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출범부터 좌편향 논란… 11명중 6명이 盧정권 추천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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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적구성-조사기준 문제점

친일행위자 표결 선정 때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
사무처도 진보인사 대거 포진
유족, 조사결과 이의제기 74건중 단 1건만 받아들여
시한 쫓겨 부실조사 가능성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가 27일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해산했지만 인적 구성의 편향성과 조사 기준의 일관성 문제로 기구 출범 당시부터 논란이 일었고 결과를 놓고도 시비를 낳고 있다. 11월로 끝나는 활동시한에 쫓겨 조사가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출범부터 ‘좌편향’ 논란

노무현 정부 집권기인 2005년 5월 발족한 규명위는 출범 당시부터 사상적 편향성 논란을 겪었다. 규명위는 대통령 임명위원 4명과 국회 선출위원 4명, 대법원장 지명위원 3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됐다. 출범 당시 규명위는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4명과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추천한 2명만으로도 과반수(6명)를 차지했다. 야당 선출(2명)과 대법원장 지명위원을 합쳐도 대통령과 여당 선출위원을 견제하기 어려운 구도였다. 3명의 위원을 지명한 최종영 대법원장도 김대중 정부 시절에 김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이었다. 초대 위원장은 진보진영의 대표적 사학자인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였다. 규명위 구성의 편향성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 등을 놓고 표결을 할 때마다 반복되는 결과를 낳았다. 한 위원은 “대부분 표결이 9 대 2나 8 대 3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실무를 맡는 규명위 사무처에도 진보성향 인물이 대거 포진했다. 성대경 위원장은 “위원 11명 중에서 의결 정족수인 과반수가 찬성하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법원장 지명위원인 최병조 위원(서울대 법대 교수)은 올해 7월 석연찮은 이유로 임기 4개월여를 남겨두고 위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최 위원이 현상윤 전 고려대 총장을 친일 명단에서 제외하자는 데 표를 던진 뒤 사무처와의 관계가 나빠져 사퇴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조사시기 특성 무시에 부실조사 논란

규명위가 이번에 조사 결과를 종합해 발표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 550명을 추가시킨 ‘조사대상 3기(1937년 중일전쟁∼1945년 광복)’는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이 정점으로 치닫는 시기다. ‘민족말살기’로 불리는 이 시기는 일제에 의해 친일 매체 기고나 관변단체 회원명부에 이름이 도용되는 사례도 자주 발생해 조사대상 1기(1904년 러일전쟁 개전∼1919년 3·1운동)와 2기(1919년 3·1운동∼1937년 중일전쟁)보다도 더 정밀한 조사가 필요한 시기다. 하지만 규명위는 친일매체에 전쟁을 찬양하는 글을 썼거나 친일단체 회원 명부에 이름이 있다는 이유 등으로 많은 인사들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단했다. 경희대 허동연 교수(역사학)는 “3기는 일제의 광기가 극에 달했던 시기”라며 “규명위 기준대로라면 해외무장독립투쟁을 하거나 지하에 숨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친일논란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규명위는 “특별법이 정한 기준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시 총독부기관지에 학병권유문을 실은 몽양 여운형은 아예 조사대상에서 빠진 사례에서 보듯 규명위가 대한민국 건국 주도세력인 민족주의 우파 인사들에 비해 좌익이나 사회주의 계열 인사에게는 느슨한 잣대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11월 종료되는 규명위 활동시한 내에 조사를 끝내려다 보니 시간 부족으로 조사가 부실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550명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한 ‘조사대상 3기’의 조사기간은 1년 6개월에 불과했다. 위원들도 시간에 쫓기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위원은 “전체회의 며칠 전에야 사무국에서 심의자료가 한 무더기씩 올라올 때도 있었고 심의 당일에야 자료를 받는 날도 있었다”며 “짧은 시간에 많은 인물을 심의하다 보니 3, 4분 만에 자료를 읽고 친일 여부를 결정한 인물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유족 등 이의 제기에 귀 막아

규명위의 결정에 대해 유족과 기념사업회 등이 제기하는 이의는 거의 수용되지 않았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 결정에 반발해 2006년부터 올해까지 접수된 총 74건의 이의 가운데 수용(인용)된 것은 총 1건(미술 분야 정현웅)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규명위 관계자는 “대부분의 이의신청이 친일행적을 뒤집는 증거는 못 대고 ‘독립운동 경력도 있다’ ‘인생 전체를 판단해 달라’는 내용이 많아서 인용률이 높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조사 결과가 뒤집힐 때 예상되는 규명위의 신뢰 하락을 우려해 이의를 면밀히 검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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