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케이팝 인더스트리③ 아이돌 양성의 새로운 실험,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S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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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6일 15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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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x) 셜리, 미스A 수지, CNBlue 이종현이 '이 학교'에 진학한 까닭은?
● "아이돌도 이제는 스포츠 스타와 같은 대접 해줘야!"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김연아와 박태환 선수는 어떻게 중고교 생활을 했을 것 같나요?"

서울 구로구 궁동에 자리한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이하 서울공연예고) 박재련 교장은 기자를 향해 대뜸 질문을 던졌다. 답하기 어렵진 않았다. 세계적 스포츠스타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스포츠 선수들의 청소년기가 '운동'이란 한 가지 목표에 집중돼 있다는 건 학창시절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아이돌스타를 꿈꾸는 학생들의 주목을 얻고 있는 특수목적고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최근 아이돌스타를 꿈꾸는 학생들의 주목을 얻고 있는 특수목적고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대중문화 스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한의 정규제도권 교육은 필수적이지만 무대 역시도 또 다른 교육과정으로 인정을 해줘야 합니다. 학생들도 예술가로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학교가 탄생한 배경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대중문화의 지형도가 급속하게 바뀌었다. 대학가요제를 대표로 20대 이상의 예술대학 출신들이 장악했던 대중문화 시장의 주도권이 10대 중고교 재학생들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케이팝(K-pop) 아이돌 스타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또 어떻게 정규 교육을 이수해 대학에 진학하는 지에 대한 질문도 자연스럽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20년 전 서태지는 왜 서울북공고를 다니다 중퇴했을까? 소녀시대 서현은 왜 인문계학교에서 지방의 예술고로 전학갔을까? 해외공연에 바쁜 아이돌 스타들은 어떻게 정규교육을 이수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일까?….

이제까지 아이돌 스타는 알음알음 선발돼 기획사의 자체적인 교육시스템을 통해 키워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사회적 문제점이 양산됐다. 제도권 교육으로부터의 이탈이 그것이다. 일반 중고교에서 아이돌 스타의 등장이 큰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학교 가을축제에 참가한 FT아일랜드. 멤버 2명이 이 학교 재학생이다.
학교 가을축제에 참가한 FT아일랜드. 멤버 2명이 이 학교 재학생이다.

과거에는 스타가 워낙 귀해 학교의 명예를 높인다는 평가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스타지망생이 급증해 오히려 학습 분위기를 해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 반대로 스타 진입에 실패한 연예인 지망생들은 제대로 된 인격 형성기간은 물론 정규교육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심각한 경우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의 인생행로를 걷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른바 10대 아이돌이 가요계를 장악하면서 생긴 현상이지만 이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사회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비교적 최근에 시작됐다. 밤 11시 이후 공연이나 훈련을 금지하고 과도한 노출 의상을 규제하는 것도 그런 고민에서 나왔다.

서울공연예고(SOPA)는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태어난 학교다.

■ "아이돌 스타에게도 정규 교육이 필요하다."

"처음 입학하는 학생들은 스타를 꿈꾸며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그러나 3년 교육과정을 이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우나 트레이너 혹은 PD나 스태프 등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게 됩니다. 원래 고등학교 교육 과정이 진로 탐색 과정이잖아요"(공연예고 권오현 교감)

3년 전 특수목적고로 전환한 서울공연예고는 교육부가 정한 국민공통기본교육(국영수 및 기타 필수과목)을 이수한다는 점에서 인문계나 예술학교와 외형상 큰 차이는 없다.
실기 수업중인 공연예술고 학생들.
실기 수업중인 공연예술고 학생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무대'를 업으로 살고자 하는 학생들이 지망한다는 것이고, 학교는 정규수업 이외에 이들의 무대 도전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한다는 것이다.

지난 2년간 공연예술과(4개반, 152명) 영상예술과(1개반, 38명) 무대미술과(2개반, 76명)를 두고 신입생을 선발했는데 경쟁률이 6대1에 이를 정도로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다. 그 정도로 순수예술이 아니라 대중예술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요즘 학부모들은 과거와 전혀 달라요. 대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분야를 지원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신 것 같아요. 춤을 좋아하면 무용가를 지망하든지 혹은 백 댄서가 되든지 마음껏 해보라는 분들이 많으세요. 오히려 선생님들이 깜짝 놀랄 지경이라니까요."

예능 수업은 정규 교과 시간 이후 방과 후 수업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학교에서 기타를 배우고 힙합댄스를 배우는 모습이 낯설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공연예술계 특수목적고등학교'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늦었다는 평가다.

상업고교를 공연예술 특목고로 바꾸면서 학교측도 대대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새로운 학교 건축 설계는 세계적인 건축가 승효상 씨가, 교복 디자인은 이상봉 씨가 맡았다. 예술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자존심을 높여주기 위한 배려였다. 이 밖에 연기와 음악을 학습할 수 있는 다수의 연습실과 공연무대도 마련해 놓아 학생들의 훈련과 실전 연습을 지원하고 있다.
완벽한 실기 실습 장비를 갖추고 있다.
완벽한 실기 실습 장비를 갖추고 있다.

학교의 구체적인 목표를 '신한류의 수출'로 설정할 정도로 한류의 전초 기지로 자기 역할을 규정한 만큼 중국어와 일본어 같은 외국어 교육에도 힘을 쏟는다는 것이 학교 측 설명이다.

그 때문인지 공연예술 특목고로 전환한지 3년 만에 (f(x) 셜리, FT아일랜드 송승현, CNBLUE 이종현, 미스A 수지 등 수많은 아이돌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을 오게 됐다. 학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스타급 연예인들을 동료로 두면서 보다 적극적인 진로 탐색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새 이 학교는 아이돌을 꿈꾸는 전국의 예비 예능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예체능계의 사교육 비용이 어느 정도로 높은지 겪어보지 못한 분들은 절대 모릅니다. 그런데 연예인을 꿈꾸는 학생들을 비제도권의 검증 없는 시스템에 계속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에요. 이 같은 제도권 학교에서 대학 진학과 자기 재능을 동시에 탐구하도록 해야지요. 신한류 개척과 아이들 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성적보다는 인성이 우선"

서울공연예고 박재련 교장은 30년간 대학로에서 무대 배우이자 작가 겸 연출가로 살아왔다. 극단 증언의 대표로 연극 '빈방 있습니까'에서 23년간 도맡아온 '덕구' 역할로 공연계에서는 이름이 높다. 오랫동안 예술계에서 활약해온 만큼 젊은 예술인 지망생의 심리 상태와 지원 방안에 대한 이해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학교를 소개하는 내내 "젊은 예술인을 신한류의 주역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제도권에서 보완해 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전무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행동에 대한 교육성과를 인정하고 제도권과의 상호보완을 통해 젊은 예능인들에 대한 교육을 포기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부득이 하게 수업에 빠지는 학생들을 위해 인터넷 수업과 리포트 등의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젊은 예술인들의 위상과 제도권 교육의 지원”을 강조하는 박재련 교장 선생님
“젊은 예술인들의 위상과 제도권 교육의 지원”을 강조하는 박재련 교장 선생님

"일반적으로 예술고나 대학은 클래식 교육 중심이잖아요. 연극영화과가 있다지만 대부분 입시위주로 교육할 수밖에 없는 처지 입니다. 실용음악이나 춤 그리고 무대 미술도 그만큼 시장이 커졌는데 이를 양성할 교육 시스템은 부재했어요. 결국은 무조건 하드웨어(학력과 졸업장)만 강조한 셈인데 이젠 실전적인 소프트웨어 교육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직업 교육과 정규 교육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지난 11월26일엔 이 학교의 가을 축제 'SOPA예술제'가 열렸다.

가을축제는 말 그대로 학업의 연장선상이자, 될성부른 떡잎을 찾기 위한 연예기획사들의 치열한 경쟁의 장이기도 했다. 특히 재학생인 FT아일랜드가 바쁜 공연일정을 뒤로하고 학교로 달려와 학교축제에 참석해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열성 팬들도 몰려들어 학교는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해 있었다. 장차 신한류의 주역을 꿈꾸는 학생들이 비교적 차분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학생들이 직접 무대를 꾸미고 연출하고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뛰어 노는 모습은 확장된 대중문화 시장이 낳은 변화된 사회의 또 다른 일면이었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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