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킨들에 반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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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미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닷컴이 ‘킨들 파이어’라는 새 태블릿PC를 발표했습니다. 컬러 화면과 동영상, 인터넷도 되는데 값은 겨우 199달러(약 22만8000원)라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하지만 저는 79달러로 값을 낮춰 팔겠다고 함께 발표한 ‘킨들’이라는 단순한 전자책 단말기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흑백에 책만 읽는 기계였지만 세금을 포함해도 값은 10만 원 이하였으니까요.

당장 하나 샀습니다. 사실 책을 읽는 데 컬러 화면이나 동영상과 인터넷은 별 필요가 없거든요. 오히려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책에 집중하려면 이런 전자잉크(e-ink) 단말기가 더 낫습니다. 예전에 인터파크에서 판매한 ‘비스킷’ 같은 기계가 같은 방식입니다. 다만 이런 국산 전자잉크 단말기는 읽을 전자책이 없어 별 인기를 모으지 못했습니다. 킨들은 달랐습니다. 예약 판매 중인 스티브 잡스의 전기부터 최근의 경제위기를 지적한 마이클 루이스의 ‘부메랑’ 같은 베스트셀러 등이 모두 전자책으로 동시에 출간됩니다.

한글을 아예 볼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유명한 앱(응용프로그램)인 ‘인스타페이퍼’가 킨들용으로도 있어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좋은 글을 찾았다면 이를 인스타페이퍼로 보내놓았다가 나중에 킨들로 읽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킨들은 PDF 파일도 읽어 들이기 때문에 제가 스캔해 놓은 종이책도 볼 수 있더군요.

종이책보다 나은 점도 있습니다. 킨들은 최근 서점에서 파는 종이책이 아닌 ‘킨들 싱글’이란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200페이지가 넘어가는 단행본보다는 짧고, 신문이나 잡지 기사보다는 긴 새로운 형태의 전자책으로 100페이지 전후의 짧은 책입니다. 소설가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이나 뉴욕타임스 음식칼럼니스트 마크 빗먼의 요리 에세이 등이 킨들 싱글로 출판된 짧은 책입니다.

이런 게 요즘 출판계의 새로운 트렌드입니다. 저도 최근 리디북스란 전자책업체를 통해 비슷한 방식으로 짧은 책을 출판했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잡스에 대한 책이었는데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려면 보름은 넘게 걸렸을 겁니다. 하지만 전자책 회사를 거쳤더니 최종 원고를 건넨 뒤 24시간 이내에 책이 판매됐습니다. 신문과 잡지의 속보성과 책의 심층성 사이에 자리 잡은 형태입니다.

킨들도 이렇게 전자책과 종이책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PC와 달리 눈이 피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맘에 드는 구절을 보면 밑줄을 긋고 페이스북으로 보낼 수도 있어 종이책보다 편리합니다.

이런 기계를 만들 수 있던 건 책에 대한 깊은 고민 덕분이었을 겁니다. 킨들을 사서 전원을 켜면 “김상훈 님, 환영합니다(Welcome, Kim)”라는 환영메시지가 보입니다.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조스가 쓴 편지죠.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이 훌륭한 기계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빨리 잊길 바랍니다. 그 대신 다른 수많은 독자가 그랬듯 작가와 함께 지적인 여행을 떠나세요.” 기계의 훌륭함보다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을 강조해야 성공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성공한 큰 기업 하나가 생각나네요. 그들은 이렇게 말했죠. “구글의 목표는 여러분이 최대한 빨리 구글을 떠나 인터넷을 여행하도록 돕는 겁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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