선언하지를 않나, 자율학습시간에는 진정한 개인의 자율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지를 않나, 속상한 제자에게 소주를 권하지를 않나, 학생보다 욕을 더 많이 하지를 않나.

언뜻 보면 여지없이 '문제 선생님'입니다. 교육열 대단한 강남이라면 학교에 남아나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문제 선생님일까요? 이 역시 사회적 편견 아닐까요?

그는 자율이란 명목아래 억지로 교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소질 있는 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획일적인 규율이 아닌 학생 개인을 위한 조언입니다.

음악이나 미술 시간에는 선생님 무시하고 다른 공부 좀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편향된 교육제도를 꼬집는 말입니다.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진짜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무나 상식적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노상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에 옥탑방에 사는 그를 보면 잃을 것이 없어 말도 쉽게 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커다란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체 사장의 아들입니다.

기성질서에 안주하면 그 누구보다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계층에 속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편리함을 택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부가 축적되는데 기여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생각합니다. 심지어 법의 허점을 이용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악용하는 친 아버지를 고발하기까지 합니다.

그에게 세상이 말하는 질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이 보는 시선 역시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옳다고 믿는 대로 살고, 두루두루 함께 어울려 살고 싶을 뿐입니다. 피부색이 어둡고 척추가 휜 것은 나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 믿을 뿐입니다. 일을 하다 다쳤으면 치료라도 해서 보내야 한다는 당연한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자기 자신의 내면을 잠식하지 말라"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난 그가 보는 완득이는 반 평균 깎아먹는 꼴찌 학생이 아닙니다. 보듬어 주고 이끌어 주어야 하는 자신의 제자입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외로울 수 있고 조금 더 아플 수 있는 방황하는 청춘입니다. 그래서 완득이의 멘토를 자처합니다.

똥주 선생님을 보면서 어느 순간 얼마 전 타계하신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을 떠올렸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자기 자신의 내면을 잠식하지 말라!"

진정 어느 쪽이 부끄러워해야 할 지 돌아보게 만드는 이 두 사람. 이들은 때로 티격태격하고 때로 서로를 위해 주며 함께 성장해 갑니다. 어느 한쪽이 권위를 세우거나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봅니다.

똥주 선생님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 나가고자 하는 의지라며 완득이의 킥복싱을 응원해주고, 완득이는 경기에서 실컷 두드려 맞아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 환하게 웃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둘의 성장기 속에서 우리는 이 시대 아픈 청춘들의 모습과 소시민들의 삶, 그리고 다문화 가정에 대한 시선 등 다양한 사회의 단면들을 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인 즐겁고 유쾌한 방식으로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는 극적인 사건도 뚜렷한 악역도 팽팽한 갈등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온통 골칫덩어리들인 것 같은데 보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사회적 병폐를 보게 되지만 '분노'보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올 가을, '도가니'로 아픈 마음, '완득이'로 치료받습니다.

정주현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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