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강동원과 고수는 왜 죽어라 싸우나?”…‘초능력자’ 감독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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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2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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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능력자\'의 김민석 감독이(가운데) 주인공 고수(왼쪽) 강동원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영화 \'초능력자\'의 김민석 감독이(가운데) 주인공 고수(왼쪽) 강동원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초능력자'는 두 미남 주인공을 앞세운 허세(虛勢) 영화일까.

개봉 2주 만에 누적관객 167만을 돌파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은 강동원, 고수 주연의 '초능력자'. 11월 극장가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지만, 평단의 반응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극장가 여심을 쌍끌이한 비범한 영화'라는 찬사도 있지만, '강동원, 고수의 조각 같은 외모 외엔 볼 게 없다'는 혹평 역시 상당하다. 개연성, 당위성 같은 극적 이음새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한 블로거의 평을 옮기자면, "규남과 초인은 왜 싸울까? 복선인가 싶은 장면과 대사도 결국엔 아무런 설명 없이 끝난다. 그저 뭔가 있어 보이려고 애쓴 허세 영화였다."

영화는 눈빛 하나로 사람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초인(강동원)과 전당포 직원 규남(고수)의 대결을 다룬다. 비범한 능력 때문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초인은 가끔 도둑질을 하며 조용히 숨어 산다. 그런 초인의 인생에 초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규남이 나타난다. 규남이 일하는 전당포에 초인이 돈을 훔치러 오면서 두 사람은 마주치게 된다. 어찌 보면 서로 피하면 그만인 두 사람은 이때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목숨 걸고 싸운다.

논란의 중심에 선 김민석(33) 감독을 최근 인터뷰했다. 김 감독은 '달콤한 인생'과 '괴물' 연출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각본과 조감독을 거친 신인이다. '초능력자'는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은 첫 장편 영화다. 질문은 '왜?'에 최대한 초점을 맞췄고, 답변 중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편집했다.

▶'도플갱어'처럼 닮은 규남과 초인


김 감독은 초인이 본 규남에 대해 "광활한 사막 한 가운데서 처음 맞닥뜨린 사람", "동질감을 느끼지만 없어져야 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독일 민담에 나오는 '도플갱어'가 떠올랐다.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뜻하는 도플갱어는 주로 죽음과 관련돼 있다. 도플갱어를 본 사람은 머지않아 죽는다고 한다. 따라서 죽지 않으려면 도플갱어를 먼저 죽여야 한다.

-두 사람이 왜 그렇게 싸워야 하는지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초인은 왜 그렇게 규남을 죽이고 싶어했나요?
"초인은 일평생 자신의 능력이 안 통하는 사람은 처음 만났습니다. 물론 두려워서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감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서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 같은 감정이죠.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존재가 나타난 겁니다. 척박한 세상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가는 자신을 위해선 없어져야 편한 상대이기도 하구요."

-반대로 규남은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초인을 막으려 했나요?
"일하던 곳의 사장이 죽었고 사람들이 조종당하고 경찰도 소용이 없고, 자신만이 풀 수 있는 과제가 등장했을 때 나라면 나섰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규남에게도 초인은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초능력자'에서 고수(왼쪽)와 강동원은 말 그대로 '죽어라' 싸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초능력자'에서 고수(왼쪽)와 강동원은 말 그대로 '죽어라' 싸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전당포 '유토피아'에서 규남과 초인의 악연이 시작됐습니다. 초인은 돈만 훔치면 되지, 왜 사람까지 죽이게 됐나요?
"유토피아 사장의 죽음은 사고입니다. 그리고 규남을 만나며 죽어간 사람들은 어찌 보면 초인 자신(인간성)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초인과 규남의 성장 과정, 초기 시나리오에는 넣었다"

-초인은 어쩌다가 초능력자로 태어났나요? '슈퍼맨'처럼 이유가 있지 않나요?
"생리적으론 돌연변이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은유적으로는 우리를 조종하는 어떠한 힘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돈, 권력, 획일화, 법, '남들이 다 하니까' 등등."

-규남과 초인의 성장 과정이 생략됐습니다. 왜 다루지 않았나요?
"시나리오를 쓸 때 성장과정을 넣어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덩그러니 지금의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다루지 않았습니다. 초인은 어머니와 떨어진 이후 스스로 맹렬하게 살아갔을 것이고, 규남 역시 가족이 없는 상태이니 혼자 열심히 살았을 겁니다. 자연스레 자신을 소중히 하게 됐겠죠."

-초인은 왜 그렇게 세상을 증오하나요?
"초인은 세상을 증오한다기보다는 자신을 증오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이한 능력 때문에 한없이 망가진 자신을 증오하는 것입니다."

-전당포의 이름 '유토피아'가 시사하는 바가 궁금합니다.
"말 그대로, 이상적인 사회에서 모든 이들이 만나 사건이 일어났으면 했습니다.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없다고들 하는데, 혹시 이미 존재한 것을 우리가 매번 부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여하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는 조그만 유토피아라는 공간에 모두를 집어넣어놓고 붕괴시키며 이야길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초인은 왜 이름이 없습니까?
"이름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타인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는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초인은 분명 이름이 있었을 것인데 타고난 능력으로 고립되는 바람에 불러주는 이가 없게 된 것이죠. 이름이 없어지면서 자아도 흔들리게 됩니다. 인간은 대부분 타인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는 것에서 초인이 원래의 자신을 망각하게 된다는 설정을 했습니다. 또한 초인에게 고독감을 주기 위해서 이름을 넣지 않았습니다."

'초인'역의 강동원. 김 감독은 "초인은 이름이 있었을 것인데 타고난 능력으로 고립되는 바람에 불러주는 이가 없게 된 것"이라며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는 것에서 초인이 원래의 자신을 망각하게 된다는 설정을 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초인'역의 강동원. 김 감독은 "초인은 이름이 있었을 것인데 타고난 능력으로 고립되는 바람에 불러주는 이가 없게 된 것"이라며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는 것에서 초인이 원래의 자신을 망각하게 된다는 설정을 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규남이 초인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 초인이 멈칫했던 이유는 뭔가요?
"일생을 통틀어 가장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규남이 이름을 묻는 순간 초인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규남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됐지만 말이죠. 괴물이 아닌 그냥 한없이 힘없는 인간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자신을 알게 된 거죠. '내가 무엇인지 아는 순간'인 겁니다."

-초인은 왜 의족을 한 인물로 설정되었나요?
"그를 반듯하게 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항상 쩔뚝이고 항상 어딘가에 기대야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항상 혼자 설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람이지요."

-초인이 피겨(모형 인형)를 가지고 노는 모습, 강동원 씨의 외모 등은 일본만화 '데스 노트'의 캐릭터 엘(L)이 떠오릅니다. 기획단계에서 참고했나요?
"안타깝게도 '데스노트'는 참고하지 못했습니다. 피겨와 디오라마는 초인이 건설한 자신만의 세상입니다. 그 속의 초인은 현실의 초인과는 다르게 빨간 옷을 입고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죠. 초인은 내심 대중에 섞이고 싶어하는 인물입니다.

▶영화 속 서울 시민은 왜 그렇게 차갑나?

-초인의 공격을 받은 규남이 지하철역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서울이 그렇게 척박한 곳인가요?
"오히려 많은 사람이 있으면 더 도와주지 못한다는 심리학적 연구결과를 TV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대중의 무관심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서울은 그렇게 척박한 곳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규남의 친구로 한국어가 유창한 가나 출신 버바(아부다드)와 터키 출신 알(에네스 카야)이 나옵니다.
"규남은 세상에 잘 섞여 있는 인물입니다. 욕심도 없고 존재감도 표출하지 않고 한없이 행복한, 어찌 보면 최고의 인간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칫 군중에 섞여 자아를 잃은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규남을 지구라는 스펙터클한 무대에 살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을 주변에 두었습니다. 흑, 황, 백으로. 하지만 두 조연은 재밌게도 가장 한국적이지요."

-규남은 초인과의 싸움에 친구인 버바와 알까지 끌어들였나요?
"어쩌면 세상이라는 커다란 것과 싸우는 것이니 동지가 필요했겠죠.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규남이 친구들을 끌어들였다기보다 친구들이 같이 나선 것이죠. 규남에겐 가족과 같은 존재니까."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가?'가 영화 속 근본 물음

-마지막에 등장하는 옥상은 어디인가요? 스틸 사진에서도 공개됐지만 영화 '무간도'가 떠오릅니다.
"강남역 근처의 한 빌딩 옥상입니다. 하늘과 가깝고 세상에 뛰어들 공간이 필요했기에 옥상을 선택했습니다."

-마지막 규남의 신은 왜 넣은 것입니까?
"마지막은 반전이 아니라 각성이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규남은 초인을 만나면서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을 알게 되는 순간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다르지만 가장 같을 수 있는 두 사람을 놓고 하나라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을 아는 순간 이전의 나는 죽고 새롭게 진짜 나로 태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규남은 자신을 알게 해준 초인을 기억하며 새롭게 살 것이고, 그로인해 작은 희망도 생겨남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항상 군중 속에 머물러 있으라. 그리고 군중에 섞여 너 자신을 잃어버려라'라는 니체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시작이 되었고 뿌리가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초인의 능력은 각기 다른 개인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자아를 상실한 그저 한 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규남은 거기 섞여 버리지 않았고, 힘들지만 끈질기게 초인을 찾아갑니다. 많은 희생과 상처가 생기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냥 맹목적인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초인이 조종하는 잠든 사람들 속에서 규남은 혼자 깨어 있으면서 외칩니다. 하나이자 전체인 초인과 소통을 시도 하는 것이지요. 초인의 입장에서 보면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어도 '다른 것이 맞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내 의지대로 움직이기에 섞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섞이고 싶지만 섞이지 못한, 섞여 있으면서도 섞일 수 없는 반대의 입장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서 갈등을 겪게 하고 싶었습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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