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용]전교조, 학원 이기는 투쟁은 언제쯤…

  • 입력 2009년 3월 23일 02시 56분


토요일인 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사무실. 주말인데도 20여 명의 간부가 모였다.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3학년의 교과학습 진단평가(31일)를 막기 위해 긴급 소집된 자리. 핵심은 진단평가를 거부하고, 시험 당일 체험학습을 유도하는 가정통신문을 보낸 뒤 해당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할지였다.

전교조 본부도 열흘 전 ‘선도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이 같은 명단 공개를 추진했었다. 아예 교사 1000명의 명단을 미리 발표해 교육당국을 압박하겠다는 전술이었다. 그러나 본보 보도(본보 12일자 A6면) 이후 여론이 악화되자 전교조는 “전국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은 유보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전국사업 유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는 말이었다.

서울지부의 토요일 회의는 그 말의 숨은 뜻을 보여줬다.

서울지부는 이날 3시간이 넘는 토론을 벌인 끝에 명단공개 강행투쟁을 결정했다. 서울지부는 전교조에서도 ‘강성 중 강성’으로 알려져 있다. 외견상 강성지부인 서울지부가 전교조 본부의 유보 방침에 ‘반기(反旗)’를 든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서로 역할 분담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여하튼 서울지부의 이번 결정은 참여 교사들의 대량 중징계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벼랑 끝 전술’이고, 가능하면 많은 교사를 동참시켜 교육당국이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야기하려 한다는 점에서 보면 ‘인해전술’이나 마찬가지다. 한 간부는 회의에서 “이번에 명단공개를 하지 못하면 이명박 정권은 전교조를 더욱 우습게 볼 것”이라며 “더 많은 교사가 해직되면 더 큰 파열음이 나고, 더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교조의 명단공개 선도투쟁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교육당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과 학부모를 목표로 한 ‘자폭 테러’와 다를 게 없다.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유모 씨(41)는 “이것은 명백히 우리 아이들을 볼모로 한 투쟁”이라며 “담임교사가 해임당해 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TV로 보면서 우리 아이도 저런 상처를 입게 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전교조가 ‘평가 반대’ 투쟁 대신 수업 능력이 뛰어난 교사 1000명을 자체 선발해 ‘학원을 이기는 학교 만들기’나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 투쟁에 나설 수는 없는 것일까. 정말 불가능한 꿈일까.

김기용 교육생할부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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