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원재]공기업 개혁, ‘설거지’ 준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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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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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머물렀다.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쳐진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출범식 장면이다. 중앙에 이명박 대통령과 이지송 토지주택공사 사장, 그 옆에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과 이병석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이 자리를 잡았다. 양쪽 가장자리엔 토공과 주공의 노조위원장이 섰다.

자산규모가 무려 105조 원인 통합 공기업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이 사장의 업무능력, 특히 돌파력은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 시절 충분히 검증됐다. 그런 이 사장에게도 86조 원이나 되는 부채를 줄이고 부실 소지를 없애는 것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두 개의 노조와 두 명의 노조위원장을 상대하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든 싸움이 될 수 있다.

통합 과정에서 빚어진 온갖 우여곡절을 감안하면 두 노조 체제로 출범을 맞는 상황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울타리에서 두 노조가 양립하는 구조로는 진정한 의미의 화학적 결합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인사를 할 때마다 토공 몫과 주공 몫을 나누고, 토공식 스타일과 주공식 노하우를 적당히 절충하는 식으로 하다보면 경영효율화를 통한 체질개선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토지주택공사는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개혁이 거둔 소중한 성과다. 내부 정돈이 안 끝난 상태에서 서둘러 입주한 모양새이긴 해도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통합을 이뤄낸 뚝심은 평가할 만하다. 이달 28일 산업은행 분리가 예정대로 이뤄지면 공기업 개혁의 양대 축은 일단 완성되는 셈이다.

기존의 산업은행을 5개의 자회사를 거느리는 산은 지주회사와 정부 산하의 정책금융공사로 나누면 산은 민영화의 기틀은 제도적으로 완성된다. 금융공기업 개혁의 상징이 결실을 이루게 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정부의 의지가 무색할 정도로 덤덤하다. 오히려 금융의 후퇴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민영화되는 산은이 어떤 위상을 갖고 어떤 방식으로 활동할지에 대한 청사진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산은 측은 개인고객 기반이 취약해 생존을 장담하기 힘드니 다른 시중은행을 인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변변한 방패 없이 무한경쟁에 내몰리게 된 산은의 처지도 딱하지만 요구를 받아들이면 정부의 입김에 좌우되는 국유은행이 하나 더 늘어나는 꼴이다.

작년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정부가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발표한 횟수는 모두 6번이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국정감사 보고에서 민영화, 통폐합, 정원감축 같은 당초 계획을 대부분 ‘완료’했거나 ‘정상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서슬 퍼런 개혁의지를 관철했다면 해당 공기업에서 소동이 벌어질 법도 하지만 임직원들 사이에선 관심이 끊긴 모습이다. 경제위기가 닥친 뒤부터는 공기업 개혁이 국정 우선순위에서도 뒷전으로 밀려난 분위기다.

집권 중반기를 넘겨 개혁을 성공시킨 전례는 거의 없다. 야박하게 들리겠지만 공기업 개혁의 동력이 서서히 꺼져가는 단계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개혁 불씨를 다시 지피기가 벅차다면 벌여 놓은 일이라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토공 주공 통폐합과 산은 민영화는 역대 어느 정권도 엄두를 내지 못한 난제다. 토지주택공사 사장과 단일 노조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이 신문에 실리는 날,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개혁은 절반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박원재 경제부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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