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Supercool’한 미국 정치

  • 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은 정치란 어떤 것일까…. 미국 정부가 최선을 다해 자국민을 챙기는 외신 보도를 지난주 잇달아 접하면서 이런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1991년 제1차 걸프전쟁 첫날 추락한 미군 전투기 조종사의 유해를 미 정부가 18년 만에 발굴했다는 외신(본보 8월 4일자 2면)을 보며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미국의 국민보호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의 주인공인 마이클 스콧 스파이처 해군 소령의 유족이 그의 유해를 찾아준 미 정부에 “‘단 한 명의 군인도 홀로 적진에 남지 않게 하라(No one left behind)’는 게 이뤄진 데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는 게 공감이 갔다.

미국이 외국서 숨진 군인들의 유해를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찾아 유족의 품에 돌려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북한 지역에 묻힌 6·25 참전 미군의 유해를 발굴하는 작업도 꾸준히 벌여왔다.

해피 엔딩으로 끝난 북한 억류 여기자 2명의 생환 드라마도 감동적이었다. 특히 5일 캘리포니아 주 밥호프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여기자들이 먼저 내리고 5분쯤 뒤에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트랩을 내려오는 장면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기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가족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도록 배려하고 클린턴 자신은 뒤로 빠지는 모습에 “역시 미국은 다르구나” 하고 감탄했다. 여기자 로라 링 씨가 클린턴 전 대통령 등에게 “참 멋진(supercool) 팀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한 건 가슴에서 우러난 칭송이었을 것 같다. 클린턴은 6일엔 방북에 관해 묻는 기자들에게 “미국에 대통령은 한 명뿐이다. 내가 입을 열어 현 정부가 일을 다뤄가는 데 제약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했다. 정말 쿨(cool)한 지도자다.

사실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껄끄러운 사이였다. 지난해 대선의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가 오바마와 치열히 맞섰던 탓이다. 또 여기자들이 속한 커런트TV의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과의 관계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 보호를 위해 손을 잡았고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해 여기자들을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곳에서 구해냈다.

미국 정치가 부러운 건 새삼스럽지도 않다. 2000년 대선 때 플로리다 주 재검표 문제로 한 달여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해 혼란이 빚어지자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고어는 실제론 이겼을 가능성이 컸는데도 연방대법원 판결을 존중해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그날 밤 나이트클럽에서 부인의 드럼에 맞춰 자신의 대선 팀과 한바탕 신나게 춤추는 것으로 모든 걸 털어버렸다. 그때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기자는 선거 시스템의 결함을 성숙한 민주의식으로 극복하는 미국의 힘에 경외감을 느꼈다. 한국에선 꿈도 못 꿀 일 아닌가.

한국은 수십 년간 자유민주주의를 키워왔지만 국민을 섬기는 정부와 정치인의 자세에선 미국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산업화를 본받으려고 애쓴 만큼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보여주듯 미국이 모든 걸 다 잘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민주주의 면에선 우리가 배울 게 여전히 많은 나라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이 더 분발해야 한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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