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검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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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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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환 지음, 지식의 숲, 416쪽, 2만2000원
정상환 지음, 지식의 숲, 416쪽, 2만2000원
2008년 11월 워싱턴 DC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버락 오바마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날 밤 수많은 흑인이 흘리던 감격의 눈물에는 수백년간의 고통과 절규, 수천만 흑인의 감격과 환희가 모두 담겨 있었다.

“이제 미국의 흑인들은 과연 평등한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에 대한 해답은 미국 역사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정치모델을 시도한 1789년의 제정 연방헌법은 현실적,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노예제를 묵인하고 말았다. 1857년의 드레드 스콧 대법원 판결은 한술 더 떠 흑인은 시민은커녕 인간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의 기쁨도 잠시 대법원은 1896년 플레시 판결을 통해 공공시설에서 흑백분리를 용인했다. 이를 철폐하기 위해 흑인들은 거리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끊임없이 투쟁했다. 마침내 1954년 대법원은 브라운 판결을 통해 흑백분리를 위헌이라고 선고했다. 그러나 백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저항했다. 더 많은 흑인의 피와 땀과 눈물이 필요했다.

이 책은 차별과 억압에 굴하지 않고 암흑의 시대를 밝힌 위대한 흑인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시대만 잘 타고났다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자질을 갖추었던 도망 노예 출신의 프레더릭 더글러스, 사람들의 가슴 깊숙이 잠재된 정의의 열정을 불러일으킨 킹 목사, 흑인들의 인간다움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기꺼이 바쳤으며 흑인들이 영혼 깊숙이 사랑했던 맬컴 X, ‘우리가 죽어야만 한다면’이라는 강렬한 시로 정의의 메시지를 선포했던 클로드 매케이, ‘흑인이 강을 노래하다’는 시로 흑인들의 깊고 우울한 감성을 노래했던 랭스턴 휴스 등의 삶과 문학은 흑인이 열등하고 게으르다는 편견을 통쾌하게 깨뜨린다.

브라운 판결 이후 50여 년이 흐른 지금 제도적, 법률적 차별은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흑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적, 심리적 장벽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인종 갈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미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미국의 인종문제는 가장 뿌리 깊은 아픔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인종, 다문화 사회라는 점이 미국의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다.

우리도 국내 거주 외국인 숫자가 100만명을 훌쩍 넘은 다인종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인종 간의 조화와 협력이 국가의 장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우리 속에 잠재해 있을지 모르는 인종 편견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외국인들은 고립된 채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우리나라는 이들을 냉대하는 품격 없는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이 책이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시선을 따뜻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정상환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신동아 201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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