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안에서 선수들이 싸우는 사이 벤치에서는 허정무 감독과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의 신경전이 뜨겁게 펼쳤다. 두 감독은 약 10여m 거리를 두고 서서 서로에게 손짓을 할 정도로 뜨겁게 펼쳐졌다. 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경기를 치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두 감독은 90분 내내 벤치에 앉지 않았다. 허정무 감독은 벤치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마라도나 감독은 테크니컬 에어리어를 볼의 위치에 따라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적극적으로 선수들을 독려했다.
침묵을 지키던 두 감독이 처음으로 맞붙은 것은 전반 13분.
한국 선수의 파울이 나오자 마라도나 감독이 대기심 쪽으로 다가서며 경고를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 했다. 이 모습을 본 허 감독은 마라도나 감독을 향해 경고가 아니라고 팔을 가로 저으며 신경전에 불씨를 당겼다.
두 감독은 10분 뒤 제대로 붙었다.
마라도나 감독은 허 감독의 제스처에 화가 났는지 10분 뒤 다시 한국선수의 파울이 나오자 이번에는 직접 허 감독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는 양팔을 벌리며 ‘파울을 그만하라’는 듯 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허 감독이 마라도나 감독을 향해 벤치로 들어가서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두 감독이 약 20여 초간 계속해서 신경전을 펼치자 대기심이 직접 나서서 모두 뒤로 물러날 것을 요청했다.
두 감독은 이후 신경전을 멈추고 그라운드에 시선을 모았다. 경기를 앞서가는 마라도나 감독은 여유를 찾은 듯 계속해서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리드를 잡고 있는 탓인지 선수들에게 지시를 많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선수에게 경고가 나오거나 파울 휘슬이 울리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양 팔을 들며 큰 제스처를 취했다.
전반 후반 0-2로 뒤진 상황에서도 허 감독은 냉정하게 선수들에게 계속해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코칭스태프와 상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수비가 많이 흔들리자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을 따로 불러 역할을 전달하는 모습이었다. 전반 종료 직전 이청용이 만회골을 터트리자 두 감독의 표정은 바뀌었다. 마라도나 감독은 수비수의 실수로 골을 내준 탓인지 분풀이 하듯 땅을 발로 찼다.
반면 허 감독은 특유의 양손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기세를 높였다. 이후 전반전이 종료되자 허 감독은 라커룸으로 들어오는 이청용에게 다가가 안아주며 어려운 상황에서 골을 터트려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후반전 1골 차로 양 팀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 탓인지 두 감독은 신경전을 자제하고 경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1골 차로 뒤진 허 감독이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허 감독은 수시로 벤치의 코치들과 대화하며 작전을 상의했고 동점골을 뽑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놓칠 때면 강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반면 마라도나 감독은 양복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거나 팔짱을 끼는 등 전반전보다는 조용하게 경기장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