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22>경제개발의 길목에서

  • 입력 2009년 4월 25일 02시 55분


박정희 대통령은 우방국과 함께 국가의 안전을 유지하면서 한국의 군사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자주국방 체제를 갖추려 했다.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오른쪽)과 육영수 여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박정희 대통령은 우방국과 함께 국가의 안전을 유지하면서 한국의 군사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자주국방 체제를 갖추려 했다.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오른쪽)과 육영수 여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동아일보 자료 사진
<22>방위세와 자주국방

美7사단 철수 등 국제정세 긴박

무기 국산화 ‘율곡계획’ 입안

재원 마련 위해 방위세 신설

1970년대 초 미군 7사단의 철수와 베트남전 휴전으로 인한 급박한 국제정세 변화에 대응해 박정희 대통령이 선택한 4대 국정과제의 하나가 자주국방 체제의 촉진이었다는 것은 지난 칼럼에서 말한 바 있다.

당시의 ‘일면 국방, 일면 건설’이라는 표어가 말해 주듯이 박 대통령의 근대화 개념에는 남한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자주국방과 경제개발이라는 양축이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국방부에서는 1974년부터 ‘전력증강 8개년 계획’을 입안하고 있었고 박 대통령은 이것을 ‘율곡(栗谷)계획’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율곡 선생이 유비무환의 경륜으로 10만 양병설을 주창한 고사(故事)를 생각했던 것이다. 율곡계획은 남북 간의 전력 비교가 50 대 100이라는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전차 야포 함정 잠수함 전투기 등의 국산화와 외부 조달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것을 보면 누구라도 중화학공업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계획이 요구하는 재정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 하는 것인데 이 과제는 또다시 나에게 떨어졌다. 분명한 것은 조세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는 것인데 기존 세제하에서는 그것은 불가능했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협의한 끝에 방위세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어느 날 나는 방위세안을 보고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서 대통령과 독대했다. 보고를 마치고 나자 대통령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 김일성이 또다시 남침을 하면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서부전선에서 미군을 빼는 일이야.”

“전쟁이 났는데 왜 미군을 뺍니까?”(나)

“아냐, 빼야 돼.”(박 대통령)

“…?”(나)

대통령의 설명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미군을 빼지 않으면 미국 병사들이 뻣뻣이 서서 총을 쏘다가 모두 거꾸러질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TV는 물론 신문 기자들이 그 참상을 낱낱이 보도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미국 의회와 언론이 화전(和戰) 양면으로 분열돼 전쟁 개입에 대한 결정이 늦어지고 그러는 동안 미8군 사령관은 작전 수행이 어렵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런 상태가 한 달만 계속되면 우리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러한 상태를 예방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전쟁 발발 직후 미군을 서부전선에서 철수시키고 38선 전역을 우리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북은 평소에 공격 태세를 완비하고 있었으니까 당초 일주일 동안은 우리가 밀릴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면 아군이 반격으로 전환해 밀고 올라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코리아는 역시 베트남과 다르다. 그들은 자력으로 싸우려 한다. 우리는 이러한 우방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하면서 공군 지원과 병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국에 기대할 것은 공군과 병참이고, 육상 전투는 전적으로 우리가 맡아야 한다.

듣고 보니 대통령의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힘이 모자라서 적에게 먹히는 것보다 우방국의 힘을 빌려서라도 국가의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자주국방의 개념과 충돌할 이유는 없다. 다만 자신의 힘을 기르는 노력을 하지 않고 외세에만 의존하려는 것은 자주국방이라 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자주국방은 바로 이러한 개념이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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