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과 하이드’ 온라인게임]<下>본보 기자 1개월 게임 체험기

동아닷컴 입력 2010-03-18 03:00수정 2010-03-1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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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교육’ 분야의 거장인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의 제임스 폴 지 석좌교수는 1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열린 ‘게임이 학교다’ 워크숍에서 게임을 활용한 교육이 미국의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영한 기자

게임중독 범인은 게임이 아니라 ‘소외’라는 걸 알게돼
소설-영화보다 강렬한 재미…주변 걱정-직장생활에 바빠
중독에 쉽게 빠지진 않아

쉬는 날마다 PC방 들러 20대고수 등과 한나절 몰입
“취약계층이 중독에 더 취약”



난 그 흔한 ‘스타크래프트’도 할 줄 몰랐다. 지난달 초 뒤늦게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이란 온라인게임을 시작한 건 게임 중독이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것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게임전문가였던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의 게임에 대한 매력적인 설명 덕분이기도 했다.


이 교수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특이한 스토리를 설명했다. 이 게임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10개 종족 간의 갈등을 게임의 기본 스토리로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오크는 이 게임에서 한때 악마의 꾐에 빠져 인간을 침략했던 ‘악’이었지만 이후 전쟁에서 패해 인간의 노예가 된 독특한 존재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크란 ‘반지의 제왕’ 같은 서양 판타지에서 늘 악역을 맡던 ‘악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워크래프트의 세계에서 이들은 긍지 높고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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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이 복잡한 역사를 가진 초록색 괴물로서의 삶을 택했다. 퇴근이 이른 평일이면 밤마다 두어 시간, 주말과 휴일이면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게임에 매달렸다. 자리를 잡은 곳은 ‘데스윙’ 서버였고 내 분신이었던 ‘오리가미(Origami)’라는 이름의 오크는 한 달 만에 26레벨에 오른 사냥꾼이었다. 하지만 레벨의 끝은 80레벨이었고 내 분신은 형편없는 약자에 불과했다. 한 게임을 배우자 다른 게임을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상위 1%의 최고수 게이머라는 이 교수는 자신이 즐기는 엔씨소프트의 게임 ‘아이온’ 아스펠 서버에서 ‘이화여대 레기온’이란 조직을 이끌고 있었다. 나는 마족 마도성의 삶을 만들어 이 서버에서 또 다른 경험도 함께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체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주위 사람들은 내가 게임의 방대한 스토리와 사용자 사이의 드라마를 자랑스럽게 설명하면서도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노가다’라고 불리는 ‘레벨업’을 위한 단순 반복 행위에 쓴다는 사실을 알고는 걱정을 나타냈다. 이런 행위가 대표적인 게임 중독처럼 받아들여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게임 평론가인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상우 교수는 “노가다란 분명한 보상을 노력한 만큼 돌려준다는 게임의 핵심 요소”라고 설명했다. 현실에선 ‘노력하면 보상받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어디에도 없지만, 온라인 게임에선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보상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못한 나는 강자가 되기 힘들었다. 그리고 늘 나보다 강한 상대를 겁내는 겁쟁이로 지내야 했다. 게임 속에서 존경받지 못한 건 물론이다. 나는 “제게 1골(골드)만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다른 사용자의 요구를 “저도 돈 없어요”라고 말하며 거부했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게임 속 초고수들은 자신들의 바쁜 일정을 쪼개 약자를 적으로부터 보호해줬고, 돈과 장비를 선물하는 선의도 베풀고 있었다.

김상훈 기자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캐릭터인 사냥꾼 오크 ‘오리가미’.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지난 금요일 오후, 난 쉬는 날마다 들렀던 PC방에서 그런 고수 가운데 한 명을 만났다. 그는 작은 체구의 20대 후반 정도 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내가 음료수를 마시고, 화장실을 오가는 동안 그는 거의 부동자세로 화면만 바라봤다. 움직이는 건 오직 분주한 두 손뿐이었다. 화면 속 그 젊은이의 분신을 슬쩍 훔쳐봤다. 레벨 50의 이른바 ‘만렙’(최고 레벨에 도달한 꽉 찬 레벨)으로 아이온의 세계에서 내가 겁내는 용맹한 천족 검성이었다. 5시간가량 머물렀던 그 PC방에는 문서 출력을 위해 잠시 들르는 뜨내기손님을 제외하면 오후 내내 오직 나와 그 검성 청년, 그리고 연거푸 담배를 피워대던 40대 남성과 쉴 새 없이 헤드셋으로 수다를 떨며 처음 알게 된 게임 속 상대방 남성과 저녁 약속을 하던 30대 여성만이 존재했다.

게임평론가들은 게임을 조사해 보면 게임 속 ‘고렙’(레벨이 높은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정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시간이 많아 저렴한 소일거리를 찾게 마련인 사회적 취약계층일수록 게임의 중독적 재미에 과도하게 몰입한다고 했다. 지난 한 달간 내가 푹 빠져 지냈던 게임의 세계는 소설과 영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렬한 재미를 줬다.

하지만 중독에 빠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족이 지켜봤고, 친구들이 걱정했으며, 무엇보다 직업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인의 의무가 엄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임 중독의 피해를 만드는 건 사실 게임 자체라기보다는 우리 주위의 이웃을 이런 사회적 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도록 방치한 우리 사회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게임은 창의력 키우는 최고의 무기”
■ 교육과 게임 ‘융합’의 현장
美뉴욕 공립교 ‘퀘스트 투 런’
직접체험 통해 교과 쉽게 이해
한국서도 게임학교 설립 계획

미국 뉴욕에 있는 ‘퀘스트 투 런’의 수업 장면. 사진 제공 미국 놀이연구소

‘외계인이 지구상에 내려와 몰래 보물찾기를 합니다. 외계인이 닿은 곳에선 스페인어를 씁니다. 외계인이 지구인에게 들키지 않고 지구인처럼 행동하며 보물을 찾으려면 스페인어를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외계인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 줄 유일한 사람입니다.’ 미국 뉴욕의 ‘퀘스트 투 런(Quest to Learn)’의 학생들은 스페인어 시간에 외계인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임무를 받는다. 외계인처럼 분장한 사람이 동영상으로 “스페인어로 ‘안녕’이 뭐냐”라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그러면 학생들은 사전을 찾아 알려준다. 외계인이 지구에서 활동할수록 점점 스페인어를 많이 묻는다. 학생들은 숫자, 길 찾는 법 등을 스페인어로 찾아 알려줘야 한다.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를 배우게 되는 셈이다. 한국의 중고교(6∼12학년)에 해당하는 이 학교에선 5개 강좌가 게임처럼 진행된다. ‘영어’ ‘수학’ 등의 강좌명은 없다. 대신 ‘마음을 위한 스포츠’ ‘일을 해결하는 방법’ 등의 강좌가 있다. 모두 미국 뉴욕의 일반 중고교에서 가르치는 정규 교과의 내용을 담은 강좌다. 다만 여러 과목을 합쳐 가르치는 ‘융합형 강좌’라는 점이 특징이다.

○ 미국 교육계, 게임에 주목

지난해 가을 1기 학생 80여 명을 받아 문을 연 이 학교는 일반 학교와 완전히 다른 커리큘럼을 갖고도 정식으로 공립학교 인가를 받아 화제가 됐다. ‘공립학교를 위한 새로운 비전’이란 비정부기구(NGO)와 미국 교육청, 게임 및 교육 관련 비영리기관인 놀이연구소(Institute of Play) 등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 파슨스 디자인스쿨, 맥아더 재단 등도 인력과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 학교의 커리큘럼 제작을 맡은 피터 리(한국명 이승택) 성균관대 영상학과 겸임교수는 “게임 기반의 학교를 정식 학교로 인정할 정도로 미국 교육계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17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열린 ‘게임이 학교다’ 워크숍에는 ‘퀘스트 투 런’ 학교 창립에 참여한 리 교수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의 제임스 폴 지 교수가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교육계가 게임에 주목하는 이유가 나왔다. 지 교수는 “미국에선 21세기의 유일한 경쟁력은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이라고 보는데 이를 키워줄 방법이 바로 게임”이라고 말했다. 나라마다 기술 수준이 비슷해지면서 현재의 기술을 뛰어넘는 창의력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또 사회 문제도 복잡해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갈수록 중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교육계는 게임 방식을 응용한 수업이 뒤처지는 학생들을 교육할 좋은 방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소도시를 중심으로 고등학교 진학률이 점차 떨어지고 수학 과학 등의 분야에서 아시아권 학생들에게 밀리고 있어 ‘교육 개혁’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 게임은 학생들에게 흥미를 주고 몰입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교육계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는 판단이다.

○ 교육에 왜 게임인가

게임은 직접 체험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교육에 효과적이다. 지 교수는 이날 워크숍에서 게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먼저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으로 복잡한 단어들이 뒤섞인 게임 매뉴얼을 보여주면서 “분명히 영어 단어로 구성된 매뉴얼인데 반복해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교과서를 먼저 읽고 시작하는 전형적인 학습 방법과 비슷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 교수는 그냥 게임을 먼저 해봤다고 한다. 그러고선 매뉴얼을 읽어보니 쉽게 이해가 됐다는 것이다.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매뉴얼을 읽으며 게임의 이미지와 움직임이 기억났기 때문. 그는 “일단 게임을 체험하고 나면 학습하고자 하는 내용의 이미지, 움직임, 목표 등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 교수는 “역사 시간에는 직접 역사가가, 과학 시간에는 직접 과학자가 되는 게임을 체험하면 학습 내용의 맥락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에선 ‘시도와 실패’를 마음 놓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 방법으로 효과적이란 주장도 있다. 실패해도 위험 부담이 없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도록 돕기 때문. 최근 국내에서도 일부 경제 교육기관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직접 창업을 해보는 게임을 시도하고 있다.

○ 한국에서도 ‘게임 다시 보기’

리 교수는 한국에서도 게임을 통한 교육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놀공발전소’를 국내에 설립한 뒤 게임을 활용한 학교도 세울 계획이다.

‘학생 중심의 교육’을 위해 게임의 논리를 교육과정에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리 교수는 “모든 산업분야가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지만 교육 서비스만 유독 안 바뀌고 있다”며 “디지털 세대인 요즘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르치려면 게임의 특성을 교육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선 게임이 급성장하는 바람에 긍정적인 부분이 부각될 여유가 없었다”며 “교육에 게임의 시스템을 활용하고 긍정적인 문화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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