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고객 지적 무시… 1등 자만심이 ‘도요타 굴욕’ 불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몸집 키우기가 화근
원가 낮추려 해외생산 확대… 현지조달 부품 관리에 허점
혼다도 품질구멍 부메랑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도요타의 글로벌 경영은 세계 제조업체들의 모범으로 여겨졌다. 남의 이야기나 서류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믿지 말고 현장을 중시하라는 이른바 ‘현지(現地)·현물(現物)’의 도요타 정신은 ‘도요타 웨이’라는 경영학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그러나 도요타의 무리한 확장 정책은 끝까지 완벽을 추구하는 도요타식 품질관리에 심각한 오점을 남겼다. 혼다의 경우도 도요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 무리한 확장이 문제 불러

도요타가 해외 생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미일 무역마찰이 심해지자 캘리포니아 주에 미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공장을 설립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후에도 켄터키 주 등 각지에 단독으로 공장을 건설하면서 해외 생산거점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 같은 해외 생산 전략에 힘입어 도요타는 2008년에 GM을 제치고 판매 대수 기준으로 세계 1위가 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비롯됐다. 도요타는 2001∼2007년 자동차 생산 규모를 334만 대나 늘렸다. 일반적으로 자동차공장 한 곳의 생산량이 연간 30만 대인 점을 감안하면 6년간 공장을 11개나 지은 셈이다. 도요타는 생산을 현지화해 부품을 현지 업체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품질관리에 허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품 현지화를 통한 원가절감이 결국 제품 결함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것. 비용 절감과 품질관리 병행이라는 전통적인 ‘도요타 생산방식’을 새로 편입된 현지 부품업체에까지 철저하게 적용하지 못한 탓이다. 이 때문에 도요타 내부에서조차 “세계 1위라는 양적 팽창에 몰두한 나머지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든다는 도요타 본래의 완벽정신에서 벗어났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부품업체에서 대량으로 조달한 부품을 세계 각지의 공장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품 공용화 확대도 대량리콜 사태로 이어진 배경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가속페달은 모두 미국업체인 CTS가 생산한 동일 모델로 여러 차종에 같이 쓰였다.

혼다자동차가 지난달 29일 “운전석 파워 윈도(전자식 창문) 스위치에 물이 스며들어 합선으로 인한 차량화재 가능성이 높다”며 64만6000대에 대해 리콜 결정을 내린 것도 해외 생산 및 부품공용화 확대와 무관치 않다. 이번에 리콜 대상이 된 차량은 혼다의 주력 소형차인 ‘피트(일부 지역에서는 재즈로 판매)’와 ‘시티’ 2개 브랜드로 대부분 중국과 브라질 현지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카이(東海)학원대의 시모카와 고이치(下川浩一) 교수는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판매 대수 확대를 목표로 급격히 생산을 늘리긴 했지만 부품회사의 품질관리에는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日 “초심 잃었다” 비판여론
日특유 완벽주의 저버리고 가장 중요한 안전문제 소홀
부품업체에 책임 전가 ‘눈총’


○ 1등에 도취한 자만인가

이번 도요타의 대량 리콜 사태를 오랫동안 세계 자동차시장을 이끌어온 도요타의 지나친 자부심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1등에 도취된 나머지 자만과 타성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문제가 된 가속 페달은 이미 3년 전인 2007년 미국에서 소비자의 신고로 문제가 된 바 있다. 그럼에도 도요타 측은 “차량 결함이 아닌 운전상의 문제”라며 해결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다. 그때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현재와 같은 대량 리콜 사태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도요타가 사태 초기에 대량 리콜의 원인을 미국 부품소재 회사에 모두 전가하며 발뺌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도 ‘도요타답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도요타는 최근 있었던 자사 차량의 급발진 원인도 부품업체 탓으로 돌렸지만 CTS 측은 “도요타의 급발진 사고 발생 당시에는 가속페달 제품을 만들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조립이나 관리 등 다른 분야에서 부실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요미우리신문도 31일 사설에서 “도요타는 문제의 페달을 미국 부품업체에서 조달받았지만 관리를 간과한 책임도 있다”며 “효율화와 국제화에만 신경 쓴 나머지 가장 중요한 안전에 대한 배려를 게을리했다”고 비판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