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디워’가 되지 못한 ‘7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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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8일 10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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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광구'가 개봉 2주 만에 처참히 무너졌다. 창대한 시작과 비교하면 미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

'7광구'는 지난 8월 4일 개봉하자마자 흥행광풍을 일으켰다. 5일 만에 150만3616명을 동원해 1000만 영화 '해운대'보다 흥행속도가 빠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 개봉 2주차인 8월 둘째 주, 신작 '최종병기 활'에 밀린 것은 물론 아예 4위로 폭삭 내려앉았다. 스크린 수가 100개씩 떨어지는 '블라인드' '개구쟁이 스머프'에조차 밀렸다.

8월 15일 현재까지 '7광구'의 스코어는 211만4395명. 흥행작으로 평가되는 200만 라인은 넘겼지만, 이대로라면 손익분기점인 400만 관객에 못 미치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근래 이 정도 낙폭은 보기 힘들었던 데다 향후 반등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영화의 낮은 완성도 탓이다.

'7광구'는 개봉 전부터 미디어의 혹독한 비판을 감내해야했다. "영화 속 괴물은 진화했지만, 영화 자체는 진화하지 못한 셈"(서울신문 나우뉴스), "약 1800컷 가운데 1748컷이 CG임을 자랑하는 것보다 드라마에 신경을 쓰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등 원색적 혹평이 많았다.

그러다 막상 개봉해보니 관객반응도 안 좋았다. '7광구'는 현재 한 포털사이트 네티즌 평점 3.42를 기록하고 있다. 본래 부정적 입소문은 긍정적 입소문보다 더 빨리 퍼지는 법이다. '7광구'는 응당 맞이했어야 할 결말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7광구' 개봉 첫 주까지만 해도 그 '응당 맞이했어야 할 결말'은 일반론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손익분기점 정도는 가볍게 넘기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미디어의 갖은 혹평에도 첫 주말 116만487명을 끌어 모은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어쩌면 2007년 '디워'와 비슷한 상황, 즉 비평계와 대중 간 의견충돌 상황에 불과할 뿐 '7광구' 흥행에 적신호가 켜진 건 아니리란 분석까지 제기됐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8월 9일자 ''7광구', 흥행하는 단순한 이유'가 그 대표적 기사다. 기사는 "일단 관객은 혹평이든 호평이든 자신이 직접 보지 않는 이상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위의 평가는 참고대상일 뿐, 오히려 더 영화를 보고 직접 확인하려는 생각뿐이다. 실제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서 4점대가 채 안 되는 평가에도 관객 수와 예매율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높다"면서 "일부 팬들은 2007년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 때와 비슷하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2주차 성적으로 이 같은 '7광구=디워' 가능성은 이제 산산이 부서진 셈이다. 그러나 그런 결과론적 총평보다도 애초 미디어와 네티즌들이 '7광구' 상황을 '디워'와 연결시킨 점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디워'는 당시 큰 충격을 안겨다준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영화흥행에 대한 상식과 이론, 전략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그러니 '디워'와 엇비슷한 상황만 발생해도 반사적으로 '디워 현상'의 재림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좀 더 꼼꼼히 바라보면 이런 억측이 나왔다는 점 자체가 기이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7광구'가 '디워'의 재림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사실상 개봉 전부터도 충분히 눈치 챌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디워 현상'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랬다.



●'디워 현상'은 지지집단의 인터넷 테러 덕택

표면적으로 '디워 현상'은 비평계와 대중 간 의견충돌이 핵심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마디로 대중은 재미있다는데 비평계만 쓰레기라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개봉 초반만 해도 어마어마한 첫 주 성적에 비해 대중반응은 꽤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곧 그런 분위기조차 사라졌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비평계 vs. 대중 구도가 더 선명하게 제시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비평계로 대변되는 지식층의 권위주의에 비판이 일었고, 곧 대중주의의 반란이 선포됐다. 그리고 그 반란의 동력으로 인터넷이 지목됐다. 지식층 또는 기득권층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언로(言路)가 인터넷 등장과 함께 일반대중에까지 확보된 덕택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의견개진의 평등성'에 따른 혁명처럼 해석됐단 얘기다.

그러나 '디워 현상'의 본질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디워 현상'의 핵심은 심형래였다. 치열한 자기마케팅을 통해 심형래는 일약 영화계 기득권층으로부터 핍박받는 피해자 이미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런 극단적 마이너리티 호소에, 경제 불황 속 마이너리티 감수성을 공유한 일부대중이 적극적 지지를 표했다. 그러면서 몇몇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다. 나머지는 이들 지지집단의 고의적 노이즈 마케팅 활동에 불과했다.

각종 포털사이트 댓글 란 및 게시판 등을 돌아다니며 '디워' 비판입장에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집단린치를 가했다. 린치 논리로서 "괴수영화는 괴수영화 장르 내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법(?)을 주로 내밀었다.

비슷한 논리로 "B급 영화는 B급 영화로서 바라봐야 한다"는 항변을 부르짖기도 했다. 나아가 '충무로'라는 허상의 기득권층 집단을 제시하며 대중의 기득권 피해의식을 자극하기까지 했다.

이런 식의 활동으로 노이즈가 크게 일자 '디워'는 자연스럽게 세간의 화젯거리가 됐다. TV 심야토론 주제로까지 선정됐다. 동시에 '디워' 비판입장을 내세웠던 네티즌들은 더 이상 수면 위로 떠오르질 않았다. 인터넷 마녀사냥 분위기에 염증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통폐합'된 인터넷 여론과 미디어의 집중조명을 통해 '디워'는 손쉽게 800만 관객동원을 이룰 수 있었다. 결국 일부 신앙적 심형래 지지집단의 인터넷 선동과 테러로 일궈낸 게 바로 '디워 현상'이었단 얘기다.

그로부터 4년여가 흐른 지금, '디워'를 놓고 퀄리티 논쟁을 벌이려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디워'는 2007년 당시 시각으로나 지금 시각으로나 마찬가지로 못 만든 영화, 부실한 영화다. 누가 봐도 마찬가지다.

다만 당시는 심형래의 마이너리티 호소가 먹혀 그래도 비난하고 싶진 않았던 것뿐이고, 그나마 비판입장을 고수했던 대중은 물 밑으로 숨어버렸던 것뿐이다. 그리고 노이즈 마케팅 효과로 평소 영화 관람이 잦지 않은 계층까지 극장에 몰려들어 의견충돌이 심한 듯 보인 점도 있었다.

영화 관람이 잦지 않은 계층은 관람 행위 자체를 체험적으로 즐기는 경향이 있어 상대적으로 콘텐츠에 대한 평가는 후한 편이다.

●'7광구'엔 지지할 집단도, 지지해야할 이유도 없다

이제 '7광구'를 돌아보자. '7광구'도 '디워'처럼 못 만든 영화, 부실한 영화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만 '디워'와 같았다.

'7광구'는 특A급 영화였다. 국내 최대영화사 CJ E&M이 제작·배급했다. '해운대'로 1000만 신화를 이룩한 윤제균 감독이 제작했다. '화려한 휴가'로 700만 관객을 동원한 스타감독 김지훈이 연출했다. 영화계 톱스타 하지원이 출연했다.

별 무리 없이 100억 원대 제작비를 마련해 제작됐다. 눈물겨운 고생담도, 누구에게 무시당하거나 폄하당한 역사도 없었다.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기획되고 완성돼 화려하게 데뷔를 치를 예정이었다.

이러니 '7광구'엔 '디워'처럼 열광적 지지집단이 생성될 여지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디워 현상' 도화선이 됐던 마이너리티 감수성이 스며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심형래라는 마이너리티 상징 대신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윤제균-김지훈-하지원 라인이 버티고 서있었다. 사실상 스탠스 면에서 '디워'의 정반대 조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7광구'는 단순히 지지집단만 부재했던 게 아니었다. 일정부분 안티집단의 생성 여지도 충분히 있었다. '디워' 때 상황으로 보자면 그렇다. '7광구'를 제작한 영화계 기득권층은 '디워' 지지집단에 의해 '한국영화계의 적(敵)'처럼 묘사됐던 이들이다.

권위주의와 패거리주의 온상처럼 지적됐다. 그런 이들이 제대로 영화조차 못 만들었으니 자연스럽게 욕먹어도 싸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망한다고 해서 아쉬워하거나 가슴 아파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7광구'는 그저 못 만든 영화, 부실한 영화라는 액면 가치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디워'처럼 이례적 조건이 마련되지 못하는 한, 상식적으로, '너무 못 만든 영화'는 망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7광구'의 초반 흥행세는 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단순한 문제다. 본래 '그 정도' 화제성을 갖춘 영화는 으레 초반에 '그 정도'는 된다.

애초 초반 흥행세 잡으라고 스타배우 데려다 쓰는 것이고, 규모 예찬에 국내 최초 3D 캐치프레이즈까지 동원된 마당이라면 사실상 초반 흥행은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미디어의 개봉 전 혹평은 이 같은 초반 흥행 노림수에 일정부분 걸림돌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7광구'는 그런 난관을 헤치고 나갈만한 조건을 더 지니고 있었다. 바로 '볼 영화'가 없는 시기에 개봉됐다는 이점이었다.

'7광구'가 개봉된 8월 4일 상황을 돌아보자.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부'는 7월 13일 일찌감치 개봉해 관객을 한 차례 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주 '고지전'과 '퀵'이 개봉됐다.

그러나 각자 약점이 있었다. '퀵'은 스타파워가 부족했고, 오토바이 액션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떨어졌다. '고지전'은 '한물 간' 6.25전쟁 소재에 비주얼 스펙터클 면에서 부족하단 평가였다. 사실상 바로 다음주에 '될성부른' 콘텐츠가 나와도 당장 1위 자리가 뒤바뀔 판이었다.

문제는 그 상태 그대로 한 주가 더 지나갔다는 점이다. 별달리 상업적 매력이 없었던 '고지전'과 '퀵'은 그 사이 느슨한 흥행구도를 보이며 각각 2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영화 주 소비층 내에선 보다 신선한 콘텐트에 대한 요구가 일어났다.

바로 그 시점에 '7광구' 정도 화제성을 지닌 콘텐트가 등장했으니 당연히 터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제리 브럭하이머가 주장한 영화산업의 운송업 논리, 즉 "영화산업이란 한 상영관에서 다른 상영관으로 관객을 이동시키는 것일 뿐"이란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순간이었다. 별 다른 비결이나 키포인트가 있었던 게 아니다.



●'7광구'를 심형래가 만들었더라면 어떤 상황 펼쳐졌을까

'7광구' 개봉 전 주간한국 8월 2일자 기사 '재난 같은 드라마, 공허한 비주얼'은 '7광구'를 놓고 "'괴물2'를 기대하게 했던 영화는 '디워2'에 가까운 영화를 보여준다"고 일갈한 바 있다.

'7광구'와 '디워'를 연결시킨 가장 적절한 언급이었다. '7광구'와 '디워'는 오직 두 가지 부분, 즉 둘 다 괴수영화 장르라는 점과 둘 다 못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만 같이 놓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왠지 조금 엉뚱한 상상도 해보게 된다. 만약 4년 전 '디워'가 지금 '7광구'와 같은 조건, 즉 CJ E&M 제작·배급, 윤제균 제작, 김지훈 감독, 하지원 주연으로 등장했더라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또 '7광구'가 2011년 심형래에 의해 제작됐더라면 과연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까.

일단 4년 전 초호화 제작군단의 '디워'는 아마 콘텐트 퀄리티에 직결되는 흥행결과를 낳았으리란 예상이다. 똑같은 영화더라도 심형래 빠진 '디워'는 팥 앙금 없는 찐빵이었을 것이다. 지지집단이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고, '너무 못 만든 영화는 망한다'는 원칙에 그대로 소급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1년 심형래 감독의 '7광구'는? 물론 4년 전의 '7광구'보다야 더 나은 조건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딱히 성공작이 되기도 힘들었으리란 예상이다. 지난해 '라스트 갓파더'의 다소 심심한 흥행결과를 생각해보면 그렇다.

'라스트 갓파더' 흥행부진 이유 중 하나는 대중이 이미 '디워'로 심형래에 한 차례 '데어봤기' 때문도 있다는 것이다. 퀄리티 관련 노이즈 마케팅 폐해를 크게 겪었다. 애초 그런 소모적 논란 상황은 한 번 이상 광분할 만한 게 아니었다.

어찌됐건 결론은 단순하다. 비단 '7광구'뿐 아니라 그 누구도 이제 '디워 현상'과 같은 수혜를 얻긴 어려우리란 것이다. 심지어 심형래 본인조차도 그렇다. 그동안 대중은 진화했고, 시장은 안정돼가고 있다. 비상식적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 점차 줄고 있다.

물론 그런 수혜조차 얻지 못해 '7광구'가 몰락하게 된 점 자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7광구'의 몰락으로 '디워 현상'이 한국대중문화산업에서 다시는 재연되지 못할 해프닝이었음이 방증됐다는 점에선, 왠지 안도감이 이는 시점이기도 하다.

건강한 시장이란 언제나 상식적 시장이었다는 점을 돌아보면 더 그렇다. 한국영화산업의 여름시장 도전이 아무쪼록 잘 마무리되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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