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이 EPL] 박지성과 코일 감독의 촌철살인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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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4일 1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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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스포츠동아DB
박지성. 스포츠동아DB
지난 주말 펼쳐진 코리안 프리미어리거의 두 경기(볼턴-에버턴, 맨유-리버풀)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축구의 희망 이청용과 박지성의 부상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다가도, 박지성의 리버풀전 결승골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치열했던 경기를 마치고 한결 흥분이 가라앉은 그라운드 밖에서 뽐낸 볼턴 오언 코일 감독과 박지성의 유머 감각은 축구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줄 듯 하다.

● 아일랜드 출신 코일 감독 “나는 심판이 아냐”

20일(한국시간) 볼턴은 에버턴의 홈 구디슨 파크에서 프리미어리그 31라운드를 치렀다. 결과는 0-2 참패였고 경기 후 이청용과 코일 감독은 심판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현지 취재진들도 코일 감독에게 스테인슨의 퇴장장면을 시작으로 심판 판정에 대한 집중적인 질문 공세를 펼쳤다.

코일 감독이 “스테인슨의 태클은 전혀 퇴장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 홈 어드벤티지였고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영국 기자는 “전반에 볼이 에버턴 헤이팅아의 손에 맞은 듯 했는데 페널티킥 판정이 나오지 않았다”고 물었다. 코일 감독은 “그것 말고도 심판이 에버턴의 파울을 불지 않은 장면은 내가 기억하는 것만 3~4차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패장인데다 직접적으로 심판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놓는 코일 감독과의 기자회견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러던 중 코일 감독은 적막을 깨고 기자들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나는 심판이 아니다.”

코일 감독의 이 한 마디에 고요했던 기자회견장은 바로 웃음바다가 돼 버렸다. 이는 바로 신의 손 앙리가 만든 유행어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11월 아일랜드와의 월드컵 유럽 지역 플레이오프 2차전 연장에서 손으로 공을 컨트롤한 뒤 윌리엄 갈라스에게 결승골을 어시스트한 앙리의 이 반칙 하나로 프랑스는 남아공행 비행기표를 예약했고, 아일랜드는 억울한 탈락에 분노했다. 게다가 앙리는 경기 후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나는 심판이 아니다”고 당당하게 말해 세계적으로 안티 팬을 끌어들였고 본인의 명예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코일 감독의 “나는 심판이 아니다”던 발언은 심판 판정을 영리하게 비꼼과 동시에 아일랜드의 적이 돼 버린 앙리에게 던지는 뼈있는 한마디였다. 코일 감독은 현역시절 스코틀랜드 출신의 스트라이커였지만 국제 경기에서는 아일랜드 유니폼을 입었다.

그의 가문이 스코틀랜드가 아닌 아일랜드 출신이었기 때문에 조상의 국가를 위해 뛰고 싶었던 선택이었다. 그의 배경을 모를 리 없는 현지 취재진들은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영리한 발언에 웃지 않을 수 없었고, 코일 감독도 껄껄 웃으면서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 박지성 “청용아, 자살골 부탁해”


21일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박지성이 숙명의 라이벌 리버풀전에서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트리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경기를 마치고 기분 좋게 인터뷰에 나선 그에게 쏟아진 대부분의 질문은 ‘중요한 경기에서 기록한 중요한 득점에 대한 소감’, ‘월드컵에서 만날 마스체라노에 대한 생각’ 등이었다. 다음 주말 이청용과 격돌할 맨유와 볼턴의 경기도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였다. 이에 박지성은 웃으며 한 마디를 던졌다.

“(이)청용이가 자살골을 한 골 넣어주길 바란다.”

이어진 박지성의 설명.

“볼턴은 강등권을 탈출했다고 본다. 우리는 우승 경쟁을 하고 있는 입장이다”며 볼턴은 목표인 강등권 탈출을 어느 정도 이뤘으니, 맨유의 목표인 우승 타이틀을 위해 이청용에게 자살골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발언이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평소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그에게서 나온 농담이라 효과는 훨씬 컸고, 곧 인터뷰룸은 금세 웃음바다가 돼 버렸다. 평소 이청용이 ‘박지성과 전화통화를 자주한다. 언제나 큰 힘이 된다’고 밝힌데 이어, 이런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둘 사이가 얼마나 돈독한지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표팀 숙소에서도 룸메이트로 지내는 돈독한 선후배 박지성과 이청용이지만 이번 주는 양 팀 히어로 간의 대결이며 양보란 존재할 수 없다.

박지성은 “한국 선수들과의 대결은 항상 특별하다. 내가 맞붙은 한국 선수들 중 가장 어리다. 이청용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나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언제나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코일 감독과 박지성. 그라운드 밖에서의 그들의 유머가 더 즐거운 이유다.

맨체스터(영국) | 전지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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