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한국의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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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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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은 ‘위대한 영도자’로 자국 국민에게 추앙받아 온 공산주의자다. 하지만 화장실만큼은 정반대의 노선을 견지했다. 깔끔한 양변기의 러시아, 재래 ‘푸세식’의 중국 화장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2차대전 종전 후 스탈린은 흐루쇼프를 모스크바 시장에 임명했다. 그리고 이런 지시를 내렸다. 화장실을 양변기로 개조하라고. 전쟁 중 숨진 아들 때문이었는데 소련군 장교였던 야코프는 독일 군 포로수용소에서 전기철조망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당시 영국군 장교와 함께 수용됐던 야코프는 화장실을 깔끔하게 사용하던 영국군과 달리 항상 더럽고 악취가 풍기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참다 못한 영국군 장교가 그런 야코프를 맹비난했고 맞서 대판 싸운 야코프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독일군을 찾아가 고발했다. 하지만 독일군 장교는 두둔은커녕 오히려 그를 자신들 화장실로 데려갔다. 물론 그곳은 향기가 풍길 정도로 깨끗했다. 그날 야코프는 ‘화장실 청소’라는 벌을 받고 그 모멸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그 사실은 곧장 스탈린에게 보고됐다.

마오쩌둥은 그 반대다. 공산혁명 완수 후 입성한 베이징의 집무실에서 좌식 변기를 보고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화장실이 그렇게 편해서 뭐 해. 너무 편안하면 수정주의가 나오게 마련이야.” 이후 마오는 죽을 때까지 양변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중국 대륙 전체가 그의 지시를 따른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도 마땅한 사연이 있다. 그가 창사에서 혁명운동을 할 때다. 당시 그곳의 군벌 자오시헝(趙錫恒)은 눈엣가시인 마오를 제거하기 위해 야밤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그런데 마오는 어디에도 없었다. 훗날 대만에 건너온 자오시헝은 그날 마오만 처단했어도 예까지 쫓겨올 일은 없었다고 후회했다. 그날 밤 마오는 어디 있었을까. 기록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고 답한다. 화장실이 중국의 공산혁명을 구한 셈이니 그 고마운 화장실의 환골탈태를 그로서는 절대 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화장실도 문화유산이다. 그러니 타국의 화장실 문화를 가타부타 말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위생’이란 인류 공통의 가치로 내린 평가라면 보편성과 설득력을 가지리라 본다. 비행기 화장실은 세계 각 지역민의 위생관념을 비교 관찰할 좋은 장소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득수준과 청결도는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먹고살기 힘든 마당에 화장실 위생에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음은 우리도 경험해 잘 아는 만큼 이게 비난받을 일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우리다. 소득수준이 2만 달러에 돌입하고 올 11월이면 선진 7개국(G7) 멤버가 아닌 국가로는 처음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 화장실이 대외적인 우리 수준과 모습에 걸맞은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내 솔직한 대답은 ‘아니다’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 그것도 식당 화장실이 상당수 ‘수준 미달’이다. 대걸레며 잡동사니가 처박힌 듯 놓여 있고 수시로 청소하지 않아 더럽다. 심지어는 남녀 공용도 있고, 깨끗했던 곳도 공중에 개방되면 난장판이 된다.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이 모습. 칸막이 없이 신체 특정 부위를 노출시킨 채 볼일을 보면서도 무표정한 중국의 재래 화장실 문화를 흉볼 수만은 없지 않을는지.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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