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제조업 플러스 알파

  • 입력 2009년 3월 19일 02시 53분


며칠 전 한국에 왔던 어느 일본 언론인은 김포공항에서 서울 도심으로 들어오면서 상당히 놀랐다고 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차량 운행이 격감한 도쿄와 달리 서울 거리는 여전히 자동차로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많은 나라가 비명을 지르는 요즘 한국의 모습에선 위기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생산 소비 투자 등 경제지표로만 보면 우리나라라고 사정이 나을 게 없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한국경제에 영향이 큰 대기업, 특히 주요 제조업체들의 위기대처 전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 몇 달 동안 선진국 글로벌기업들은 잇달아 대규모 감원(減員) 계획을 내놓았다. 불황 때 해고가 일상화된 미국은 물론 좀처럼 직원을 자르지 않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화이자 캐터필러 GM 보잉 마이크로소프트, 유럽의 ING 필립스, 일본의 닛산 NEC 소니 파나소닉이 많게는 2만 명, 적게는 5000명씩 인원을 줄였다.

반면 한국 대기업들은 어렵더라도 해고만은 최대한 자제한다는 태도다. 재무구조가 건실해진 데다 원화가치 약세에 따른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들이 인위적 감원에 부정적 견해를 밝힌 것도 영향을 미쳤다.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체가 적지 않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축복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출 일변도의 경제구조는 외부 충격에 너무 휘둘린다는 한계를 지닌다. 서비스산업 등 내수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현저히 낮아 제조업이 어려울 때 보완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제3의 물결’이란 말을 만들어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는 ‘불황을 넘어서’에서 “이제 경제학만으로는 경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시간이 갈수록 경제는 정치 환경 교육 문화 교통 복지 자원 등 다른 분야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새로운 기회가 열려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버스가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를 알려주는 시스템을 정류장에 설치한 수도권 대중교통체계 개선은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교육 의료 복지 관광 분야에서도 새로운 발상으로만 접근하면 삶의 질 개선과 함께 일자리 창출, 경제적 파이 확대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정책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서비스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번번이 본질적 개혁에 손도 못 대고 변죽만 울렸다.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 미흡과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도 걸림돌이었지만 무엇보다 평등 논리를 앞세운 일부 세력의 저항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서비스산업 규제개혁을 비판하는 자칭 ‘양심적 진보주의자’ 가운데 자기 자식만은 좋은 대학 보내고 영어 실력 높여야 한다며 뒤에서 고액 과외를 시키거나 해외유학이나 연수를 보낸 위선적 행태를 보인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도.

판돈을 너무 키운 ‘카지노 자본주의’가 파탄을 맞으면서 세계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이 혼돈의 시대에 각국이 어떤 전략을 갖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위기 이후의 국가 서열이 달라질 것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더 키우면서 서비스산업을 통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야 대한민국이 산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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