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 간접체벌 허용]“시행령 따라 체벌금지 조례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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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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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감 독주 제동

체벌 금지와 두발·복장 자유 등 학생지도를 둘러싼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의 갈등이 연초부터 불거졌다. 진보 교육감이 있는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이 체벌을 금지하고 두발과 복장의 전면 자유화를 추진하자 교과부가 제동을 거는 상황.

교과부가 학생 체벌과 두발·복장 규제를 학교 자율에 맡기겠다는 방침을 내놓자 교육청들은 반발했다.

○ 교과부, 간접 체벌 학교 자율에 맡긴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17일 발표한 ‘학교문화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도구나 신체를 이용해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주는 직접 체벌은 전면 금지한다. 그러나 팔굽혀펴기, 운동장 걷기 등 간접 체벌은 학교가 정할 수 있다.

두발이나 교복 착용 문제도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교육청 지침으로 일률적으로 규제했던 두발, 복장, 휴대전화 사용, 소지품 검사 같은 생활 규정을 학칙에 명시하도록 허용했다. 지금까지는 교육감이 체벌 전면 금지 지침을 내려보내면 학교가 이와 다른 방향의 학칙을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체벌 기간을 무단결석으로 처리해 불이익을 주는 ‘출석정지’ 제도도 새로 만들었다. 출석정지는 1회 10일 이내, 연간 30일 범위에서 시행해야 한다. 출석정지 기간에 학생은 WEE스쿨(문제 학생을 위한 교과부 대안 교육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상담치료를 받는다. 출석정지 30일 이후에도 문제 행동을 반복하면 학부모 상담을 통해 특별치료나 대안교육을 받게 된다.

교과부는 새 학기 시작 전까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손질을 마칠 방침이다. 조례나 지침보다 상위법인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 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나 체벌 금지 지침도 수정해야 한다.

○ 진보 교육감 “간접 체벌도 체벌”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직접·간접 체벌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만큼 학교별로 기준이 달라져 혼란이 불가피하다. 간접 체벌은 사실상 체벌이라고 본다”며 교과부 정책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시교육청은 “우리는 팔굽혀펴기 등 반복적·지속적 고통을 주는 간접 체벌을 원칙적으로 허용해선 안 된다는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옥란 시교육청 중등교육정책과장은 “간접 체벌을 어느 정도 허용한다는 건 그 이상의 체벌은 하지 말라는 최하 가이드라인인 셈”이라며 “어차피 학칙은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정하는 만큼 시교육청 차원에서 상위법에 어긋나지 않는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도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모든 종류의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며 “교과부 개정안에서 간접 체벌을 규정하는 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강원도교육청은 “간접 체벌도 명백한 체벌이며 교실 뒤에 서 있기, 운동장 걷기는 군부대 얼차려와 같은 개념이다. 군부대에서도 폐기한 것을 교육계가 허용해야 하는지 심각한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광주시교육청 관계자는 “진보 교육감의 대표적 정책 중 하나인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다”고 말했다.

○ 간접 체벌 허용, ‘학칙 제정권’에 달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선 학교는 간접 체벌을 허용하는 학칙을 제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청은 학칙을 인가하는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으므로 학교에서 체벌을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교과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교육청의 학칙 인가권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겠다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문제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이다.

학칙에는 체벌 관련 내용 외에도 학년 편제, 학생 정원, 수업 일수 등 모든 학교가 통일성을 유지해야 하는 내용이 포함되는데 이를 학교 자율로 정하도록 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교육감의 학교 지도·감독 권한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학칙 인가권을 교육감에게서 빼앗고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바꾸려고 교과부가 시도하자 교육계에서는 “체벌 금지를 무력화하기 위한 사전 조치”라는 해석이 나왔다. 교육감들은 “교육자치의 훼손”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시행령만 먼저 개정되면 일선 학교가 간접 체벌을 허용하는 학칙을 만들어도 진보 교육감이 승인하지 않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모든 체벌을 금지한다는 원칙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체벌을 인정하는 학칙을 만들어도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교육감이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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