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애플의 여섯 색깔 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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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전례 없는 베스트셀러가 될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단어가 자주 반복되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제품(product)’이란 단어였습니다. 한글 번역본으로 900쪽이 넘는 책인데 이 단어는 책 전체에서 모두 432회 쓰였습니다. 반면 ‘이윤(profit)’이란 단어는 단 39회 등장합니다.

기업의 목표가 아직도 이윤 추구라고 생각하신다면 생각을 바꾸실 때입니다. 적어도 애플의 목표는 훌륭한 제품이었습니다. 실제로 잡스는 죽기 전날까지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집으로 불러 애플의 다음 신제품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세계가 열광한 건 이런 집중과 열정 덕분이었겠죠.

잡스의 라이벌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늘 이런 애플의 매혹적인 제품들에 부러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티브가 지휘하지 않는 애플도 계속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도 했죠.

과연 어떨까요. 예전 같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간혹 애플의 직원들을 만날 때면 잡스의 흔적을 느끼곤 합니다. 애플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일하는 문화의 수준이 높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과시하지 않고, 회사 일을 외부에서 자랑하지 않으며, 팀장의 지시라면 군대처럼 따릅니다. 마치 잘 훈련된 군사조직 같지요.

최근 애플의 한 직원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제품에 집중하는 회사예요. 제품에 신경 쓰지 않고 다른 곳에 신경 쓰면 회사가 금세 망가져요. 그런 기업들을 참 많이 봤어요.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기보다 얼마나 팔 것인가 고민하는 회사들.”

잡스가 죽기 전이었고, 당연히 그의 전기도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그저 잡스의 제품에 대한 생각이 모든 직원에게 체화돼 있던 거죠.

잡스가 없어서 애플이 힘들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애플은 1985년 잡스를 쫓아낸 뒤로도 간간이 히트작을 냈습니다. 이건 잡스 없이도 그가 만들어낸 문화와 그 문화에 반한 독특한 사람들이 이룬 성과였습니다.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잡스는 1997년 애플로 복귀했던 시절에 대해 회고했습니다. 파산 직전이라 당연히 뛰어난 인재는 모두 회사에서 나갔으리라 생각했는데 정말 엄청난 인재 몇몇이 회사를 나가지 않아 놀랐다는 겁니다. 조너선 아이브 같은 사람들이었죠. 잡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왜 남아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남아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왜냐면 나는 여섯 가지 색의 피를 흘리니까요(Because I bleed in six colors)’라고 말하더군요.” 여섯 가지 색은 옛 애플 로고에 쓰인 초록, 노랑, 주황, 빨강, 보라, 파랑을 말합니다. ‘피를 흘린다’는 표현은 미국인들이 애국심을 표현할 때 쓰는 “나는 붉은 피와 하얀 피, 그리고 푸른 피(삼색이 사용된 성조기를 의미)를 흘립니다(I bleed red, white and blue)”라는 관용구에서 따온 것이죠.

앞으로도 애플은 잘해나갈 겁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여섯 가지 색의 피를 흘릴 테니까요. 참 부러운 회사입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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