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제1차 걸프전쟁 첫날 추락한 미군 전투기 조종사의 유해를 미 정부가 18년 만에 발굴했다는 외신(본보 8월 4일자 2면)을 보며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미국의 국민보호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의 주인공인 마이클 스콧 스파이처 해군 소령의 유족이 그의 유해를 찾아준 미 정부에 “‘단 한 명의 군인도 홀로 적진에 남지 않게 하라(No one left behind)’는 게 이뤄진 데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는 게 공감이 갔다.
미국이 외국서 숨진 군인들의 유해를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찾아 유족의 품에 돌려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북한 지역에 묻힌 6·25 참전 미군의 유해를 발굴하는 작업도 꾸준히 벌여왔다.
해피 엔딩으로 끝난 북한 억류 여기자 2명의 생환 드라마도 감동적이었다. 특히 5일 캘리포니아 주 밥호프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여기자들이 먼저 내리고 5분쯤 뒤에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트랩을 내려오는 장면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기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가족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도록 배려하고 클린턴 자신은 뒤로 빠지는 모습에 “역시 미국은 다르구나” 하고 감탄했다. 여기자 로라 링 씨가 클린턴 전 대통령 등에게 “참 멋진(supercool) 팀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한 건 가슴에서 우러난 칭송이었을 것 같다. 클린턴은 6일엔 방북에 관해 묻는 기자들에게 “미국에 대통령은 한 명뿐이다. 내가 입을 열어 현 정부가 일을 다뤄가는 데 제약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했다. 정말 쿨(cool)한 지도자다.
사실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껄끄러운 사이였다. 지난해 대선의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가 오바마와 치열히 맞섰던 탓이다. 또 여기자들이 속한 커런트TV의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부통령과의 관계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 보호를 위해 손을 잡았고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해 여기자들을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곳에서 구해냈다.
미국 정치가 부러운 건 새삼스럽지도 않다. 2000년 대선 때 플로리다 주 재검표 문제로 한 달여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해 혼란이 빚어지자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고어는 실제론 이겼을 가능성이 컸는데도 연방대법원 판결을 존중해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그날 밤 나이트클럽에서 부인의 드럼에 맞춰 자신의 대선 팀과 한바탕 신나게 춤추는 것으로 모든 걸 털어버렸다. 그때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기자는 선거 시스템의 결함을 성숙한 민주의식으로 극복하는 미국의 힘에 경외감을 느꼈다. 한국에선 꿈도 못 꿀 일 아닌가.
한국은 수십 년간 자유민주주의를 키워왔지만 국민을 섬기는 정부와 정치인의 자세에선 미국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산업화를 본받으려고 애쓴 만큼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보여주듯 미국이 모든 걸 다 잘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민주주의 면에선 우리가 배울 게 여전히 많은 나라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이 더 분발해야 한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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