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장과 국민장, 법적 기준 명확히 해야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국장(國葬)과 국민장에 대한 법적 기준을 명확히 마련할 때가 됐다. 현행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 3조는 ‘대통령직에 있었던 자가 서거하거나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자가 사망한 경우’ 주무장관 제청으로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규정이 모호해 현직 대통령의 재량이 결정적 변수가 되고 당시의 정치상황에 영향을 받기 쉽다.

이번에 청와대는 국장도 염두에 두었으나 실무 부처에서는 최규하 노무현 등 다른 전직 대통령과의 형평성을 감안해 국민장으로 치를 것을 검토했다. 유족과 민주당은 김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및 남북화해에 대한 업적을 들어 국장을 요구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국장 결정을 ‘정부의 정치적 자살행위’ ‘대한민국의 명예와 권위를 팔아먹고 국가 정체성과 정통성을 팽개친 비굴한 결정’ 등으로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고인의 민주화 공로에 대해서는 국민 사이에 대체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만,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발전 기여’와 ‘북한체제 강화 방조’ 사이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게 현실이다. 후자는 지나친 ‘대북 저자세’와 ‘퍼주기’로 북한에 그릇된 판단을 심어주고 결과적으로 핵 및 미사일 개발을 도왔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6·15선언 속의 통일방안 등이 헌법적 가치에 입각한 대한민국의 통일 지향성에 반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민주당은 그제 국회 빈소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한 고인의 6·15선언 9주년 기념연설 동영상을 상영하자고 요구하며 정부 측과 마찰을 빚었다. 이는 화해와 통합의 정신을 살리자고 정부가 결정한 국장을 정파적 정치선전장으로 만들려는 것으로 갈등을 부채질하는 행태였다.

국장과 국민장에 대한 법적 기준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전직 대통령 서거 때마다 정치적 판단이 작용하고, 국론 분열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국장과 국민장을 구분하지 않고 국가장(state funeral)으로 통일해 수용 여부를 가족에게 일임하는 미국의 예도 참고할 수 있다.

장지 문제도 정리돼야 한다. 이번처럼 국립서울현충원에 자리가 없어 대전현충원에 자리를 마련했음에도 유족이 서울을 고집하고 정부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면 형평성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국장의 영결식 거행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장례기간을 9일까지 할 수 있도록 한 법조항도 시대에 맞지 않는 만큼 폐지 및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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