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KDI국제정책대학원 재학중인 해외 분쟁지역 출신 공무원들

  • Array
  • 입력 2010년 7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물품 원조보다 새마을운동式 활동이 자활 북돋아”

이라크-팔레스타인-동티모르 등 개발도상국 출신 30여명 유학
“높은 교육열이 한국의 힘” “한국 발전모델, 고국에 적용해야죠”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 한국의 젊은 엘리트 공무원들에게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으로 떠나는 유학은 단순히 더 많은 지식을 쌓고 학위를 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가난한 나라의 공무원들에게 선진국 유학 생활은 책으로만 접했던 선진국의 경제와 사회 발전모델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40, 50년 전 한국의 젊은 공무원들이 선진국 유학에서 조국의 갈 길을 찾은 것처럼 최근에는 한국의 발전모델에서 답을 얻고자 하는 개발도상국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특히 이라크, 팔레스타인 같은 오랜 전쟁을 겪은 분쟁 지역 출신의 엘리트 공무원들이 한국의 경제성장 비법을 배우는 데 열성적이다. 이들이 한국을 유학지로 선택한 이유와 각자 조국의 장래를 위한 포부를 들어봤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타피크 하마드 씨(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왼쪽), 모나 바구티 
씨(팔레스타인·가운데), 가스팔 퀸타오 다 실바 씨(동티모르)가 한국을 유학지로 선택한 이유와 귀국 후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타피크 하마드 씨(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왼쪽), 모나 바구티 씨(팔레스타인·가운데), 가스팔 퀸타오 다 실바 씨(동티모르)가 한국을 유학지로 선택한 이유와 귀국 후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크고 작은 전쟁을 겪으면서 어렸을 때부터 선진국 구호단체와 국제기구들의 구호활동을 많이 봤어요. 이들은 시내 한가운데 부서진 건물과 도로를 새로 만들어주고 식량을 나눠주는 것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활동만 했죠. 하지만 자이툰 부대는 달랐어요.”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외교부 공무원인 타피크 하마드 씨(30)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이 개발도상국 출신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정책학 석사과정에 올해 초부터 다니고 있다. 하마드 씨에게 한국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나라다. 자이툰 부대와 한국 유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의 눈이 반짝였다.

하마드 씨는 “자이툰 부대는 시내 한가운데를 보기 좋게 꾸미는 것 대신에 마을 주민 스스로 환경을 바꿀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새마을운동’ 식의 복구활동을 펼치며 주민들에게 자신감을 줬다”며 “주민들의 생각을 변화시킨 것은 자이툰 부대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자이툰 부대에서 약 1년 반 동안 통역원으로 일했던 그는 “자이툰 부대의 활동을 보면서 처음으로 ‘우리도 할 수 있다’거나 ‘외국인도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쿠르드인들이 많았다”며 “한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 KDI 대학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 한국에 푹 빠진 분쟁지역 출신 공무원들

하마드 씨가 직접 체험을 통해 한국에 매료됐다면 스스로 한국 개발모델에 대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한국 유학을 선택한 개도국 출신 공무원도 있다.

모나 바구티 씨(30·여)는 쿠르드 지역 못지않게 험한 분쟁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기획개발부 소속 공무원이다. 그는 중동의 부국인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13세까지 살다가 부모를 따라 조상의 뿌리가 있는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사춘기 때 이주한 탓에 처음에는 제대로 적응을 못해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팔레스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고 결국 정부에서 일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우연히 자신의 상사가 건네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과 KDI 대학원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자를 읽게 되면서 한국의 발전모델에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에서 이미 경제학 석사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한국 유학은 포기할 수 없었다.

“국제사회에서 아시아의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고, 국제기구에서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신흥국 중 하나가 한국이니까요.”

바구티 씨는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면 미국 국제개발처 등과 함께 다양한 원조와 개발 업무를 담당할 예정”이라며 “여기에 한국의 발전경험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엔 산하인 팔레스타인난민 구호사업 기구(UN RWA) 대변인 출신인 남편에게도 KDI 대학원을 추천해 함께 다니고 있다.

○ “한국은 남을 도울 준비가 돼 있는 나라”


동티모르에서 온 가스팔 퀸타오 다 실바 씨(39)는 “한국과 한국인은 예전에 선진국들로부터 받은 도움을 개발도상국에 돌려줄 준비가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동티모르 정부에서도 일한 경력이 있는 다 실바 씨는 KDI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는 국제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했다. 동티모르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관계자들과 오래 일한 경험이 있어 한국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다 실바 씨는 “지난 60년간 독립, 전쟁, 산업화 등을 고루 거치며 주요 20개국(G20) 대열에 합류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개도국 개발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며 “한국이 올해 11월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됐고, 개발이슈를 주요 의제로 내세운다는 게 무척 다행스럽게 느껴지고 개도국들을 위해 좋은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단 이야기를 다룬 최근 개봉영화인 ‘맨발의 꿈’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기뻤다”며 “이 기회에 한국에서 동티모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한국을 본보기 삼아 조국 발전 기여’ 포부

이들은 각자의 조국이 처한 현실이 한국의 수십 년 전을 보는 것처럼 어렵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미래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우리도 한국처럼 성장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이라는 성공 모델이 존재하고, 이 모델이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직접 체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활동에 큰 힘이 된다는 것.

하마드 씨는 “2003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쿠르드 지역에 전기가 하루 1시간만 공급됐지만 지금은 평균 20시간 이상 전기가 공급되고 있고 기업도 벌써 1000여 개가 생겼다”며 “사회적으로도 주민들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는 시위까지 할 정도로 긍정적인 변화가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쿠르드 지역의 투자 가치를 더욱 알려 외국계 기업, 특히 한국의 우수 기업들을 많이 유치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 실바 씨는 한국 교육에 대한 예찬론을 폈다. 그는 “한국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교육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동티모르에 돌아가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학생들을 제대로 ‘괴롭힐 수 있는’ 수준 높고 강도 높은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바구티 씨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행정 노하우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국제기구들과 원조, 개발 업무를 진행하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개발정책이 추진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