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도시 공존의 현장을 가다]<4>美새너제이 과달루페강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강따라 10㎞… ‘굽이굽이’ 자전거길 ‘첨벙첨벙’ 자연학습장

《“선생님, 제가 이 물고기를 잡았어요.”(초등학생)

“이 물고기는 깨끗한 강물에서만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강물을 깨끗하게 만들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죠.”(교사)

지난달 23일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의 심장부인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산호세) 도심을 흐르는 과달루페 강. 새너제이 프랭클린 매킨리 공립초등학교 4학년 학생 30여 명이 조그만 손 그물망을 강물에 담가 물고기나 수생 곤충 등을 채집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잡아온 물고기와 곤충을 물이 담긴 바구니로 옮겨 담으며 인솔 여교사 아만다 씨(27)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1995년 물난리후 정비 시작

“홍수도 막고 자연도 지킨다”

江확장 대신 지하에 수로관

아만다 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학습을 나왔다”며 “과달루페 강은 아이들의 훌륭한 야외 학습장”이라고 말했다. 강 양쪽으로 조성된 공원에는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와 한가롭게 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홍수에 대비한다

새너제이 북쪽에 위치한 샌타크루즈 산맥에서 발원한 과달루페 강은 새너제이 도심을 지나 북쪽의 알비소에서 샌프란시스코 만으로 흘러나가는 길이 30km 안팎의 강이다.

기자가 과달루페 강을 찾아간 날은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인지 수면이 낮았지만 이 강은 그동안 여러 차례 대홍수를 일으켰다. 1995년 1월에는 새너제이 도심에서 강물이 범람해 수많은 가옥과 빌딩이 물에 잠겼다. 주민들은 보트로 대피해야 했고 첨단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임시로 문을 닫아야 했다. 이때 피해를 본 지역은 1986년 2월에 홍수가 난 지역이었다. 이어 1995년 3월에도 50년 만에 가장 큰 비가 내리면서 시내 거리가 강으로 바뀌었고 주민들은 또다시 대피해야 했다.

이처럼 상습적으로 홍수가 발생하자 새너제이 시와 이 지역의 수자원을 관리하는 행정 당국인 샌타클래라밸리 워터디스트릭트(SCVWD)는 대규모 홍수방지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목표는 ‘1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홍수를 방지한다’는 것이었다. SCVWD는 연간 강수량 데이터를 분석해 100년 내 최대 홍수에도 강이 범람하지 않도록 홍수방지 시설을 설계했다. 공사에는 미 육군 공병대도 참여했다.

○ 홍수도 방지하고 환경도 지킨다

새너제이 시와 SCVWD는 과달루페 강을 상류와 새너제이 도심(중류), 하류 등 3구간으로 나눠 공사를 진행했다. 최초 공사는 1992년 4월에 시작해 4년간 진행되다 몇 차례 프로젝트를 보완하는 과정을 거쳐 1999년 재개됐다.

도심 부분은 2004년 9월에 완공됐고 하류 부분은 같은 해 12월에 공사가 완료됐다. 이제 막 시작된 상류 부분의 공사는 2016년경 완공될 예정이다. 가장 중요한 공사 구간은 인구가 밀집돼 있는 도심 부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홍수를 효율적으로 방지하고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느냐가 당국의 고민이었다.

예산을 적게 들이고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면 강폭을 넓히고 양 옆으로 제방을 높이 세우면 됐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과달루페 강은 양쪽으로 숲이 우거져 사슴, 너구리, 다람쥐, 주머니쥐 등 동물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었다. 또 이 강은 미국의 주요 도심 지역을 흐르고 있는 강 중 유일한 연어 산란지역이다.

일부 시민은 강변의 숲을 파괴하면 수온이 높아져 과달루페 강의 풍부한 어종이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새너제이 시와 SCVWD는 결국 과달루페 강의 본래 모습을 최대한 지키면서 홍수를 방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가장 문제가 됐던 새너제이 도심의 경우 강폭을 넓히는 대신 강 옆으로 지하에 수로관을 매설한 뒤 강 물줄기와 연결했다. 비가 많이 와 강물이 차오를 때는 이 강물이 수로관으로 흘러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로관을 지하에 매설했기 때문에 지상의 숲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 시민들의 새로운 안식처

과달루페 프로젝트의 일차적인 목적은 상습적인 홍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에 못지않게 강을 시민들의 휴식처로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목적이었다. 새너제이 도심 고층 빌딩 사이로 흐르는 과달루페 강은 다양한 휴식 공간이 강변에 마련돼 있는 것은 물론 대형 공원들이 군데군데 조성돼 있다. 서울의 한강 둔치를 연상시킨다.

먼저 강의 양쪽에는 약 10km 길이의 자전거 도로가 조성돼 있다. 휴일에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물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시민도 많다. 2007년 한 조사에 따르면 매일 1000여 명이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는데 이 중 40%가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전거 도로를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강 끝까지 갈 수 있다. 또 3700송이의 장미농원과 3.3에이커 규모의 과수원이 조성돼 있고 학교 운동장 크기의 소프트볼 경기장도 있다.

과달루페 강변 공원에서는 평일 점심시간이 되면 근처 빌딩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산책을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새너제이 시민들에게 과달루페 공원은 매일 함께 숨쉬는 공간인 셈이다. 과달루페 강변 공원을 관리하는 자원봉사 조직 ‘프렌즈 오브 과달루페 파크 앤드 가든스’의 레슬리 해밀턴 사무국장은 “센트럴 파크가 없는 맨해튼을 상상할 수 없듯이 이제 과달루페 강변 공원이 없는 새너제이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너제이=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환경-개발 다 얻으려면 장기간 꼼꼼히 계획 세워야”▼

과달루페 강 관리 조직 부책임자 체스터맨 씨

“수년 전만 해도 잦은 범람으로 새너제이 시민들에게 큰 피해를 줬던 과달루페 강은 이제 시민들이 즐기고 함께 숨쉬는 공간입니다. 환경도 보호하고 홍수도 방지하기 위한 종합적인 개발 계획으로 가능했지요.”

과달루페 강의 관리를 총괄하는 샌타클래라밸리 워터디스트릭트(SCVWD)의 데이비드 체스터맨 부(副)운영책임자(사진)는 과달루페 강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약 20년의 기간과 5억 달러의 예산이 필요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거의 개발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유지했던 과달루페 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5차례 홍수를 일으키며 새너제이 도심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과달루페 강 개발 프로젝트에 10년 동안 참여했던 체스터맨 씨는 “과달루페 강의 홍수를 막기 위한 프로젝트는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이후 여러 차례 계획을 수정하면서 종합적인 개발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새너제이 시는 과달루페 강변 공원화 계획을, SCVWD는 홍수방지 프로젝트를 별도로 추진하다가 두 프로젝트를 묶어 과달루페 강을 체계적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체스터맨 씨는 “단순히 홍수만 막으려 했다면 로스앤젤레스 강처럼 강변 제방에 콘크리트 벽을 세워 범람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강을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고 동시에 환경을 가급적 파괴하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꼼꼼히 계획을 세웠다”고 강조했다.

수온이 올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강변의 우거진 숲을 그대로 두고 지하에 수로관을 매설했고 강의 흐름도 거의 원래 상태를 유지했다. 강변 상습 침수 지역의 가옥 수백 채를 사들여 이곳에 공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었다. 과달루페 강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환경 파괴 등을 우려해 반대하던 주민들도 환경 보호 등을 고려한 개발 계획에 적극 찬성했다. 체스터맨 씨는 “일단 강 옆으로 집과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개발하는 데 예산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먼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개발을 해야 돈과 시간을 절약하고 환경도 보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너제이=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