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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천안함 인양]내달 제대 李병장, 미리 집에 부친 소지품이 유품이 되다

입력 2010-04-16 03:00업데이트 2020-12-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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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보기천안함 침몰에서 인양까지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지난달 26일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한 이후 20일 동안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애태우며 꼭 살아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하는 실종자 가족들의 애절한 사연을 기록해왔습니다. 그러나 온 국민의 기대와 달리 15일 인양된 천안함에서 그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먼저 시신으로 발견된 남기훈 김태석 상사를 포함한 46명의 수병들을 추억하는 가족과 지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를 또 한번 울립니다. 실종자가족협의회는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 ‘산화자’로 인정하겠다고 했지만 그들의 생사가 확인될 때까지 실종자로 표기합니다. 우리는 영웅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 이상희 병장(21)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취득한 한식, 일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 등 조리사 자격증만 5개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혜전대 호텔조리외식계열 1학년 재학 중이던 2008년 4월 해상병 542기로 입대해 그해 6월부터 천안함 조리병으로 복무했다. 이등병 때부터 다른 부대에서 전출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요리 솜씨가 좋았지만 천안함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좋아해 계속 근무했다. 다음 달 1일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6월에는 일식 요리사가 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갈 예정이었다. 부친 이성우 씨는 “상희가 좀 있으면 일본에 간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 이용상 병장(22)
평소 “푸른 바다가 좋다”고 자주 말했다. 스킨스쿠버 자격증이 있었고, 주변에서 ‘바다의 사나이’라고 불렀다. 경기 고양시에서 태어나 숭실대 경영정보학과를 휴학하고 2008년 4월 입대했다. 그해 6월 천안함에 배치받았다. 갑판병으로 항상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아 지난해 7월에는 함장상을 받았다. 전우들이 작업 중 다치지 않도록 안전에 신경 썼다. 생일도 잊지 않았다. 다음 달 1일 전역을 앞두고 말년 휴가 때 천안함 동기 병장들과 제주도에 놀러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천안함에 타기 직전 군 복무 중 공부하던 책, 사진과 편지 등 한 상자 분량의 소포를 부모와 남동생 둘이 살고 있는 집으로 보냈다.

■ 이재민 병장(22)
풍부한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장병들의 건강을 위한 음식을 많이 만든 조리병. 경남 진주시에서 태어나 2008년 4월 진주보건대 의약학계를 휴학하고 해상병 542기로 입대했다. 그해 6월부터 천안함에서 근무했다. 힘든 가운데에서도 후배 조리병들이 쉴 수 있도록 업무를 대신할 정도로 자상한 성격이었다. 자신의 인터넷 미니홈피 제목에 3월 12일 “민간인 D-day 50일 시간아 빨리 가라 집에 좀 가자!”라고 적었다. 친한 선배였던 강우석 씨는 “너무 착하고 순수했던 재민아! 예비역 되면 맛있는 거 사주려고 했건만…”이라고 썼다. 다음 달 1일이 전역이었다. 지인들은 초등학교 때는 개구쟁이였고 웃는 모습이 예뻤다고 기억했다.

■ 이상민 병장(22)
천안함보다 임무가 상대적으로 쉬운 지원정(YTL)으로 전출 명령이 났지만 남고 싶다며 함장과 면담하고 계속 천안함에서 근무했다. 사고 이틀 전 아버지 이재우 씨에게 “별일 없으세요?”라고 안부전화를 했다. 전남 순천시에서 태어나 천안대 산업디자인학과를 휴학하고 2008년 4월 입대했다. 5월 제대를 앞두고 인터넷 미니홈피에 ‘복잡했던 두 해가 지나갔다. 먼 훗날은 멀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여기까지 와버렸다’라고 썼다. 사고 뒤 성남함을 타고 사고해역으로 간 아버지 이 씨는 “부모에게 잘하는, 듬직한 장남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매사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솔선수범하던 군인이었다.

■ 이상민 병장(21)
지난해 아버지 이병길 씨(62)의 회갑연을 열어 온 가족과 함께 생신을 축하드리며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읽고 볼에 뽀뽀를 하는 등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충남 공주시에서 누나만 3명을 두고 막내로 태어났다. 18일이 아버지의 62번째 생일이다. 청양대 호텔경영학과 1학년을 마친 뒤 2008년 6월 입대했다. 농구와 축구 등 스포츠를 좋아했고 드럼을 연주하는 등 예체능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호텔지배인을 목표로 학업에 정진했다. 매형 이인섭 씨(34)는 “처남은 그동안 받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부모님 통장에 모두 넣어 드렸던 효자였고 이 집안의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6월 16일이 제대일이었다.

■ 강현구 병장(21)
평소 잘 웃어 천안함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병장임에도 궂은일에 먼저 나섰다. 헌신적으로 일해 후배들에게 모범이 됐다. 늦은 밤에도 승조원들을 위한 야식을 준비하는 자상한 성격이었다. 생존 장병 중 한 명은 “현구는 항상 맛있는 간식을 챙겨주던 우의 깊은 친구였다”라고 말했다. 강 병장의 부모는 금지옥엽 외아들을 잃은 충격에 눈물조차 말랐다. 강 병장의 작은아버지 성명 씨는 “집안이 초상집 분위기다. 외아들이어서 충격은 더욱 크다”고 전했다. 강 병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인하공업전문대 컴퓨터공학과를 휴학하고 2008년 7월 해상병 545기로 입대했다. 그해 9월부터 천안함 조리병으로 복무했다. 7월 제대 예정. 유족으로 부친과 모친, 여동생이 있다.

■ 정범구 상병(22)
자신이 ‘바다의 사나이’라고 생각했고 직업 해군이 되려고 했다. 정 상병 할머니는 “‘배를 타고 나가면 물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어요. 다들 잘해 줘서 군대에 남고 싶어요’라는 말까지 하더니…”라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경기 수원시에서 태어나 2007년 강원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학교 선배들은 “범구가 성격이 좋아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태껸 동아리 선배 최상욱 씨(23)는 “동아리 활동에도 열정이 많아 태껸 연습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2008년 8월 입대했다. 천안함 식당에서 항상 독서를 했다. 정 상병 할머니는 “설 연휴에 본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그 뒤로 전화를 한 번밖에 안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 김선명 상병(21)
경북 성주군에서 2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효성이 지극하고 동생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휴가 때마다 건축 일을 하는 아버지 김호엽 씨(50)의 일을 도왔다. 모친은 수년 전 세상을 떠났으며 모친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휴가를 기일까지 연기하기도 했다. 김 씨는 “엄마의 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는데도 누구보다 꿋꿋하게 생활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엄마 곁으로 이렇게 빨리 보내게 돼 죄인이 된 심정”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금오공고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녔다. 입영 신체검사에서 상근 예비역으로 선발됐지만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2009년 2월 자원해 현역으로 입대해 해상병 552기가 됐다.

박정훈 상병(22)
내연병으로 작업 때문에 얼굴에 항상 기름이 묻어 있었다. 힘든 작업에도 활력이 넘쳤고, 승조원들 사이에 웃음 전도사로 통했다. 한국폴리텍대 산업설비자동화과를 졸업하고 2009년 2월 해상병 553기로 입대해 그해 5월부터 천안함에서 복무했다. 박 상병 어머니 이연화 씨(48)는 끝까지 박 상병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들을 곧 만날 거라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던 이 씨는 “엄마 표정 한 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는 효자 녀석이었는데 엄마가 울고 있으면 먼저 간 아들이 얼마나 슬프겠어요”라며 “아들이 마지막으로 좋은 곳으로 갈 때까지 집에 가서도 절대로 안 울 거예요”라고 말했다. 유족으로 부친과 모친, 남동생이 있다.

■ 안동엽 상병(22)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적이 있을 정도로 ‘꽃미남’인 안동엽 상병은 평소 “해군은 항해 중에도 깔끔한 용모를 갖춰야 한다”고 말해왔다. 동료 승조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그는 함내에서 오락과 운동을 주선하며 분위기를 잘 띄웠다. 그러나 뼛속까지 군인이던 안 상병도 “땅을 밟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함정이 기지에 정박해도 배 위에서 생활해야 하는 천안함 승조원들은 육지를 밟고 서있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 김영란 씨(54)는 “어릴 때부터 말썽 한 번 안 피운 착한 아들이었어요. 낮에도 4시간 정도는 혼자서 잘 자는 아이였는데 바닷속에서도 잘 참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면 눈물만 나오네요. 이제 영원히 땅 위에서 데리고 있을 수 있겠네요…”라며 흐느꼈다.

■ 김선호 상병(20)
지난해 4월 해상병 554기로 입대한 김 상병은 입대 전 가족들에게 약속했다. “전역하면 꼭 대학에 입학하겠습니다.” 그는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천안함 골든벨 퀴즈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포상휴가를 받았던 게 엊그제였다. 김 상병은 함정근무 기간 6개월을 모두 채우고, 육지로 갈 수도 있었지만 “가족적인 천안함이 정말 좋다”며 배에 남았다. 할머니 이옥찬 씨(84)는 “눈웃음을 치던 얼굴이 눈앞에 선해 가슴이 미어진다”며 “현장에 가서 보고 싶지만 다리가 불편해 갈 수 없어 너무 안타깝다”며 흐느꼈다. 김 상병은 자랑스러운 ‘해군 가족’의 일원이었다. 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조카들까지 모두 해군과 인연을 맺었다.

■ 나현민 일병(20)
나 일병은 11일 스무 번째 생일을 맞았다. 나 일병의 아버지 나재봉 씨(52)는 이날 부대 내 식당에서 미역국을 끓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생일을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나 씨는 “지난해 아들의 생일에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저녁상이 기억난다”며 “올해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앉아 축하해 주며 생일을 보냈어야 하는데 그때가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울먹였다. 나 씨는 아들의 생일 선물로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나 씨는 “현민이가 작년에 대입 시험을 보고 원하는 학교에 입학 못 해 상심이 컸다”며 “군대를 갔다 온 다음 다시 공부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나 일병은 교수를 꿈꿨다.

■ 조지훈 일병(20)
정애숙 씨(46)는 틈날 때마다 휴대전화를 열어 아들이 보내준 사진을 보곤 했다. 군대에 간 아들은 휴대전화로 동료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후 메시지와 함께 어머니 정 씨에게 보내곤 했다. 조 일병의 어머니 사랑은 각별했다고 한다. 조 일병 가족은 어머니가 주로 생계를 책임졌다. “‘나는 잘 있어요. 어머니도 잘 계세요’라고 보낸 아들의 문자메시지가 생각납니다.” 정 씨는 아들 얘기를 꺼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조 일병은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공고를 졸업한 뒤 인하공업전문대 선박해양시스템학과에 진학했다. 조 일병은 함 내에서 함정보수, 화재진압, 방수훈련 등 보수병으로서 함정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업무를 맡았다.

장철희 이병(19)
천안함 막내였다. 해군으로 입대한 지 70여 일, 천안함에 승선한 지 8일 만에 사고를 당했다. 장 이병은 18일 천안함에 승선한 뒤 최원일 함장과 갑판에서 찍은 사진을 어머니 원모 씨(45)의 휴대전화로 보냈다. 원 씨는 “불과 며칠 전 웃으면서 사진을 찍어 보내왔는데 아들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지금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출항 전 할머니가 편찮다는 소식에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애정 많은 ‘순수청년’이었다. 부산 동의과학대에서 전기를 전공한 장 이병은 철도기관사라는 꿈을 이루려 군 복무 틈틈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했다. 장 이병의 아버지는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경찰관. 그는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가 마음을 졸였다.

강태민 일병(실종·21)
홍익대 조선해양공학과를 휴학하고 지난해 5월 해상병 555기로 해군에 입대한 강 일병은 배를 끔찍이 좋아하던 청년이었다. 함정 근무기간 6개월을 모두 채웠지만 함장에게 잔류 요청을 하고 천안함에 남았다. 천안함 가스터빈실은 그에게 ‘꿈의 무대’였다. 강 일병의 부모는 “아들이 꿈을 키워가던 바다에서 사고를 당했다”며 애통해했다. 강 일병과 신병 교육과정을 함께했다는 한 동기는 천안함 인양 생중계를 지켜보다 “활발하고 사교성이 좋았던 친구”라고 추억하며 “평택 2함대에 근무 중인 우리 모든 동기들은 최고의 친구 한 명을 잃은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일병은 다음 달 1일 상병으로 진급할 예정이었다.

■ 정태준 이병(실종·20)
집안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보겠다며 4개월 전 해군에 입대했다. 지난해 정 이병의 어머니(44)는 가슴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전세금을 빼 수술비를 댔다. 집안 형편이 기울자 동의과학대 1학년 전기과에 재학 중이던 정 이병은 입대를 결심했다. 의젓하던 아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않자 정 이병의 부모는 인양작업을 지켜보겠다며 백령도로 떠났다. 부산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정 이병의 집에는 고등학생인 여동생만 남았다. 정 이병의 이웃들은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몇 달 전에도 얼굴을 보곤 했다”며 “갑작스러운 실종 소식에 이웃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별취재팀=강정훈 임재영 정재락 지명훈 정승호 이권효 이인모 장기우 윤희각 이형주 길진균 김윤종 조종엽 박재명 장윤정 유성열 신민기 이미지 장관석 박희창 유근형 김철중 박승헌 강경석 이은택 강은지 최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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