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충현동 中동포 부부 ‘폭우에 쓸려간 꿈… 그리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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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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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만에 마련한 전셋집이… “여보, 우리 다시 시작하자”

29일 서울 서대문구 충현동에서 일어난 축대 붕괴 사고로 집이 붕괴된 김창걸 씨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집 앞에 서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붕괴된 축대가 인근 다세대주택을 덮친 모습. 사진 맨 위에 보이는 폐허가 된 집이 김 씨의 집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연합뉴스
29일 서울 서대문구 충현동에서 일어난 축대 붕괴 사고로 집이 붕괴된 김창걸 씨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집 앞에 서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붕괴된 축대가 인근 다세대주택을 덮친 모습. 사진 맨 위에 보이는 폐허가 된 집이 김 씨의 집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연합뉴스
“집 구하고 아내와 얼싸안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방이 두 개나 된다면서….”

서울 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가 물러간 29일 오전, 중국동포 부부 김창걸 씨(38·요리사)와 김영매 씨(35·미싱사)는 붕괴된 자신들의 집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 서대문구 충현동의 한 축대 위에 지어진 김 씨 부부 집은 이날 새벽 폭우를 견디지 못한 축대가 무너지면서 3분의 2가 붕괴됐다. 이 사고로 축대 아래 가건물에 거주하던 김모 씨(54)는 돌과 흙더미에 묻혀 숨졌다.

이 집은 10여 년간 한국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한 부부의 ‘꿈’이자 ‘희망’이었다.

남편 김 씨는 1996년 조금 더 잘살고 싶어서 한국에 왔다. 울산, 경기 평택 등 곳곳을 돌며 부품·중장비 공장, 식당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워낙 월급이 적어 집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반지하방에서 월세방 생활을 시작한 김 씨는 2004년 중국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한 뒤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2008년부터는 아내와 함께 서울에 정착했지만 올 초까지도 10만 원대 월세 단칸방을 전전해야 했다.

15년간 한국 생활을 했지만 부부가 가진 돈은 고작 2000여만 원. 어떻게든 살 집이 필요했던 부부는 두 달 넘게 충현동 일대를 수소문하고 돌아다녔지만 서울 집세는 너무 비쌌다. 인근 동네 반지하 단칸방 전세금도 5000만 원이 넘었다.

남편 김 씨는 “서대문구 일대 부동산중개업소치고 내 전화번호를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로 살 집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발품을 팔던 끝에 부부는 지하철 아현역에서 상당히 떨어진 동네에서 지금 집을 구했다. 전세금은 4000여만 원. 더 싼 집을 찾을 수 없어 형제들에게 나머지 2000만 원을 빌려 간신히 계약을 했다. 무허가에 목재로 허술하게 만든 축대 위의 집이라 다른 집보다 조금 더 싸게 구할 수 있었다.

아내 김 씨는 “산동네 축대 위에 있는 집이지만 한국 생활 15년 만에 그것도 전셋집을 구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며 “새하얀 도배지와 백옥 같은 싱크대를 봤을 때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부의 꿈은 폭우에 스러졌다. 29일 새벽 ‘투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쩍’ 하고 갈라진 것. 비 때문에 지붕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생각한 부부는 밖으로 뛰어나갔고, 그 순간 눈앞에서 집이 사라졌다. 축대 붕괴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김 씨 부부가 재해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현재로서는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다.

결국 아내 김 씨는 이날 오전 3분의 1만 남은 집 한구석에서 그나마 챙길 수 있는 살림을 챙기다 울음을 터뜨렸다. 손에는 부엌에서 주섬주섬 끌어모은 양념통과 가재도구 몇 개가 들려 있었다. 남편은 허망함 속에서도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사랑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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