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다양성이 경쟁력이다]둘레 225km 환초 바다식구 100만종 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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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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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웨노 섬의 바닷속

화려한 색을 띠는 산호는 독이 있는 촉수로 물고기를 잡아먹는 엄연한 동물이다. 사진 제공 한국해양연구원
화려한 색을 띠는 산호는 독이 있는 촉수로 물고기를 잡아먹는 엄연한 동물이다. 사진 제공 한국해양연구원
《적도의 강렬한 햇빛이 닿는 수심 7m의 바닷속에 다채로운 색과 모양을 한 산호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호에 가까이 다가가자 촉수 사이에 숨어 있던 노란색과 파란색을 내는 열대어는 쏜살같이 도망가고 틈인 줄 알았던 거대한 톱니 모양의 구멍은 단단히 닫힌다. 톱니 모양의 구멍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한 대왕조개의 입이다.》

○ 산호에서 살려면 다양한 ‘생존 전략’ 키워야

이곳은 서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 축(chuuk) 주 웨노 섬에 가까운 산호섬이다. 축 주 주변엔 이런 산호섬 290여 개가 모여 225km 둘레의 거대한 반지 모양인 ‘환초’를 이루고 있다. 환초는 다양한 생물종이 사는 보물창고다. 축 환초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열대어만 610종으로 이외에 750종 이상의 어류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생물이나 무척추동물까지 포함하면 100만 종이 넘는다.

환초처럼 산호가 군락을 이루는 지역에는 생물종이 많다. 산호의 특성 때문이다. 산호는 먹이를 잡는 촉수와 이를 소화시키는 위로 이뤄진 폴립이 여러 개 모인 동물이다. 촉수에는 독이 있어 작은 물고기를 죽이거나 마비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일부 물고기는 촉수의 독을 견디도록 진화해 산호 사이를 은신처로 삼는다. 다른 물고기는 화려한 산호와 구별되기 어렵도록 몸 색깔을 화려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예 산호를 구성하는 폴립을 먹을 수 있도록 입 모양을 바꾼 어류도 있다. 이런 어류는 폴립을 둘러싼 단단한 외피를 부수는 강한 턱이나 외피 안쪽의 부드러운 살만 쪼아 먹을 수 있는 빨대 모양의 입을 갖는다. 박흥식 한·남태평양해양연구센터장(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많은 생물종이 태평양의 거친 파도나 천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산호 지역에 살기 위해 다양하게 진화했다”며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독이나 해독 성분 중에는 의약용으로 쓸 수 있는 신물질도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산호 해역에서 새로운 생물 종이나 신물질을 발굴하는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산호 해역이 있는 나라는 대개 교통이나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작은 섬이기 때문에 연구소를 세우기 쉽지 않아서다. 박 센터장은 “이런 나라들도 이제는 생물자원의 중요성을 알고 해외 연구소 설립에 대한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진다”며 “연구센터가 있는 웨노 섬도 전기가 하루 12시간만 들어오지만 환초와 가까워 자체 발전기를 돌리며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해양생물 종은 적극 보호해야 살아남아

문제는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이 생물자원의 중요성은 알면서도 보호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된 대왕조개는 맛이 있는 데다 껍데기가 크고 예뻐 사람들이 대량으로 채집하는 바람에 개체 수가 크게 줄었다.

생물들 독엔 의약용 신물질도 많아
대왕-단추조개 등 남획… 멸종위기 韓-남태평양센터 양식 공동연구도

최근에는 단추조개라 불리는 바다고둥의 한 종이 시련을 겪고 있다. 단추조개는 표면의 색과 무늬가 아름답고 껍데기가 두꺼워 고급 의류의 단추로 사용된다. 아직 보호 종으로 지정되지 않아 국제 거래가 가능하고 식재료인 다른 어패류에 비해 가격이 높아 마구 남획되는 실정이다. 상품 가치가 있으려면 단추를 찍어낼 만큼 자라야 하지만 이를 모르는 현지인은 중간 크기의 조개도 잡아 개체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한·남태평양해양연구센터는 이를 막기 위해 단추조개 양식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어린 개체를 대량 증식시켜 바다에 뿌려주는 방식이다. 환초로 둘러싸인 열대 바다는 단추조개가 잘 자랄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이기 때문에 따로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된다. 박 센터장은 “양식을 통한 보호는 멸종위기의 해양생물 종에 적용하기 유리하다”며 “식량이나 관광산업에 활용하기 위해 멸종위기 종을 채집하더라도 개체 수를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웃 섬나라인 팔라우는 멸종위기 종인 대왕조개를 일정 기간 양식해 바다로 방류하고 있다.

최근 바다의 ‘생물 종 다양성 보존’은 그 해역을 소유한 나라의 경제발전과 함께 이뤄지는 추세다. 이런 나라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개발이나 채집을 무조건 금지하면 발전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 나라가 직접 지정하는 ‘해양보호구역(MPA)’이라는 개념은 생물 종 다양성 보존을 밀어내며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축 환초도 2004년 MPA로 지정됐다. 이 제도는 무분별한 개발에 제동을 걸면서도 해양생물 자원을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박 센터장은 “미크로네시아에도 단추조개 양식이 도입되면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곳을 기반으로 태평양의 해양생물 자원을 연구하려면 과거 식민지 개념인 자원 침탈이 아닌 공동번영이란 의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크로네시아=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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