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본 조선왕조실록]<4>방패 - 갑옷 - 병선 만들때 왕들이 ‘한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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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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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왕은 특히 ‘강병’에 힘을 쏟았다. 무기를 만들고 수리하고 새로운 병장기를 개발했다. 왜적 및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하고 나라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다. 조선 태종은 1407년 삼군의 방패를 만들도록 했다. 널판으로 둥글게 만들기도 하고 길게 만들기도 했다. 방패는 모두 안쪽으로 오그라들게 했고 가운데는 거울을 달았다. 왼손으로 자기 몸을 가리고 오른손으로는 병기를 잡을 수 있었다. 병사들은 이 방패를 들고 기마병 앞에 서서 용맹하게 싸울 수 있었다.

태종은 1414년 최해산(崔海山)에게 중국의 경번갑(鏡幡甲)이라는 갑옷을 만들어 각 지역으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최해산이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자 태종은 병조에 명해 기존 갑옷의 견본을 이용해 좀 더 견고하고 치밀하게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는 “철을 이용해 꿰면 썩지도 않고 단단할 것이어서 수리비용도 없앨 수 있다”는 제안도 직접 했다. 왕이 무기와 금속 기술에 대해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외국의 선진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1430년에 세종은 병조에 일러 각 포구에 있는 병선의 이음부위를 개선하게 했다. 당시 병선은 송판(松板)으로 만들고 나무못을 사용했다. 이어 붙인 곳이 어그러지고 쉽게 풀어져 틈새로 물이 샜다. 이 때문에 빨리 썩어서 7, 8년을 견디지 못했다. 중국 배는 달랐다. 소나무로 만들었으나 20∼30년을 거뜬히 견뎠다. 나무못 대신 쇠못을 썼다. 세종은 이를 참고해 개선작업을 하도록 했다. 상판 위에 유약의 일종인 ‘회’를 바르고 다시 느티나무를 겹겹으로 쌌다. 느티나무를 구하기 어려우면 노나무[(노,로)] 전나무[檜] 느릅나무[楡] 가래나무[楸] 등을 바닷물에 담가 시험한 뒤 사용하도록 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평소에 군장비의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현재의 기술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을 들여다보며 기술을 개발하는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을까.

이태식 한양대 건설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건설문화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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