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덕민]납북자문제 국민 관심을

  • 입력 2009년 3월 14일 02시 58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현희 씨가 11일 다구치 야에코 씨의 가족을 만났다. 다구치 씨는 1978년 북한에 납치되어 이은혜라는 이름으로 북한 공작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고 알려진다. 김 씨는 다구치 씨의 아들인 고이치로 씨를 뜨거운 눈물과 포옹으로 맞이했고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고이치로 씨는 어머니에게서 일본어를 배웠던 김 씨를 만나 한 살 때 잃은 어머니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납치 피해자 가족이 겪는 고통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다. 1969년 대한항공기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다. 사건발생 66일 만에 대부분의 승객은 귀환했지만 승무원 4명 전원과 승객 7명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 중 방송국 PD였던 황원 씨의 아들은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아들 황 씨는 김 씨와 다구치 씨 가족의 상봉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생사 여부를 알려주세요. 이게 저의 소원입니다. 송환문제를 이념과 정치로 왜곡하지 말고 가족의 아픔을 통해서 바라봐 주십시오.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그는 절규한다.

납치 피해자의 기구한 사연은 이뿐만이 아니다. 1978년 해수욕장에서 실종된 고등학생은 2006년 6월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 씨의 남편으로 금강산의 가족 상봉장에 나타난다. 팔십 노모는 사십대 후반의 아들을 처음 본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오열했다. 어린 자식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피눈물로 지새웠을 부모들을 생각해보자. 언제까지 우리는 납치문제를 피해자 가족의 문제로 치부할 셈인가?

우리 주변에는 490여 명의 납북 피해자가 있다. 또한 생사가 확인된 546명의 국군포로도 있다. 그들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역대 정부는 먹고살기 바빠서, 안보위협 때문에, 그리고 남북관계를 위해 소수 국민의 인권을 외면해온 경향이 있다. 특히 최근 정부는 북한이 꺼리는 문제를 가급적 제기하지 않고 조용한 접근을 통해 해결한다는 방침을 취해 왔다. 납치문제를 강력히 제기하여 사과도 받고 일부 해결도 해가는 일본 정부의 모습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김 씨와 다구치 씨 가족 상봉은 납치문제에 관한 정부 정책 전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즉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에 우리 정부가 협력하는 모습은 국민의 납치 피해 문제에 더는 외면하지 않고 적극 해결해갈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문제 해결에 있어 정부 정책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바로 ‘관심’이다. 사실 일본 정부가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일관된 정책을 취할 수 있는 이유는 일본 국민의 뜨거운 관심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요코타 메구미라는 14세의 여중생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된 사실이 알려진 이후 납치문제 해결은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납치 피해자 가족과 일부 시민단체의 몫이다. 대다수의 국민은 정부 탓만 하지 관심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독일 월드컵 당시 심판판정과 관련해 우리 누리꾼은 500만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미국산 수입쇠고기 안전문제와 관련해서는 수만 명이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그런데 이웃의 고통에는 너무도 무관심하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든지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웃의 인권을 존중할 때 자신의 인권도 보호받을 수 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납치피해자 가족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자. 우리 국민성은 화끈하다. 한번 한다면 한다. 국민의 관심이 뒷받침된다면 모든 납치 피해자와 국군포로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일은 꿈이 아닐 것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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