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피자와 꼬막

  • 입력 2009년 3월 12일 02시 59분


여야는 허구한 날 싸우다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됐지만 국회에서 몸싸움과 농성을 하는 것은 사실 심신이 무척 피곤한 일이다. 3일 끝난 임시국회에서 법안전쟁을 일단락하기 전까지 여야 원내대표단은 지친 의원들을 달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특별한 간식을 제공했다. 여기서도 여야는 사뭇 달랐다.

1일 한나라당이 여당으로선 최초로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을 점거했을 때 의원들이 밤에 가장 먹고 싶어 한 군것질거리는 피자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 인근 피자집에서 배달해 온 피자를 맛있게 나눠 먹으며 쟁점 법안 처리의 전의를 다졌다. 실은 정크푸드이지만 농성장에서 한가하게 피자를 시켜 먹는 바람에 “역시 웰빙당”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에 앞서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 1월 초까지 본회의장을 점거했을 때는 꼬막이 인기를 끌었고 세발낙지 모시송편 등 주로 호남지역의 향토음식이 공수됐다. 일각에선 포항의 과메기와 같은 영남지역 특산물이 빠진 것을 아쉬워했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 지역 의원이 없는 상실감을 느꼈을 법하다.

의원들이 무엇을 먹든 상관할 바 아니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비되는 ‘입맛’은 두 당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어찌 보면 두 당의 정체성과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안을 끝내 처리하지 않았다. 혼미를 거듭하는 경제위기 속에 힘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대량 해고 사태가 우려되는데도 그랬다. 한나라당이 서민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니 ‘부자만을 위한 정당’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한편으로 당내에선 친이(親李)와 친박(親朴) 진영 간에 피자 나눠 먹기 식의 갈등이 빚어질 조짐이 엿보인다. 친이계 수장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이달 말 귀국, 4·29 재·보선 공천과 당협위원장 교체 문제 등은 당의 내홍을 촉발할 수 있는 민감한 이슈다.

민주당이라고 형편이 더 나은 건 아니다. 여권이 그렇게 죽을 쒔는데도 민주당 지지율은 10%대에서 요지부동이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현역 의원들 중 차기 대통령감으로 주목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들의 지지율은 언급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민주당의 가장 큰 고민은 호남과 특정 계층을 넘어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데 있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표방하지만 실제론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제1야당의 위상이 남달랐던 우리 사회에서 왜 민주당이 이처럼 고전(苦戰)하는지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든 야든 정치권은 지금 사회의 갈등을 풀고 국민을 통합하는 정치 본연의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한다. 국가와 국민 전체를 보는 대신 편협하게 지지층의 눈치만 보고 비판 세력을 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엉뚱한 상상이지만 가끔 우리 정치가 KBS의 ‘열린음악회’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프로그램엔 청소년과 중장년층, 가요와 클래식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노래가 한 무대에서 펼쳐진다. 세대와 취향에 따라 즐겨 듣는 음악이 확연히 다른 현실에서 모든 이가 편히 볼 수 있는 음악 프로처럼 정치가 국민 모두에게 편안함과 위안을 줄 수는 없을까. ‘내 편’, ‘네 편’만 있고 ‘우리’가 실종된 정치 현실이 경제난보다 더 우울하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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