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진미석]이젠 어른이 공부할 때다

  • 입력 2009년 4월 29일 02시 59분


학업 성취에 관한 여러 가지 국제비교조사는 한국 청소년이 문제해결력, 수학, 과학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학생의 공부 시간 또한 길어 우리와 비슷하게 공부를 잘하는 핀란드나 일본 학생에 비해 훨씬 많은 편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또 잘하는 한국 청소년에 비해 한국 어른의 학습의 양이나 질은 보잘것없다. 이래서는 인적자원이 중요한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힘들다.

성인의 평생학습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는 통계치를 대지 않더라도 유럽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 지하철을 탄 어른이 책을 들고 있는 광경은 보기 어렵다. 한국의 1주간 학습시간을 연령대별로 보면 10대 48시간 53분, 20대 5시간 22분, 30대 14분, 40대 7분이다. 50대 이상의 성인은 거의 학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통계청 조사 결과이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입학을 정점으로 학습활동이 급전직하한다.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평생학습사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고령화가 진전되는 지식기반사회에서는 평생학습은 수사(rhetoric)가 아니라 현실이며,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유지하는 지속가능한 삶(sustainable life)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활동이다. 왜 한국의 어른은 공부를 하지 않는가? 공부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시대가 지나갔음에도 우리 어른들은 공부하지 않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도, 질책하지도 않는다. 세계적으로 1, 2등 하는 아이들은 나무라고 혼내고 더 많이 공부 시킬 방법을 쥐어짜지만 지하철에서 책 한 권 읽지 않는 어른은 아무도 야단치지 않는다. 정부 기업체 교육기관은 어른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평가받지 못하는 일터를 만들고 어른이 손쉽게 공부하도록 시간과 장소,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

공부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말 없는 역할모델이 된다. 열심히 공부하는 어른을 보고 자라면서 아이도 일생에 걸쳐 학습을 기꺼워한다. 부모를 통해 학습과 삶이 통합되는 태도를 키워 나갈 것이다. 부모가 책을 읽고, 자기계발에 열심인 모습을 보이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배운다. 부모의 자세가 자녀에게 살아있는 교과서가 된다. 학습곡선을 성인기로 조금씩 이동함으로써 생기는 청소년기의 여백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기르는 데 써야 한다.

지식기반사회를 준비하는 청소년기에는 학습에 대한 우호적 태도, 커뮤니케이션, 수리능력 등 기본적인 역량,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창출하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 이런 핵심역량은 머리가 말랑말랑한 시기에 여러 가지 활동을 스스로 해 보면서 키워 나갈 수 있다. 잘 짜인 스케줄에 따라 반복과 훈련을 통해서 답을 찾아가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은 멍하게 있을 수 있는, 정신과 마음의 공간을 갖고 다양한 생각과 창의성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평생학습이 수사가 아니듯이 창의성과 다양성 역시 더는 수사가 아니다. 건강한 평생학습사회의 일원으로 커 나가는 일은 천연부존자원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에 의해, 사람을 통해, 그리고 사람을 위한 인재강국의 사회에 요구되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얘기다. 이제 아이에게는 그들의 여유와 공간을 돌려주고, 대신 어른의 공부 문제에 집중해 보자. 우리 사회의 학습곡선을 이동해 보자. 부모 교육자 정책담당자 등 모든 어른은 아이의 교육에 쏟는 관심의 10분의 1만 거둬들이고 이를 우리 어른의 배움에 투자하자. 이것이 아이도 살고 어른도 사는 방법이다.

진미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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