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김마스타] 마음의 병 치료할 잘 익은 노래 한곡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1일 11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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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괜찮은 척'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라 안팎으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대형사고들이 터져도 애써 주변의 눈치만 보게 된다. 괜찮은 척 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선 중대한 매너다. 그러나 주변사람의 기분이 어떤지 세심하게 눈치코치 보는 사이에 결국 스무살 청춘은 서른을 넘어 마흔을 맞이하게 된다. 혹시 '불혹(不惑)의 나이'라는 것은 너무 눈치를 봐서 흔들림에 무뎌진 나이가 아닐까?
박하영은 6월19일 파주 헤이리 프로방스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갖는다
박하영은 6월19일 파주 헤이리 프로방스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갖는다


그러나 불혹을 맞이해도 사람들은 "더 괜찮은 척 하라"는 마음의 지시에 조종당하기 일쑤다.

유치원서부터 이십여 년간 꾸준히 받아온 정규교육의 맨 밑바닥에는 '괜찮은 척' 하라는 가르침이 녹아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남들의 눈치와 시선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무탈하게 한 평생을 늙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에는 그 과정에서 마음의 병들이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금 일찍 이 갈등을 경험한 이들은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다. 누구라도 남의 이목에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급작스럽게 해후한 자신의 모습에 당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더 이상 괜찮은 척 하지 말자!

시작이 반이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좋은 때다. 이런 상투적인 이야기들에 귀를 쫑긋하며 '그런가보다, 난 아니다'고 고민할 수 있다. 필자 스스로도 이렇게 아닌척하다가 만나는 내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뒤늦게 음악으로 전환한 케이스이긴 하다.

친구 가운데 생물학을 전공하다 뒤늦게 자기 내면의 모습을 접하고 문예창작과로 돌아서버린 이가 있다. 대충 정해진 길을 가다가는 '진짜 나를 평생 못 만날 것 같다'는 그 친구의 한마디에 필자 역시도 나 스스로를 더 깊이 만나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결국 휴학계를 제출하고 나를 찾아서 여행을 다녔더랬다.

지금 전하는 노래의 가수 박하영도 특이한 음악의 길을 걸었다.

당초 그녀는 서강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그러다가 남들이 가는 어학연수를 시애틀로 가게 됐단다. 거기서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만났던 것일까? 우연히 수강한 음악수업을 통해 숨겨진 음악적 재능을 찾게 됐다. 결국 현지의 재즈뮤지션들과 작당해 재즈밴드까지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허스키한 보이스는 현지인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고, 낯선 열정을 체험한 그는 한국에 돌아와 홍대 부근의 여러 라이브 클럽에서 한해 공연횟수가 100회가 넘는 전업 뮤지션으로 안착하기에 이른다.

아마도 당찬 성격이 그의 전업에 한몫했을지 모른다. 시애틀에서 열린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공연에서 박하영은 즉석에서 무대에 올라 조수미씨 대신 앵콜곡을 불렀을 정도였다고 한다. 2007년부터는 한국에서 데뷔준비를 하는 동안 전국을 돌며 국립경찰교향악단과 함께 장돌뱅이 생활도 했다고 한다.

이제 그녀의 손에는 단 두 곡이 수록된 싱글 앨범 한 장이 남았다. 재즈프로젝트 재스오텍의 리더 이태원이 프로듀싱을 담당한 이 앨범에는 타이틀곡인 '괜찮은 척'과 힙합리듬과 일렉트릭 사운드가 조화를 이룬 'Thru da nite'을 수록하고 있다.

치열하다 못해 처절한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에서 싱글앨범 한 장 손에 들고 그녀는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비교적 깔끔한 목소리와 허스키한 음색이 조화된 박하영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너무도 익숙해 마음이 편안한 리듬 앤블루스 냄새가 풍기는 노래가 가슴을 턱 놓이게 한다. 그녀는 여전히 씩씩하고 편안하다. 남의 시선엔 신경 안 쓰겠다는 자신감 때문일지 모른다.
'괜찮은척'이란 디지털 싱글앨범을 발표한 박하영은 홍대의 수퍼신인으로 불린다.
'괜찮은척'이란 디지털 싱글앨범을 발표한 박하영은 홍대의 수퍼신인으로 불린다.

#괜찮은 척

아직도 내게 물어봐 또 물어봐/
이젠 괜찮냐고 무슨 소릴 하냐며/
지겹다며 웃어넘기지만/

내가 정말 널 잊은 것 같니/
나는 그저 그런 척 살 뿐이야/
나는 정말 그 세월을/
괜찮은 척 그런 척 살았던 것뿐이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만나고/
가끔은 생각 않고 아무 일없던 것처럼/
무덤덤히 지내도 보지만/
내가 정말 널 잊은 것 같니/
나는 그저 그런 척 살 뿐이야/


■ 초연함이 돋보이는 여성 솔로 뮤지션 박하영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세상에서 모두가 가장 쉽게 바라는 건 그저 괜찮은 척 그만하고 진실과 진심을 주고받는 것뿐인데 그게 너무 어려워서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그렇게 병들어 가는 마음을 모른 척 하고 우리는 사는 중이다.

척하고 체하는 일상에서 혼자 있는 순간에도 거울을 제대로 못본다. 나에게 나를 보이는게 아니라 나를 남에게 보이기 전 사전심사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전신거울.

그렇게 박하영 같이 자신의 항로를 다시 잡은 이들은 매일같이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을 만나고 있다. 아시다시피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꽤나 많은 이들은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우리가 먹는 보약의 대부분은 대단한 신물질이 아니다. 산에 들에 있는 흔하디흔한 자연의 물질들이다. 말도 그렇다. 사람의 마음을 덜 외롭게 위로하는 건 이런 한 단어, 한 문장이다.

"괜찮습니까? 미안합니다."

개인적으로 '김마스타의 가스등'이라는 인터넷라디오를 운영중이다. 얼마 전 제9회를 녹음하면서 문득 잡념이 떠올랐다. 괜찮은 척하며 마음의 병을 키우고 있는 환자들에게 치료제 같은 음악메시지를 매일 건넬 수 있으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박하영의 '괜찮은 척'을 골라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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